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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25. 2022

어느 환자의 기억

    403호 입원실. 1년이 지났는데도 이 입원실을 지날 때면 이 방에 4개월 동안 머물던 '퀴'가 생각난다. 그냥 생각만 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싸아, 하고 아픔이 지나간다. 입원했다가 세상을 떠나 마음 아픈 환자들은 많이 있지만 살아서 퇴원해 나간 '퀴'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크게 아프다. 


 1년 전 1월, 응급실에 젊은 청년 한 명이 들어왔다. 환자의 라스트 네임(성)은 '퀴'라고 했다. '퀴'라는 성은 한국인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태생을 묻는 등록처 직원에게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며 성은 '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퀴’라고, 또 어떤 사람은 ‘츄’라고 발음했다. 환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이 영어로 'Cui'라고 적었는데 모두 한국말로 대화를 했다. 강한 사투리로 보아 한국에서 살던 중국인 아니면 중국에 사는 한국인으로 추측되었다. 후에 알고 보니 할아버지 대(代)에 중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중국 동포였다. 나이는 서른 살. 응급실에 젊은 여자 둘과 같은 또래 남자 둘이 함께 왔다. 


  “어제 아무 연락 없이 직장에 안 나오고 오늘도 연락이 안 돼 그가 사는 아파트에 가 보니까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병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얼핏 보기에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흔히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처럼 아프고 고통스러운 모습도 아니고 창백하고 병색 짙은 모습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말갛고 깨끗한 외모에 건강한 젊은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말을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발음이 되어 나오지 않는 듯했고, 친구들에 의해 운전면허증, 소셜 시큐리티 넘버 13(13 Social security number : ‘사회보장 번호’로서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 등등, 챙겨 온 지갑 속에 있던, 입원 수속에 필요한 신상명세서는 다 제출되었다.  


  “건강 보험은 없습니다.” 


건강 보험을 들고 있는 젊은이들은 거의 없다.   


  “어떤 이상이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이전에도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응급실 간호사가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퀴를 살펴보며 컴퓨터 파일을 작성하며 물었다.  


  “여태껏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어요, 우리들과 똑같이 일하고 잘 지내왔어요. 정말 갑자기 아무 연락도 없이 출근을 안 해서 첫날은 휴대전화로 몇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몸이 좀 아픈가, 하고 별로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제도 소식이 없고 출근도 안 해서 일 끝나고 가 보았더니 방안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앰뷸런스를 불렀나요?”  

  “아니에요, 이름을 부르니까 '응'하고 대답하고 일어나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주저앉길래 어디 아프냐고 했더니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눈에 초점도 흐린 것 같고…. 심상치 않아 보여서 제 차에 그냥 태워서 데리고 왔습니다.” 


간호사는 친구가 설명하는 동안 앞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퀴의 맥박을 재고 청진기로 가슴의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며 컴퓨터 자판을 부지런히 두드렸다. 그동안 같이 온 여자들 중 한 명은 여자 친구인 듯 줄곧 퀴의 손을 잡고 있었다.  


  “26번 베드로 가십시오. 자, 미스터 퀴, 걸을 수 있겠어요?” 


퀴는 고개를 끄덕이고 젊은 청년답게 힘차게 26번 베드로 향했다. 퀴의 입원 사유에는 “CVA”로 기재되었다. 뇌혈관 발작, 흔히 뇌졸중이라도 하고 뇌출혈이라도 하는데 정밀검사가 필요하다. 정확한 병명은 검사를 해보아야 안다. 입고 온 평상복을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퀴는 기분이 좋은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자기도 궁금해 죽겠다며 확실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일단 병원에 들어온 것에 안심이 된 모양으로, 빨리 치료받고 나가면 좋겠다며 함께 온 친구들, 여자 친구와 웃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말하는 것이 좀 어눌하기는 했지만, 이것저것 검사하다 보면 양호해져서 오늘 안으로 퇴원하게 될 것이어서, 아마 그 검사로 인한 응급실 청구액을 보게 되면 병원에 들어왔던 것을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응급실을 떠났다.


 그다음 날, 퀴가 아직 퇴원하지 못하고 병실에 입원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 보니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차트를 보니 머리와 목 CT 촬영을 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퀴는 퇴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병실을 지나다 보면 아침 일찍 그를 찾아 병문안을 오는 친구들로 활기도 있어 보였고 그 친구들이 말끔히 면도도 해주고 손톱까지 예쁘게 다듬어 주는 등 곧 회복되어 퇴원할 것으로 보였다. 그동안 퀴의 친구들로부터 알게 된 것은, 그가 9년 전 여권도 없이 중국을 떠나 멕시코를 경유하여 밀입국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운전면허증과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발급받았다. 그 후 네일아트 기술을 익혀 팰리세이드 파크의 한 네일 가게에서 일했다. 그리고 밤과 주말에는 택시를 운전하며 성실하게 일하고 성품도 좋아 수입도 짭짤했다고 했다.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살면서 여자 친구도 생겨서 미래에 대한 꿈을 설계하며 사는 친구라고 일하는 가게의 주인이 설명했다. 내년쯤에는 이 여자 친구와 결혼하여 남들처럼 가정을 이루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 최대의 꿈인 그였다. 


