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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Mar 30. 2022

함께 고통없는 곳으로...

    김경식 할아버지가 사망한 것을 나는 신문을 보고 알았다. 78세인 김경식 노인은 최근 암 진단을 받고 비관하던 중 10년 전부터 뇌졸중으로 운신을 못 하는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은 목욕탕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매일 아버지와 인근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같이하는 아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아 아파트에 갔다가 두 사람이 그렇게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이 기사를 보고 정말 안 됐구나, 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그동안 이따금 만났고 바로 며칠 전에도 만났었던 환자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그런데 암 센터의 샤린이 내게 전화를 해서 이 김경식 씨가 그분인 것을 알았다. 가슴에 타앙, 하고 무거운 철판이 떨어지는 듯했다. 나 자신이 그분의 예측 가능했던 자살을 방관해버렸던 것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나를 친 것이다. 


두어 달 전 처음 그분을 만났을 때 그는 아들과 함께였다.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그 전에 한 번 나를 찾아왔었는데 무언가 내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였던 것 같았다. 착해 보인다기보다는 어리숙해 보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이 아들은,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똑바로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빙빙 말을 돌려 하다가 그냥 돌아갔었다. 얼핏, 부모님과 셋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때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신지 똑똑히 설명해 주셔야 도와드리지요.” 


그 이후 어쩐지 이 아들의 선한 눈이 떠올라, 자신의 말을 잘 표현할 수 없는 장애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었나, 하고 잠깐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좀 더 따뜻하게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 후 이 아들이 휠체어를 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와서 무슨 검사를 받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는 증상이 무거워 보였다. 저 사람 어머니 뇌졸중이 심하게 왔구나, 지난번에 그것 때문에 도움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의논하려고 왔었나, 생각하며 가볍게 묵례만 하고 그냥 지나치는데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웃는 그에게 뻔한 인사를 했다.  


  “어머니가 뇌졸중이신가 봐요.”  

  “네, 풍이……….” 


여전히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냥 또 웃는다. 무언가 빠진 듯한 그가 풍을 맞은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고 가는  뒷모습을 눈으로 바래며 어쩐지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암 센터에 왔는데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후 방사선 치료를 위해 의사와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김경식 씨를 기억하는 것은 그 첫인상이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는 나를 귀찮다는 듯이 흘낏 쳐다보았을 뿐 단 한 번도 입을 열어 말을 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는 듯했는데 나는 단지 암을 진단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가 보다, 하고 깊이 생각지 않았었다. 전립선암은 대개 치료받으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암 치고는 대수롭지 않게 치는 암이라고 들었던 나는 비탄에 빠져있는 듯한 노인을 그러려니 하고 넘겨 버렸던 것이다. 김경식 씨의 방사선 치료는 사실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6주 동안 주말만 빼고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와서 대략 20분 정도 잠시 누워만 있으면 되는, 아무 고통도 없고 잠시 불편할 뿐인 치료이다. 아들은 지난번 휠체어의 어머니를 대할 때 느낌대로 이 아버지도 극진히 모신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부자에게서 풍기는 느낌은, 지금은 몰락했으나 한때는 위엄과 품위를 지키며 살았음 직한 단아함이 엿보였다. 지금은 낡고 바스러져 미풍에조차 날아가 버릴 듯한 이 가정의 풍경. 뺨 위에 흘러내린 흰 머리 한 자락 쓸어올릴 수 없는 마비된 몸을 가진 어머니. 암 선고를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아버지, 그 앞에 무언가, 꼭 필요한 인간의 요소가 결핍된 듯한 아들. 설사 그 결핍된 요소가 살기 위한 영악함이라 할지라도…. 이 가정의 풍경이 한 장의 낡은 사진같이 내 가슴에 다가왔었다. 


아들이 내게 어려운 부탁이라며 자신이 일을 나가야 하는데 아버지가 매일 아침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올 수 있는 교통편을 주선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홀리네임 병원 한국부에는 환자 교통 서비스가 있다고 누군가에게서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염려 말고 치료를 받기 시작하는 날짜가 잡히면 연락하라고 내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의 얼굴에 안도와 감사의 기쁨이 떠올랐다. 그 후 일주일쯤 지나서 그는 아버지가 다음 주 월요일부터 치료를 시작한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그가 불러주는 대로 컴퓨터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넣고 병원에 오시기 전날 오후에 운전기사가 전화를 드릴 것이니까 아무 염려 마시고 기다리시면 된다고 이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후 김경식 씨 본인이 전화해 오셨다. 몹시 짜증이 난 목소리였다. 


  “나 김경식이오. 운전기사가 전화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한없이 기다리게 하고 소식이 없는 거요?” 


항의 전화였다. 김경식이가 누군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병원에 무슨 일로 오시는지요?”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암에 걸려서 방사선인데….”  


그때야 나는 생각이 났다. 아, 그 아들 옆에 말없이 서 계시던 노인. 컴퓨터에 들어가 보니 이틀 후에 약속 시각이 잡혀있다.  


  “병원에 오시는 날은 내일 모래입니다. 내일 오후에 운전기사가 틀림없이 전화를 드릴 테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김경식 씨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방사선 치료를 받기 시작한 얼마 후 김경식 씨가 매일 잘 오시느냐고 운전 기사에게 물으니 그분이 더는 오지 않아도 된다 했다 해서 더이상 안 모시러 간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미 죽음의 준비는 시작되었을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그 아들이 해드릴 수 있는 형편이 되었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신문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따금 나갔다는 인근 교회에서도 이 가족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김경식 씨가 아들과 교회에 나온 것을 몇 번 보았다는 전도사에게도 그 얼굴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폐쇄적으로 살아왔던 듯했다. 아들이 한동안 가정을 꾸미고 살았었는데 언젠가 이혼했다는 말을 누군가를 통해서 들었노라고 전도사는 덧붙였다. 


그들 가족은 희망과 꿈을 바라보고 미국 이민의 길을 떠났을 것이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 가정에는 병마가 닥쳐 어머니는 운신을 못 하게 되고 아들은 가정을 잃고 그러다가 아버지는 암에 걸리고…. 암에 걸린 아버지는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을 거동을 못 하는 아내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졌을 것이다. 그 아내를 아들의 어깨에 맡기고 혼자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말 없는 얼굴의 깊은 절망의 그림자를 나는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바스러질 것 같은 낡은 사진 속의 한 가족의 풍경에서 갑자기 사라진 부모 옆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간신이 혼자 남아 서 있는 아들을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왔던 사람, 너무나 무거워서 혼자서는 뻗치고 설 수 없는 아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 아내를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린 아버지. 내 손을 펴서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길은 정말 없었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 속의 절망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눈빛이 너무나 어둡고 아팠기 때문이다. 그 노인이 준비했을 마지막 순간들이 한 장면, 한 장면, 선명하게 스크린처럼 내 뇌리를 스쳐 갔다. 나는 내게 내밀은 손을 붙잡아주지 않았던 자책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이제 완전한 마무리를 끝내고 고통 없는 길을 아내와 함께 떠난 김경식 씨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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