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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23. 2022

오뚝이처럼

    “그럴 리가 없어요, 아픈 데라고는 조금도 없고, 기침도 안 나고, 숨이 찬 것도 없는데 폐암이라니 말도 안  돼요.” 


이길주 씨는 나이에 비해 10년은 어려 보인다. 쌍꺼풀 수술이 집도의의 실수인지 혹은 더 크게 할 욕심 때문이었는지 부자연스럽게 굵고 커서 똑바로 바라보기가 민망한 마음이 들 만큼 터무니없이 큰 데다가 오른쪽 뺨이 지난해 했던 수술 후유증으로 부어올라 전체적으로 기묘한 인상을 뿌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천진해 보이고 귀여운 미소를 입가에 달고 있어서 그 말을 하는데도 전혀 강한 어조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단지 여기 혹이 생겨서 그 혹을 떼려고 들어왔을 뿐인데 갑자기 폐암이라니 말도 안 돼요.” 


그녀는 왼쪽 귀 뒤를 가리키면서 말도 안 돼요, 라는 말을 연거푸 되뇌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폐암의 증세가 자신에게는 전혀 없음을 또다시 강조했다. 이길주 씨는 1년 전에 오른쪽 귀 바로 뒤에 조그만 혹이 생기더니 커지기 시작하여 물혹이라는 진단을 받고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었다. 그런데 의사가 물혹인 줄 알고 떼어낸 혹의 조직 한 조각을 검사소로 보냈었는데 “림프샘 암”이라는 결과 보고가 왔다고 했다. 그래서 3주간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계속 정밀 검사를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단다. 그리고 지금껏 건강하게 1년을 잘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좁쌀만 한 뾰루지 같은 것이 왼쪽 귀 뒤에 생기더니 두  달 사이에 크기가 골프공만 해졌다. 그리고 쿡쿡 쑤시기 시작하여 응급실에 들어온 것이다. 일단 진통제를 먹고 통증을 가라앉힌 후에 머리 MRI 촬영과 가슴, 복부 캣 스캔(CT) 촬영을 했다. 검사 결과는 간단하지가 않아 보였다. 


- 왼쪽 귀 뒤에 생긴 골프공만 한 혹은 조직 검사를 해봐야 확실한 결과가 나오겠지만 1년 전에 오른쪽 귀 뒤에서 제거했던 물혹이 암일 경우 그것이 전이된 것일 가능성이 있음으로 다음에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 

- 유방에 여러 개의 혹 덩어리들이 있는데 정밀검사 내지는 조직 검사를 더 해야 한다. 

- 오른쪽 폐에 세 개의 종양으로 추측되는 혹이 있는데 조직 검사를 해야 확실히 알 수 있다. 


머리에 작은 콩알만 한 혹이 생기더니 크기가 커가면서 머리가 아파서 응급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CT 촬영 결과 머리뿐만 아니라 몸속 여기저기에서 수상쩍은 혹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고 뚜렷한 진단은 조직 검사만이 밝혀내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 꽃 한 송이 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통증이나 열이 있어서 침대에 누워 지내는 형편도 아니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끔 들러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살아온 생애가 즐거움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으련만 그는 즐거운 듯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매 끼니때마다 제공되는 식사도 남김없이 먹고 옆의 환자가 먹고 남긴 식기까지 깨끗이 모아, 스태프들이 가져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항상 병실 밖 구석진 곳에 가져다 놓는 것으로 보아 부지런한 성품인 것 같았다. 이따금 병실을 나와 복도 끝에 있는 넓은 유리창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곤 했는데 앞머리를 소녀처럼 내리고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뒷모습은 처녀같이 풋풋하기조차 했다.  


  “미국에는 아무도 없어요. 한국에서 배운 경락 기술로 스킨케어 샵에서 일주일에 사흘씩 일하면서 버는 돈을 한국에 있는 딸 둘에게 보내면서 큰 걱정 없이 살았어요. 남편과는 애들이 어렸을 때 이혼했는데 서로 연락 없이 산 지 오래됐어요. 애들한테도 연락 한번 없이 남남이 돼 버렸어요.” 


그녀는 스무 살 때 결혼한 남편과 서른 살에 이혼하고 딸 둘을 혼자 키우며 살았다. 워낙에 억척스럽고 부지런해서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장사로 ‘성공했다’라고 까지 할 수 있었다. 널찍한 아파트도 장만하고 남대문시장의 가게는 직원들에게만 맡겨도 잘 돌아갔다. 그 당시는 흔치 않던 얼굴 성형도 하고 유방 확대 수술도 하면서 놀러 다녀도 돈은 들어왔다.  