1주일, 2주일이 지나며 담당 의사를 비롯하여 신경내과 의사, 신경외과 의사, 정신과 의사가 줄줄이 환자를 보고 다녀갔다. 그리고 병명이 나왔다. 뇌졸중과는 조금 다른, 뇌혈관 기형이라고 하는 일명 “모야모야”라고 부르는 희소병. 무서운 병이다. 뇌동맥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그 혈관 모양새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는 형태’라고 하여 일본어로 ‘모야모야(もやもや)’라고 한다. 아시아인에게서만 발견되는, 유전자 이상에 의한 혈관 질환이라고 하는데 선천성일 수도 있고 후천성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모야모야 증상은 그동안 서서히 오랫동안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 어느 시기가 되면 뇌졸중으로 발전되는데, 한번 이 뇌졸중이 오면 언젠가는 또 다른 뇌졸중이 발생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없고 확실한 치료 방법이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상태이며 또 너무 위험한 수술이라 아직 답이 없는 질환이다. 그리고 아직 수술이나 약물을 통한 치료로 원상태로 회복된 사례가 없다. 특이한 것은 보통의 뇌졸중 증상과는 달리 모야모야 현상이 발생한 부분에 따라 그 증세가 다르다는 것이다. 퀴는 두뇌의 뒷면 오른쪽이 침범을 당한 케이스인데 오른쪽 눈은 실명되었고 왼쪽 눈은 빛과 어둠을 느끼는 정도이며 목소리는 살아있는데 언어 구사 능력은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용케도 변을 보고 싶을 때는 화장실은 스스로 가지만 볼일 후에는 뒤처리를 할 줄 모른다.

 신경외과 의사는 뇌 사진을 찍으면서 5, 6주 지켜보며 수술 가능성을 연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퀴는 급격히 언어 감각과 시력을 상실해갔다. 옆에서 누가 말을 하면 고개를 돌리는 대신 그쪽으로 몸의 방향을 찾아보려는 듯 살피면서 시선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있었다. 이따금 지나며 그의 방을 들여다보면 그는 항상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 조용했고 그의 베드 옆에 간호보조원이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가 입원해있는 병동에서 빨리 와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의 병실에는 두 명의 경비 요원이 소리소리 욕설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하는 그를 붙잡고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얌전한 모습의 그를 보아왔기 때문에 놀라는 내게 간호사는 그 병의 한 증상으로 이렇게 난폭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뇌 질환으로 인해 성품까지 광폭해질 수 있다니……. 그의 난폭함을 보며 인간에게는 잠재된 난폭성이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퀴는 거의 광포한 동물처럼 길길이 날뛰며, 그가 평소에 사용해 보았을 성싶지 않은 욕설을 거침없이 퍼부었다. 창백하게 변한 얼굴에 눈빛은 날카롭고 무서웠다. 착하고 순한 성품의 그에게 어디서 저런 힘과 광폭성이 솟아날까 싶게 그는 펄펄 뛰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진정제를 주사할 때까지 4층 온 병동은 소란스러웠다. 전에도 한 번 “모야모야병”으로 진단받은 환자를 본 적이 있다. 30대의 젊은 한국 여성인데 증상이 조금 달랐다. 의식이 전혀 없고 입을 다물 줄을 모르며 천장만 바라보고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채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지내며 모든 검사를 받았다. 그 많은 검사를 거친 후에야 병명이 나왔던 것이다. 그때는 환자의 언니가 조금도 곁을 떠나지 않고 돌보았는데 거의 한 달을 병원에 있다가 한국으로 간다고 퇴원하여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 후의 진행 상황은 모른다. 

퀴에게는 신경안정제가 투여되었는데 이 약 기운이 돌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두어 시간 지나면 깨어나서 또  고함을 지르며 난폭한 짐승처럼 날뛰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첫마디 이외에는 알아들을 수가 없고 이따금 약 기운이 스러져갈 때쯤에는 비명 같기도 하고 통곡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퀴의 입원실에는 24시간 경비원과 간호사가 교대로 지키고 있어야 했는데 입원 열흘쯤부터는 일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이따금 양쪽에서 간호사 둘이 팔을 부축해서 복도를 걷는 운동을 시키는데, 어느 정도 걷다가는 무릎에 힘이 빠지는지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 마시지도 않고 먹지도 않으니 링거가 투여되고 입맛 도는 약이 정신 안정제와 함께 투약되었다... 


