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영 Mar 28. 2022

아빠의 꽃밭



*시장 안의 집* 


  1960년도 초반이었다. 그 골목길은 시장 안의 좁은 통행로 양쪽으로 늘어선 건어물상이나 집기상들 사이에 숨듯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좁았다. 그리고 시멘트로 발라 붙인 상점의 벽이 단단한 성벽같이 서 있는 끝에는 ‘골목의 끝’이라고 표시라도 하듯 두 짝의 대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기순이는 그 대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야.” 


골목길은 칙칙하고 음습한 기운이 그 자리의 주인인 양 도사리고 있어 한여름인데도 선뜻 들어서고 싶지 않게 괴괴했다. 땅 위에 존재하면서 단 한 번도 햇볕을 받아본 적이 없을 듯싶은 이 골목은 이 동네 구석구석 안 가본 곳 없이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나도 처음 본, 숨어있듯 좁다란 길이었다. 기순이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골목으로 한 두 걸음을 옮기던 내게 후욱, 하고 음습한 골목의 냄새가 몰려들어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시장통 안에서 풍기는 모든 냄새가 이 골목 안에 스며들어 빠져나가지 못한 채 썩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버렸다.  


  “왜 그래? 우리 언니가 저 집에 살아. 방 안에 들어가면 침대도 있고 빵 굽는 기계도 있고 냉장고도 있어. 정말이야. 그리고 티브이도….” 


기순이가 손가락으로 골목 끝을 가로막듯 서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았어... 그냥 가.” 


나는 의아하고 아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기순을 뒤로하고 달려서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기순이가 내 뒤를 쫓아오며 외쳤다.  


  “약속 지켜야 해! 절대로 우리 엄마한테 나랑 언니네 집에 갔었다고 하면 안 돼!”  

  “걱정하지 마. 난 안 갔잖아.” 


기순이는 내 곁에 바짝 붙으며 내 눈치를 보며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언니가 빵 구워 준다고 오늘 꼭 오라고 했었는데….”  

“난 집에 갈 테니까 너 혼자 가.”  

“아니야. 난 너랑 노는 것이 더 좋아.” 


기순이는 알랑거리며 또 내 눈치를 보았다.  


“난 이제 집에 갈 테니까 넌 너희 집에 가.” 


나는 울상을 하는 기순이를 매정하게 떼어버리고 집으로 달렸다. 나는 단숨에 일신 국민학교 모퉁이를 돌아 필동의 언덕길을 달려 올라갔다. 기순이가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것은 알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멀리 그 애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한길을 지나 골목을 들어서니 라일락 꽃향기가 반가운 듯 나를 맞았다. 우리 집 담장 안의 라일락 나무는 요즈음 계절을 맞아 망울망울 보라색 자태에 걸맞은 향기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꽃밭*  


“어디를 다녀오기에 그렇게 숨이 턱에 찼을까?” 


꽃밭에서 물통을 들고 꽃을 다듬던 아빠가 들어오는 나를 보고 반기며 말했다. 우리 집 앞마당은 꽃을 좋아하는 아빠가 가꾼 온갖 종류의 꽃들로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가지가지 꽃들로 가득하다. 꽃밭 가운데 물통을 들고 서 있는 아빠는 마치 한 폭의 완성된 수채화처럼, 항상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이 계절에 전시된 그림처럼 변함이 없다.  


“친구 집에 갔었어.”  

“친구?… 누군데?”  

“아빠는 몰라. 우리 반에 새로 온 아이야.”  

“그래? 우리 희수만큼 예쁘게 생겼니?” 


아빠에게 나 희수보다 더 예쁜 계집아이는 없다.  


“몰라.” 


나는 점잔을 빼본다. 정말을 말할 마음은 없다. 뒤통수까지 바짝 치켜 깎은 단발머리에 풀기를 세워 빳빳하게 다린 흰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를 길게 내려 입은 기순이의 촌스러운 모습을 보면 아빠는 놀랄걸.  


“하하…. 어디 사는데?” 


아빠는 꽃잎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꽃밭 사이로 물을 뿌리며 말했다.  


“저기 시장 안에, 그런데 집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어.” 


나는 그 음습한 골목길을 떠올리며 방금 뿌린 물을 머금은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우리 집의 꽃밭을 바라보았다. 나와 아빠는 함께 노래를 부른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선화도 한창입니다.”  


정말 우리 집 꽃밭에는 채송화도 봉선화도 그득하다.  