15년 전, 그녀 나이 45세 때 미국 관광길에 나섰다. 3개월간 꼼꼼히 미국 관광을 마치고 샌디에이고에 들렀을 때 그곳에 수년 전에 와서 잡화상을 하는 친척을 만났다. 한국에 돌아가지 말고 가게를 함께 하자고 붙잡아 거기서 주저앉아 일하다 보니 그 장사가 눈감고 돈 긁어모으는 듯했다.  


  “한동안 거기서 일하다가 독립을 했어요. 물건 대주는 사람이 도와줘서 몇 톤씩 들어오는 물건들을 쌓아놓을 창고 건물까지 얻어 그 부근에서는 제일 큰 잡화점을 번화가에 냈지요.” 


한국에 있는 재산을 다 팔아 돈을 만들어 미국 땅에 터를 잡은 것이다. 


  “처음 한동안은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글쎄 온종일 물건 판 돈을 세는 것이 힘들어 그냥 봉지에 쓸어 담았다니까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그 당시를 상상하는지 발갛게 즐거움으로 달아올랐다. 신통한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달러를 긁어모을 수 있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던가…. 정말 미국은 황금의 땅이었다. 그런데 종말은 또 너무 빨리, 또 너무 갑자기 찾아왔다. 그녀의 창고에 연방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총을 허리에 찬 제복의 경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고 문을 열어젖혔을 때 그녀는 기절초풍, 영문을 몰랐다. 그녀의 요술 단지였던 구찌니, 루이뷔통의 상표가 붙어있는 짝퉁들은 순간 그녀를 배신하였다. 신분 관계로 애초부터 본인의 이름 대신 친척의 명의로 등록했던 터라 그 친척이 수갑을 차면 되었지만, 그녀는 맨손으로 그녀의 황금성을 빠져나와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한국에서 그녀는 다시 오뚝이 같이 일어섰다. 아니, 일어서기 위해 경락 기술을 배우고 스킨케어 학교에 다니면서 밥장사도 했다고 한다.  


  “내가 기술자예요. 그때 밥장사도 내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서 직접 만들어서 했는데 사람들이 점점 찾아오더라고요. 제가 음식 솜씨가 좋아요.”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자랑스러운 듯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믿을 것이 무언가, 돈은 있다가도 날리면 그만이고, 애인이란 사랑이 식으면 그만이고, 그러면서 내가 지금은 몸으로 때우면서 살지만 늙어 병나면 누가 나를 보살펴 주겠나, 하고 보험을 확실한 것으로 세 개를 들었어요.” 


그녀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신나고 박진감이 넘치는 드라마다. 그리고 지금 병과 맞서고 있다 보니 오래전에 들어놓은 건강보험이 정말 그녀의 힘이 되는 것이다.  


  “병원 비용의 40%를 받는 암 보험도 들어 놨었는데, 그때는 몰랐는데 정말 잘했지요?” 


정말 잘한 일이다. 이곳 병원에서는 빈곤자 혜택 케이스로 병원비를 절감 받을 수 있지만 일단 그 청구서를 보내니까 그 청구된 금액 중 40%만 받으면 일을 할 수 없는 그녀로서는 최저 생활비의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간호사가 시간이 되었다고 알약 두 개를 주기에 물으니 우울증을 없애는 신경 안정제라고 했다. 그 안정제가 그녀를 그토록 명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폐암일 것이라는 말에도 그럴 리가 없다고 단정해버리는 것도 그 약 때문인가? 


다음날, 귀 뒤의 혹에서 조직을 떼어내 조직 검사소로 보낸 지 5일 만에 ‘폐에서 시작된 암이 머리로 올라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이된 것인지 아니면 뇌의 암과 폐의 암은 동시에 각각 생긴 별개의 암인지 확인할 수 없으며 좀 더 상세한 검사를 위해 조직을 더 떼어내서 다른 검사소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본 후에 폐의 조직 검사를 한다고 했다. 또 유방암으로 의심이 되었던 혹들은 본인의 말로 20년도 더 전에 유방 성형수술을 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그 실리콘 알갱이들 몇 개가 흩어진 것이라고 했다. 어찌 되었건 그 수상한 혹들은 정밀검사를 받았었는데 일단은 암세포는 아니라는 결과를 받았다고 했다. 의사가 그 믿을 수 없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유방암 검사 거론은 더는 없었다. 