 입원 3주째. 외마디 말이지만 몇 마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입맛 도는 약을 먹어서인지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링거가 제거되고 먹을거리가 제공되었다. 입원 6주째. 조금도 차도가 없이 병실과 기껏 복도를 걷는데 방향을 잡지 못해, 옆에서 두 사람이 꼭 잡지 않으면 쓰러지거나 벽에 부딪힌다. 갑자기 몸에 걸친 환자복과 양말을 마구 뜯으려는 듯 벗는다. 돌보는 사람이 잠시라도 눈을 떼면 마구 벗어던져 알몸이 된 채로 복도를 뛰어나가기도 하는데 한두 살 된 아기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성인이다. 특별히 제조된 바지를 입히고 '아이스크림 먹자'하면 진정한다. 줄곧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졸라서 하루에 작은 컵으로 대여섯 개는 먹는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 시간이 날 때마다 퀴의 병실을 들르면서 그를 돌보는 병원 스태프의 직업 정신이 거의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퀴의 언어 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작은 표현으로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물, 아파, 배고파, 추워, 싫어, 아이스크림, 등은 발음이 어눌했지만 알아들을 만해서 그를 돌보는 사람들에 의해 요구하는 즉시 제공되었다. 무엇을 원하니? 하면 대답은 그냥 응, 이다. 한결같은 대답인데 때로는 싫어,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약을 먹기 싫어해서 아이스크림에 넣어서 주면 슬쩍 뱉어낸다. 

 

8주째. 그동안 음식을 떠서 입에 넣어주었는데 접시에 샌드위치를 놓고 먹으라고 하니 정확하게 샌드위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물컵도 손에 쥐여주면 흘리지 않고 다 마신다. 이따금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데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듯, 그 생각을 찾아내려는 듯 생각에 몰두한다. '뭘 먹고 싶니?' 물으면 '밥'하고 대답하는데 '밥이 좋니? 아니면 빵이 좋니?' 하고 물으면 대답이 그냥 '응'이다. 

친구들을 통해 중국 어딘가에 있는 퀴의 아버지와 전화 통화가 되었다. 서류를 만들기 위해 출생 증명을 떼어 보내 달라고 하니 그곳은 시골이라 제대로 서류 구비가 되어 있지 않아 모르는 사이에 말소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동생이 미국에 오려고 대사관이 있는 북경에 가 있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와 여동생이 가족인데 어머니는 함께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가족과 어렵게 연락은 되었지만 정작 퀴에게 필요한 서류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세한 그곳 형편은 알 수 없지만,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하여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두어 번 통화 후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더니 연락이 끊겨 버렸다. 


10주째.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깊은 생각이 두뇌 어디에선가 오가는 것 같은데 잘 표현이 안 되어 웅얼웅얼거리는데 언뜻언뜻 '집에 가야 한다'는 듯, '집세를 내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를 달랬다. 집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염려 말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용해진다. 사람의 머릿속, 그 두뇌 안의 깊이는 도대체 얼마나 깊기에 그 안을 헤매고 다니다 집세를 내야 한다는 의식을 붙잡았을까…. 


매일 아침 퀴는 두 사람의 보조사 덕에 샤워도 하고 면도도 깨끗이 한다. 얼핏 잠든 모습을 보면 전혀 무서운 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다. 깨끗하고 착하게 생긴 젊은이다. 환자의 치료 과정을 체크하는 카운티 보건국의 에리사가 전화를 했다. 퀴와 같은 증상의 환자는 또 다른 뇌졸중이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그 뇌졸중에 대비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결정할 수 없으니 가족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가족이 멀리 있어서 서명할 수 없으면 삼자 확인 전화로 허락을 받아야 하니, 가족과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이다. 가지고 있던 번호는 결번이 되었고 친구에게 연락하였더니 며칠 지나서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전화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 번호도 연결이 안 된다. 수술을 할 수 있는 기회의 문도 닫혔다. 수술하면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가 아니기는 하지만 예측되는 더 나쁜 상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수술을 하면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최악의 경우라는 게 차라리 지금 형편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퀴는 가족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친구들의 발길도 멀어져 갔다. 