“아빠가 메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나팔꽃은 왜 아침에 활짝 폈다가 오후에는 쪼그라들고 말지?” 


아빠에게 묻는다.  


“아침부터 나팔을 부니까 피곤해서 쉬어야지.” 


정말 아침에는 활짝 핀 꽃잎에서 선명한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기라도 할 것 같다. 엄마가 동생 지수를 안고 마루 끝에 나와 앉아 우리들을 바라보면 아빠는 행복하다. 이 계절의 우리 집 꽃밭은 이웃집에서 일부러 구경을 올만큼 갖가지 꽃이 만발하다. 장미와 세르비아, 수선화, 과꽃, 그리고 달리아 등 온갖 꽃들이 자태를 한껏 뽐낸다. 그리고 이 여러 꽃이 뿜어내는 꽃향기는 이 골목 안의 공기 속을 떠다니며 지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꽃이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희수라고 했다. 


“희수와 지수가 우리 집 꽃밭에서 자라는 꽃 중에 제일 예쁘고 귀한  꽃이야.” 



*기순이*  


“희수야. 쟤 말이야.” 


내 옆에서 도시락을 먹던 시숙이가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점심을 먹는 기순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6학년이 될 때 시골에서 전학 온 애인데 촌스럽고 작은 키에 볼품없게 보여 그동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우리 반 반장이고 대장이다. 아이들은 내 환심을 사기 위해 알랑거린다.  


“기순이?”  

“응. 꼴에 말이야. 자기네 집에 티브이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는 거야. 그리고 글쎄 침대도 있대. 근데 쟤네 옆집에 사는 순자가 그러는데 말짱 거짓말이래. 쟤네 아부지가 시장에서 장사하는데 집에 그런 거 하나도 없대. 정말 가난뱅이래.” 


시숙이가 전해주는 기순이의 신상명세서는 역시 예측한 대로였다. 시숙이는 입을 삐죽이며 내 반응을 살피며 고자질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얼핏 그 애를 바라보았는데 때마침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히는 중인 것을 알 수 없는 기순이는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 기쁜 듯 환히 웃었다. 거짓말쟁이. 나는 속으로 되새기며 늘 빳빳하게 풀 먹여 다린 촌스러운 흰 블라우스를 경멸하듯 보았다. 나는 기순이의 웃는 얼굴을 못 본 척 외면하고 말했다.  


“가난뱅이들은 부러워서 그런 거짓말을 해.”  

“맞아. 부러워서 거짓말을 할 거야.” 


시숙이가 즉시 가난한 사람들은 부러워서 거짓말을 한다는 나의 대답에 기쁜 듯 동조했다. 그것은 자기네 집은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절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나로부터의 확인 덕에 생긴 자부심이기도 할 것이다. 컬러 TV가 나오기 전 그 당시, 흑백이기는 해도 TV나 냉장고 같은 것을 갖추고 사는 집은 우리 반에 몇 명 안 되었다. 그건 그 집안의 경제와 문화 수준을 알아보는 척도였고 그런 것을 갖춘 집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의 사이에는 보이지는 않아도 뚜렷한 선이 그어져 있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자격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 것 이외에 우리 집에는 자가용 코로나와 피아노와 전화기도 있다. 아버지는 회사 사장이며 그래서 나는 부잣집 딸이었고 그것은 나를 두고 도는 이 우주의 모든 행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 반에서 모든 과목이 일등이다. 산수 100점. 국어 100점. 자연 100점. 체조 100점. 미술 100점. 음악 100점. 엄마의 극성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 교습을 받았기 때문에 반주를 도맡아 하는 음악 시간 점수가 100점인 것은 타당하다 하겠지만 체조나 미술까지도 골고루 100점인 것은 다른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게 100점의 점수를 매기는 이 선생들은 한결같이 나를 보면 먼저 반색을 하고 달려와 아는 척을 했다. 그것은 당연했지만 그래도 내게 100점을 매기는 순간 어떤 선생은 조금 고민을 했으리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순이가 학교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기순이가 어쩐지 싫었다. 항상 내 주위를 맴돌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온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나는 그 웃는 얼굴이 싫었고 내 환심을 사기 위해 눈에 보이게 애쓰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항상 함께 다니는 짝꿍 시숙이가 내 곁에 없는 순간 기순이는 잽싸게 내게 달려와 손에 봉지 하나를 쥐여주고는 달아나 버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봉지를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그것은 어쩐지 뇌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어서 딴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본능 같은 것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집에 와 열어 보니 우리들 사이에 유행하는 여러 모양의 색색 가지 지우개들과 예쁜 디자인의 연필깎이와 색연필이 토끼 귀를 단 분홍색 연필통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이따금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서 그들이 귀중하게 여기는 물건들, 머리핀이라든지, 미제 캔디 같은 것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이것은 정말 큰 선물이다. 예쁘게 접어놓은 색종이에는 편지가 쓰여 있었다. 