2차 조직검사 후 또 닷새가 지났다. 그동안 그녀의 신나는 드라마는 계속되었다. 어떤 경로로 무엇이 그녀를 움직여 또다시 미국 땅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상세한 설명이 없고 또 묻지도 않아 알 수가 없다. 6년 전 또다시 손에 500달러만 달랑 들고 미국 땅에 들어왔다. 한국에 쌓아 올렸던 재산을 다 이곳에 내던진 터라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배짱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버겐 카운티의 팰리세이드 파크에 내려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지역 신문을 찾아 구인란과 렌트 광고를 훑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방을 세준다는 광고를 보고 무조건 그 주소로 찾아가 주인을 찾았다. 그리고 전 재산 500달러를 내놓고 직장이 잡히는 대로 벌어서 계약금을 치를 테니 우선 렌트를 달라고 사정을 했다.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좋은 주인이었던지 방을 얻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발품을 팔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려 꼭 열흘 만에 스킨케어 샵에 경락 마사지사로 취직이 되었다. 전화가 없으니 연락처를 알릴 수가 없어 직접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동안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주인집 변소 청소부터 시작하여 구석구석 닦고 쓸고 음식 만드는 일을 거들어주다 보니 집주인은 계약금 받는 일이 미안해질 판이었다. 그 집에서 한 식구같이 지금껏 6년을 살았다. 워낙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찾아다니며 하는 부지런한 성격으로 스킨 샵의 고정 손님도 꾸준히 늘어 한국의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면서 짭짤하게 저축도 할 수 있었다. 


2009년 가을, 오른쪽 귀 뒤에 좁쌀만 한 뾰루지 같은 것이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하루하루의 생활은 해 뜨고 지는 것만큼이나 정확하고 차질 없이 순조로웠다. 그 좁쌀이 조금씩 커지면서 콩알만 해지고 골프공만 해지면서 당기는 듯이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을 찾아간 때부터 그 순조로움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냥 혹이라고 생각했고, 그 혹은 잘라내고 그 자리를 꿰매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시술한 병원의 의사도 일단은 그렇게 생각했었던 듯하다. 귀 뒤의 혹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던 리져널 병원에는 방사선 치료 시설이 없어 홀리네임 병원으로 보내져 와 나와 처음 만났던 것이 지난해 여름이다. 그리고 방사선 치료를 서른여섯 번을 받았다. 그는 이따금 병원에서 지나치다 보면 멀리서 보고도 달려와 허리를 굽혀가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곤 했다. 그리고 겨울, 왼쪽 귀 뒤에 조그만 혹이 생기더니 이번엔 ‘서서히’가 아니고 순식간에 크기가 골프공만 해지더니 빠르게 그 면적을 넓혀 가는데 그 크기가 거의 배구공 같아지면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온다고 했다. 오른쪽 혹을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끝낸 지 6개월째다. 응급실로 들어와 입원한 후 두 번에 걸친 조직검사를 거쳐 16일 만에 그 결과가 나왔다. 그것도 완결은 아니다.  


- 폐암이 뇌로 전이된 아주 드문 케이스로 추측됨. 귀 뒤의 혹에서 떼어낸 조직검사로 뇌종양은 확인되었지만, CT에서 폐암으로 추측되는 혹들은 조직검사를 해야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다.  


  “폐암이라니요? 나는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 살아본 적도 없어요. 폐암은커녕 감기 한 번 앓아본 적도, 그 비슷한 병도 앓아본 적이 없어요.” 


이길주 씨는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처럼 자신에게 통고 된 병명을 부인했다.  


  “말도 안 돼요, 말도 안 돼요….” 


정말 그녀는 긴 머리카락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혹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건강하게 일터로 나가는 여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거의 천진난만해 보이는 얼굴로 신나게 그녀가 들려준 드라마에 빠졌었던지 나는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아파져 왔다. 정말, 진단이 잘 못 내려진 것은 아닐까…. 그 옛날 그녀가 했다던 유방 확대술의 실리콘 조각들이 속에서 터져 가슴과 머릿속을 돌아다니는데 그것이 얼핏 악성종양 비슷한 꼴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해괴망측한 상상까지 하며 그녀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의 암 주치의인 닥터 골드만을 찾아갔다. 그는 내 모든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 우선 방사선 치료로 그 예후를 지켜본 후에 항암 치료를 생각해 봐야겠지.”  

  “생존 기간은?” 


닥터 골드만은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모른다는 뜻인지 답해줄 수 없다는 것인지 더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꽉 막혀버린 느낌이 들었다.  


  “일단 퇴원해서 외래 환자로 등록하여 방사선 치료를 받고 또 폐의 조직검사도 폐 전문의에게 의뢰해 놓겠어요.” 


그리고 이길주 씨는 퇴원하였다.  


  “다음 주부터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도록 해요.” 


그녀는 두 주 동안 머물렀던 병실의 바닥까지 청소하고는 봉다리, 봉다리 자신의 물건을 챙겨 들고 병원을 떠났다. 그녀는 그래도 병원을 떠나는 것이 기쁜 듯 방글방글 웃으며 손을 흔들며 문을 나섰다. 옆에서 간호사가 말했다.  