 하루는 두 명의 경호원이 양쪽에서 팔을 붙잡고 안정시키는데 팔을 붙잡히니 발이 닿는 대로 발길질을 한다. 수간호사 캐서린은 그동안 엄마같이 누나같이 퀴를 돌보았는데 발길에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다. 캐서린은 정말 훌륭한 간호사다. “퀴, 발길질은 안 좋은 거야. 내가 맞아서 아프잖아, 다시는 안 그럴 거지?” 하고 달랜다. 으응, 하고 대답하는 퀴를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두뇌는 퀴의 연령을 완전히 한두 살 정도로 고정해 놓은 듯하다. 그보다 더 안 좋은 것은 실명하여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것과 때로 과격해지는 것. 때로는 벽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벽 뒤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주사를 놓으면 아기처럼 1분 후에 아앙, 하고 찡그리며 운다. 온종일 물을 찾는다. 발로 침대를 걷어차서 엄지발톱이 부러져 피가 난다. 캐서린이 발가락을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발톱을 깎고 약을 발라준다. 발로 차면 닿는 침대 모서리에 베개를 괴어준다. 방사선 사진을 에리사가 설명해주는데 두뇌 오른쪽 아랫부분이 초저녁 초가집 굴뚝에서 나는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 듯하다. 왼쪽은 비교적 명료하여 몸의 마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눈부신 현대 의학을 가지고도 최첨단의 수술 실력으로도 정말 고칠 수 없는 병이니?” 


에리사는 고개를 흔든다. 그보다 더한 확신은 없다는 듯이….  


  “너무 젊지 않아? 고작 서른인데….” 


새로 가정을 꾸미고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살아야 할 장래가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을 뿐만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동안 좁은 병실 안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누군가의 보살핌으로만 가능한, 너무너무 불쌍한 퀴…. 그가 여태껏 살아온 나날들을 암흑 속에 묻어버리고 앞날을 차단당해 버린 서른 살의 청년. 그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아직 스무 살일 때 중국 땅을 떠나는 배에 숨어들어 숨죽이고 바다를 건너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는 미래를 꿈꾸었던 불행한 청년. 자신의 몸에 배반을 당하고 말았다. 


퀴가 있는 4층 병동의 청소부 메리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든다. 퀴에 대해 이야기할 때나 퀴를 바라볼 때 메리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오늘은 내가 웃지만, 내일은 내가 울게 되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게 우리 삶이야. 저 가엾은 퀴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확실한 나이를 알 수 없는 메리는 아일랜드인 특유의 흰 피부에 푸른 눈, 하얗게 센 머리를 금빛으로 염색을 하고 항상 정갈한 모습으로 푸른 청소부 유니폼을 입고 걸레질을 한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좋은 가정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난 듯 품위가 서려 있는 사람이다. 젊어서 혼자되어 청소부로 30년을 살며 자식 셋을 키운 사람이다. 홀리네임 병원으로 옮겨온 지 만 19년이라고 했다. 큰딸은 결혼한 지 3년 되던 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그 당시 만 두 살이던 손자는 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지금 열여덟 살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 뉴욕의 어느 시설에 있는데 퀴처럼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겉모습만 건장한 청년이라고 했다. 주말마다 딸과 함께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 손주를 만나러 가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들이 병원 일 그만두고 함께 살자고 하지만 자신이 일할 수 있는 한,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단다. 큰아들은 컨설팅 회사의 중역으로 아주 귀여운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사는데 올가을에 일본에 아들을 보러 간다고 행복해했다. 작은아들은 토목기사로 영국에 사는데 좋은 여자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도 한다. 자신의 외손주 생각에 퀴에게 각별한 관심이 가는 것일까….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또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퀴를 바라본다. 세상에는 너무나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이 많구나.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세계 안에는 아픔과 절망과 고난이 무지개 같은 기쁨과 행복의 반주에 맞추어 춤추고 있는 것인가…. 


카운티의 조사관이 나와 상세하게 그를 검사했다. 그가 받아야 할 검사나 치료를 제대로 받았는지, 균형 있는 식단이 제공되었는지…. 퀴의 옆방에 입원해 있던 한국인 환자의 가족이 내게 말했다. 한동안 퀴를 살펴보았던 듯하다.  


  “미국은 정말 좋은 나라예요, 특히 병원은 그런 것 같아요. 아무 연줄도 없는 불법 체류자에 불과한 저 청년을 어떻게 저렇게 돌보아 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퀴의 병원비는 이미 오십만 달러가 넘는다. 이 비용은 아무 곳에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를 진료하고 먹을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들도 단 한 푼도 그에게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내색하는 사람은 없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병원은 아픈 사람을 고치는 곳이다. 더 이상 치료가 가능하지 않은 환자는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 


1월 9일,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더불어 응급실에 들어와 스스로 운동화를 벗어 플라스틱 봉투에 넣었던 서른 살 청년 퀴는, 4월 13일 병원용 양말만 신은 채 구급차에 실려 그레이스톤 정신병원으로 떠났다. 퀴와 같은 증상의 환자 경험이 있는 의료진이 그를 보살필 것이라고 했다. 떠나기 전날 나는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퀴, 내일 딴 병원으로 떠나. 거기 가서 잘 지내.”  

  “으응.”  


단단한 창살이 박힌 문이 그의 뒤에서 콰앙,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지금도 그가 4개월을 살다 간 403호실을 지날 때면 콰앙, 하고 끝없이 울려 퍼지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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