   〈희수야. 선물이야. 네 친구가 되고 싶어.〉 


뇌물은 역시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 이튿날 선물의 약발이 어느 만큼 유효한가 궁금해 달려온 기순에게 나는 다정하게 말했다.  


“고맙다.”  

“우리 엄마가 나 쓰라고 준 건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응. 난 그런 것들 많지만 예쁘더라.” 


기순이는 기쁜 얼굴로 웃었다. 그런 물건들로 나의 환심을 샀으므로 당연히 내 친구가 되었다는 기순이의 생각은 잘못이기는 하지만 내 관심 안에 있게 되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나의 기순이에 대한 은근한 배려는 영악한 아이들에게 즉시 감지되었고 기순이는 따돌림의 대상에서 슬며시 제외되었다. 방학을 앞둔 어느 날, 기순이가 혼자 교문을 나서는 나를 어디서 발견했는지 달려와 봉지를 또 내밀었다.  


“희수야. 이거 너 줄려고 기다렸어.” 


내가 봉지를 열고 들여다보는 것을 기순이는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지난번 내가 받은 것과 같은 학용품이 또 가득히 들어있었다.  


“이것들 어디서 났니?” 


나는 기순이를 다그쳤다. 부잣집 딸도 아닌 것이 어떻게 이런 것들을 사 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기순이는 내 다그치는 태도에서 혹시 도둑질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눈치챈 듯 서둘러 말했다.  


“으응, 우리 엄마가 하는 가게에서 가져온 거야. 제일 좋은 건 엄마가 내게 먼저 갖다 주시거든. 앞으로 얼마든지 더 가져올 수 있어.”  

“정말?”  

“정말이야.”  


기순이는 내게 앞으로 얼마든지 더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쁜 듯, 자랑스러움이 담긴 얼굴로 힘주어 말했다. 나는 슬며시 내 팔을 끼는 기순이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얼마든지 더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넌 왜 나랑 놀고 싶은데?” 


나는 슬쩍 튕겼다. 그런 질문은 할 필요도 없다. 나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아이가 우리 반에 어디 있는가….


“우리 엄마가 이 학교로 전학 올 때 그러셨어. 먼저 그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고 이쁜 아이랑 친구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우리 엄마한테 네 이야기를 했더니 너 주라고 이것 싸주셨어.”  


기순이는 교활하게 웃었다.  


“음…. 그래?” 


그것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 이후 기순이는 부지런히 예쁜 지우개나 색종이 같은 학용품들을 날라왔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뇌물이 힘을 발한다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게 되어 있는 것일까…. 그래서 딴 아이들은 얼씬도 못 하는 우리 주위를 기순이는 맴돌 수 있게 되었다.  


“너희 집에 침대도 있고 티브이도 있고 냉장고도 있다고 그랬다며?” 


어느 날 시숙이가 기순이에게 한 방 먹였다. 기순이는 거짓말쟁이라는 혐의를 해명해야 했다.   


“정말이야.” 


기순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너희 옆집에 사는 순자가 그러는데 그런 것 하나도 없다던데?” 


시숙이는 조금도 기세를 낮추지 않았다. 요즈음 내가 확실하게 기순이를 싸고돌아 샘이 났을지도 몰랐다.  나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힐난의 눈초리를 기순에게 보냈다. 기순이는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우리 언니 집에 그거 다 있어.”  

“언니 집?” 


우리들은 모두 ‘언니 집’과 ‘우리 집’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생각해보아야 했다.  


“언니가 어디에 사는데?” 


기순이는 아무 대답도 안 하고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것은 빠져나갈 수 없는 거짓말의 그물에 걸리는 순간이었다.  


“넌 거짓말쟁이야. 네 언니 집에 있다면 우리가 믿을 줄 아니?” 


우리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언니네 집' 하면 기껏해야 시집가서 시부모 모시고 부엌에서 사랑방, 건넌방으로 밥상 들고 쫓아다니는 새댁 수준 이상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침대도 있고 티브이에 토스터 그리고 냉장고까지도 있다니…! 우리 반에서 제일 부자인 우리 집에도 침대는 없었다. 그날 기순이는 내 뒤를 쫓아왔다. 그리고 말없이 골목을 도는 내게 다가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정말 언니네 집에는 다 있어.”  