  “처방해준 우울증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데…….” 


그리고 일주일이 채 못 돼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불안에 잠겨 떨리는 것 같았다. 아마 간호사가 우려한 대로 우울증약을 먹지 않은 듯했다.   


  “뵙고 싶어요. 만나러 가도 되지요?” 


나는 닥터 골드만이 아닌 암 전문의 닥터 브란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 환자에게는 더는 치료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지 물었다. 의사들도 그 치료 방법이 다 다르다. 그래서 환자들은 제2, 제3의 의견을 듣기 위해 찾아다닌다. 어떤 의사들은 굉장히 공격적인 치료 방법을 쓰고 어떤 의사는 소극적인 방법을 쓴다고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 컴퓨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읽은 후 닥터 브란이 말했다.  


  “일단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 예후를 보고 또 폐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제를 써야겠지요.” 


결국, 두 명의 암 전문의에게서 들은 결론은 똑같이 별로 희망적이지 못했다. 닥터 브란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Parotid Carcinoma(귀밑샘암), 대단히 희소한 암이어서 난 모르겠어요.” 


그날 오후 이길주 씨는 나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제가 심상치 않은 듯해요. 뒷골이 그제부터 뻐개지는 듯이 아프고 충치 하나 없이 튼튼하다고 치과 의사도 감탄한 치아가 며칠 전부터 시어서 찬물은커녕 과일도 씹지를 못하겠어요. 아는 분이 저보고 수술도 할 수 없어서 병원에서 그냥 내보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윤 선생님께서 정확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의사가 환자에게 해준 이야기 이상을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나, 정말 그렇게 심각한가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눈빛에는 '심각하다니 어림도 없어요' 하는 내 대답을 듣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원하는 그런 대답은 해줄 수가 없었다.  


  “전에 오른쪽 귀 뒤를 수술했을 때 의사가 암이라고 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암이라는 병은 감기하고는 다른 심각한 병인 것 알죠? 그러면 이 병을 고쳐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의사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투병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10년도 살고 20년도 살 수 있지요.” 


나는 내가 하는 말을 되새겨보면서, 자르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그러나 잡고 있는 희망의 줄을 놓지 않게 해야 하는 것에 유의하며 말을 끝냈다. 그녀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스쳐 갔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던 현실을 이제는 직시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혼자 힘으로 힘겹게 세상을 살아왔지만 나쁜 짓을 한 적도, 누구에게 해 끼친 일도 없이 열심히 살았어요. 술 담배는 물론 나쁜 음식도 가려 먹으며 살았어요, 그런데 왜 이런 이상한 병이 생겼을까요?”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어린아이같이 묻는 그녀에게 이 질문에 시원하게 확실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왜 그런 병이 생기는지 알 수만 있다면…. 항상 내 맘을 편하게 해 주던 그녀의 방글거리며 웃던 얼굴은 깊은 고뇌와 두려움으로 어두워져 갔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이틀 후 병원에서 만난 닥터 골드만은 그녀에게 우울증과 통증을 위한 처방전을 써 주었다. 말없이 처방전을 건네는 의사의 얼굴에 한 줄기 연민의 자락이 스쳤다. 그 어느 약도 그녀에게 하루하루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폐에서 떼어낸 조직이 검사소로 보내졌다. 부분 마취가 풀리면서 그녀는 심한 구토와 두통을 호소해 약을 먹은 후 깊은 잠에 빠졌는데 악몽을 꾸는지 이따금 얼굴에 두려운 듯한 경련을 일으키곤 했다. 자신의 병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듯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정말 아무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암의 근원지는 폐에서 시작되었다는, 폐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역시 암의 근원지는 그녀의 폐였던 것이다. 평생 담배를 피운 적은 물론,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암은 폐에서 시작되어 목을 타고 올라가 오른쪽 귀 뒤의 귀밑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번식을 시작해 혹을 만들다가,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자 머릿속을 여행하면서 왼쪽 귀 뒤에 또 자리를 잡고 앉아 번식을 시작한 것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 왼쪽 귀 뒤에 솟아난 혹은 끄떡도 하지 않고 그 지경을 넓혀갔다. 폐 조직 검사로 밝혀진 암 종류에 따라 곧 항암 치료를 받게 된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문을 나서며 그녀는 거의 속삭이는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이겨낼 거예요, 아직 할 일이 많거든요. 심상치 않은 무서운 병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면 반드시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나는 한겨울 찬바람 속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기를 염원했다.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은 그녀, 그녀가 또다시 오뚝이가 될 것을 믿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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