“넌 거짓말쟁이야.” 


기순이는 울상을 지었다.   


“언니는 나보고 자주 놀러 오라고 하는데 엄마가 못 가게 해. 언니한테 간 것 들키면 나 혼나.”  

“왜?”  

“나도 몰라. 근데 우리 엄마는 막 싫어해. 내 딸이 아니라고 야단하는 걸 들었걸랑.”  

“너희 언니는 시집갔니?”  

“그게 말이야, 나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언니는 세컨드래. 그런데 아주 부자야.” 


기순이는 약간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는데 나도 그 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게 뭔데?” 


누군가가 우리들 귀에 흔히 들어 알고 있는 영어도 꽤 된다고 그랬는데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세컨드*  


“아빠, 세컨드가 뭐야?”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세컨드?”  

“응.”  

“갑자기 무슨 영어냐? 세컨드란 우리말로 첫째, 둘째, 셋째, 하듯 퍼스트, 세컨드, 써드라고 하지. 순위를 표시할 때 하는 영어야.” 


아빠는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해석이었다. 그럼 기순이네 언니가 세컨드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런데 기순이가 그러는데 그 애 언니가 세컨드래.”  

“아이들이 별소리 다 하는구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엄마가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아빠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아빠에게 생선구이를 발라주며 말했다.  


“여보. 요즘 식사를 잘 못 드시는 것 같은데 의사에게 가보지 않아도 될까요?”  

“소화가 좀 안 되는 듯싶은데 괜찮아질 거요.”  


아빠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엄마에게 대답했다.  


“우리 언니가 너랑 같이 놀러 와도 된다고 그랬어. 가면 침대도 있고 티브이랑 토스터랑 정말이야, 다 볼 수 있어.” 


방학하던 날 기순이가 내게 달려와 말했다. 저희 엄마가 아무리 못 가게 해도 돈 많은 언니 집에 드나들며 기순이는 호강을 즐기고 있었다. 순위를 정하는 단어 세컨드와 기순이네 언니가 세컨드라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느낌에 세컨드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쓰는 말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나도 침대가 있고 티브이가 있고 토스터를 갖춘 기순이 언니의 집은 가보고 싶었다. 거기에 가면 진정한 세컨드라는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 갈 건데?  

“아무 때나 와도 된다고 그랬어.” 


그해 여름 방학은 길고 지루하고 더웠다. 우리 집에는 아빠가 나와 꽃밭을 가꾸며 함께 노래 부르는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대신 아빠는 자꾸만 토하고 아파했다. 의사 선생님이 자주 우리 집을 방문하여 아빠의 팔에 주사를 놓고 할머니랑 엄마의 얼굴에 근심이 쌓여갔다. 아빠의 꽃밭도 점점 시들어갔다. 채송화, 봉선화, 영산홍과 유리 창문을 타고 올라와 새벽이면 가득히 꽃을 피우는 나팔꽃, 갖가지 색깔의 달리아, 수선화, 베고니아, 그리고 이름 모르는 꽃들. 이 꽃들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아픈 아빠 대신 꽃밭에 물을 주고 흙들을 보듬어주고 영양제를 주었다. 마루에 나와 앉아서 아빠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어쩐지 아빠는 아프기도 하지만 점점 생각에만 잠겨있는 때가 많았다. 나도 독감에 걸려 몹시 앓았던 적이 있었다. 목이 아파서 말도 못 했고 밥도 못 먹고 열이 나서 며칠 동안 잠만 잔 적이 있었다. 아빠도 그렇게 아프다가 다시 회사에도 나가고 꽃밭을 가꾸고 나와 함께 노래도 부를 것이다.  


“희수야. 나 내일 언니네 집에 놀러 가는데 같이 가.” 


피아노 교습소에서 레슨을 받고 나오는 나를 기다리던 기순이가 달려와 소리쳤다. 


“언니가 오늘 태극당에 가서 빵이랑 빠다를 사 온다고 그랬어, 토스터에 구워준다고. 거기다 잼을 발라 먹으면 정말 맛있어.” 


기순이는 나를 기쁘게 해 줄 뉴스를 전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여기서 만나.”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그 음침한 골목길이 어쩐지 싫었지만, 그 대문만 열고 들어가면 별천지가 있을 것 같았다.  


“엄마. 기순이가 내일 지 언니 집에 같이 놀러 가자고 하는데 레슨 끝나고 가서 놀다 와도 돼?”  

“어디에 사는데?  

“저기 시장 안에. 그런데 굉장히 잘 산대.”  

“언니가 시집을 잘 간 모양이구나.”  

“으음, 그건 잘 모르겠고, 세컨드라는데 그게 뭐지?  

“요전에 말하던 애로구나. 여자가 세컨드인 것은 안 좋은 거야. 그런 데 쫓아가지 마라.” 


짐작대로 엄마가 세컨드는 안 좋은 것이니 가지 말라고는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 별천지 속에 가 있었다.  

“알았지?” 


엄마는 내게서 다짐을 받으려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내 마음은 확고해져 있었다. 


기순이는 약속대로 피아노 교습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한테 나랑 제일 친한 우리 반 반장이고 제일 예쁜 친구랑 같이 간다고 그랬어.” 


기순이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번잡한 시장 안의 소란과 풍기는 냄새들 속에 그 골목은 여전히 음침한 기운을 떨구고 있었지만, 골목 끝에 있는 대문 안에만 들어가면 무지개가 걸려있는 별천지가 있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게 했다. 



* 기순이네 언니 *   


기순이가 대문 한쪽을 밀자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언니, 나 왔어.” 


대문 안으로 들어선 나는 방금 지나온 그 어두운 골목길 끝에 정말 별천지처럼 나타난 장면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곧장 집으로 이어지는 유리를 댄 출입문 사이 넓지도 않은 땅에 한창 피어난 달리아와 과꽃으로 가득한 꽃밭이 마치 '꽃밭'이라는 제목의 한 폭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는 잠시 서서 그 꽃밭을 내려다보았다. 아빠만큼이나 꽃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일구어내는 작품일 것이다. 우리 집 앞마당의 꽃밭처럼 밝고 드넓은 대지 위에서만 꽃이 피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렇게 모든 것이 차단된 막다른 골목에도 꽃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과 태양의 빛은 스며드는 모양이다.  


“언니!” 


기순이는 출입문을 드르륵 열며 또다시 큰 소리로 언니를 불렀다. 집안에는 사람이 있는 기척이 없었다. 언니는 빵을 사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기순이를 따라 마루 위로 올라섰다. 집안 구조는 한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넓은 마루 오른편의 닫혀있는 문은 안방인 듯했고 마루 왼쪽으로는 그냥 확 트인 부엌이 마루와 연결되어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는 진짜 우리 집의 것보다는 작지만 아담한 흰 냉장고가 있고 그 옆 탁자 위에는 우리 집 것과 같은 진짜 토스터가 흰 레이스가 달린 덮개를 쓰고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별천지는 아니었지만, 그 음습한 골목 끝에 이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살림집이 도사리고 있으리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 못 할 것이었다.  


“언니가 빵 사러 가서 아직 안 왔나 봐. 우리 사이다 먹자.” 


기순이는 자랑스럽게 냉장고를 열고 캔 하나를 꺼내 두 개의 컵에 따랐다. 부엌 창문에는 흰 바탕에 장미꽃 무늬가 있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구석구석 앙증맞고 귀여운 장식품들로 치장된 집안은 아늑하고 거의 정다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쩐지 오래전에 가 보았던 동화 속의 나라 같은 느낌이 드는……. 

‘침대 볼래?’하며 기순이가 안방 문을 열었다. 기순이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 안방에는 정말 미국 영화에서 보던 으리으리한 커다란 침대가 방을 거의 채우듯 한가운데 분홍색 이불을 쓰고 놓여있었다.  


“정말 푹신푹신해. 마침 언니가 없으니까 여기 한번 누워볼까?” 


기순이는 침대에 풀쩍 뛰어올라 두 세 번 퐁퐁 뛰어오르더니 한가운데 사지를 쭉 펴고 누웠다.   


“희수야, 너도 나처럼 해 봐. 재미있어.”  

“그러다 너희 언니 오면 어쩌려고 그러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침대에 나도 누워보고 싶었다. 나는 기순이처럼 퐁퐁 뛰지는 않았지만 침대 위에 누웠다. 우리 집 온돌방과는 비교도 안 되게 푹신한 침대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이런 데서 잠을 자는 기순이 언니는 얼마나 좋을까…. 기순이 언니는 왜 세컨드여서 나쁜 것일까….   


“기순아, 너희 언니가 세컨드라는 게 뭐니?” 


기순이가 팔꿈치로 목을 받친 채 옆에 누워서 묻는 내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으음 진짜 시집간 게 아니고 진짜 부인이 있는 아저씨의 가짜 부인을 세컨드라고 부르는 거야.” 


기순이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자신이 자랑스러워, 거만을 떨며 말했다. 나는 생각났다. 


“아, 그건 첩이야!” 


내가 지르는 소리가 너무 컸었던지 기순이가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바보야. 진짜 부인이 있는 사람과 사는 여자가 첩이지, 안 그러면 왜 세컨드라고 하니?” 


기순이는 내가 첩이라고 말하는 것이 기분 나쁜 듯 입을 꼭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숫자를 세는 뜻이라는 것은 진짜 부인이 퍼스트이고 가짜 부인이 세컨드라는 것을…. 그 시절, 우리 아이들에게 첩이라는 존재는 나쁘고 고약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침을 튀기며 할아버지의 첩을 ‘천년 묵은 여우도 고렇게 요사스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럴 때의 할머니 얼굴은 딴 사람 같아 싫었다. 나를 볼 때마다 얼굴 가득 함박꽃 같이 웃는 얼굴만 보이던 내게 할머니의 그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새파랬고 사나운 눈매여서, 옆에서 잘못했다가는 한 대 얻어맞을 것 같이 무섭고 낯설었다. 천년 묵은 여우보다 더 무서운 존재. 그 요사스러운 존재가 우리에게 줄 빵을 사러 태극당에 갔다니…!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이 침대에 그렇게 누워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침대 옆에는 하얀 포마이카로 된 번쩍거리는 화장대가 놓여있었는데 그 위에는 갖가지 화장품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화장대 옆에는 이 침대의 주인인 기순이 언니의 사진이 창문만큼이나 큰 사이즈로 액자에 걸려있었다. 극장 앞에 걸려있는 영화 주인공 얼굴같이 화려하고 예뻤다.  


“우리 언니 예쁘지?” 


기순이가 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싶은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배우같이 예쁘다….”  

“으음,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어.” 


첩이란 뿔 달린 도깨비같이 무서운 존재가 아닌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화장품들 사이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란 금테 두른 사진틀 하나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는 프레임 가득히,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의 환히 웃는 얼굴 사진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 사진틀을 집어 올렸다. 왜 아빠 사진이 여기에 있을까…. 같이 꽃밭을 가꾸고 함께 노래 부르고 하하,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정다운 얼굴이 어째서 이 햇볕도 안 드는 골목길 속, 침대가 있는 기순이 언니의 안방에 놓여있는 것일까…. 의아하게 쳐다보는 내 시선을 따라 사진을 보며 기순이가 말했다.  


“우리 언니가 그 사장님의 세컨드라고….” 


내가 골목길을 어떻게 달려 나왔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문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채송화니 과꽃을 한껏 잡아 뽑아 그 음습한 골목길에 갈기갈기 뜯어 팽개친 것은 생각난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방향을 알 수 없는 분노와 질투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면서 집으로 내달렸다. 엄마의 다정한 얼굴이 할머니를 닮아 새파랗게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두려웠다. 아빠는 아파서 병석에 누워있었고 엄마는 그 곁에서 어두운 얼굴로 아빠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흐르던 행복의 늪이 말라가는 것 같이 우리 집 꽃밭도 말라갔다. 그리고 아빠도 점점 말라갔다. 나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개학하고 기순이가 또 봉지를 내밀었을 때 나는 그 애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영문도 모르는 채 내게서 떠밀려 나가 멀리서 떠도는 기순이에게 더 이상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는 볼 수도 없는 아름다운 꽃들로 그득하다는 저세상의 꽃밭에 그토록 빨리 가서 살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빠는 그해 가을 끝머리에 저세상으로 가셨다. 앞마당에 흐드러지게 아름답던 여름꽃들을 다 보듬어 안고 간 듯 메마른 꽃줄기들만 꽃밭 자리에 무성하게 잡초처럼 질펀했다. 내 가슴속에 영원히 묻어버린 그 음습한 골목 끝 대문 안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꽃들도 함께 거두어 갔을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애들하고 재미있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 보며 살자고 했지요, 나를 보고 꽃같이 살자고 했지요'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이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어쩐지 그 기분 나쁘게 내게 다가왔던 음습한 골목길 끝, 대문 안에 펼쳐졌던 아빠의 꽃밭이 내 가슴속의 꽃밭을 사멸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