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혜영 Mar 17. 2022

황혼의 길

    응급실에 들렀더니 눈이 퉁퉁 부어서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 옆에 한국 해병대 마크가 새겨진 푸른 점퍼를 걸친 할아버지가 넋이 나간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다.

 

  “무슨 일로 응급실에 오셨어요?”


인사를 하며 보니 우리 암 환자 서포트 그룹에 나오시는 강 사무엘 노인이시다. 눈이 퉁퉁 부어서 누워있던 할머니도 나를 보고 반가운 듯 벌떡 일어나 앉으려다가 아이 구구, 하고 다시 눕는다. 왜 응급실에 오게 되었는가를 두 분이 같이 입을 열어 설명하시기 시작하는데 쉽게 이야기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그다지 응급 치료가 필요한 급환은 없어 보이는 것이 궁금하다.


  “내가 저희들을 어떻게 키워 놨는데....”

  “우리들이 병나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올라오지도 못하게 하고....”

  “우리가 애들 뒷바라지를 잘해주지 않았으면 지들이 어떻게 오늘....”

  “뒤에서 할아버지가 붙잡지 않았으면 아래층으로 굴러떨어져 크게 다쳤거나 죽었을 거예요....”


대강 이야기 흐름을 들어보니 같이 사는 가족들 간의 문제로, 피해자인 주인공은 침대에 누워있는 할머니다. 그러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에다 한쪽 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아이 구구, 하며 누워 계신 것일까....


  “할머니. 진정하시고 차근차근 말씀해보세요.”


할머니는 진정이 안 되는지 또 눈물을 쏟아낸다. 옆에서 사무엘 노인이 거들었다. 사무엘 할아버지는 지난해 봄 홀리 네임 병원(Holy Name Medical Center)에서 담낭암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끝냈다. 그리고 한국인 암 환자 서포트 그룹에 몇 번 나오신 적이 있다. 그 후 방사선 후유증인지 계속되는 설사로 체중이 줄고 제대로 음식 섭취를 못 해 정말 뼈와 가죽만 남아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를 연상케 해, 보기만 해도 가여운 느낌이 드는 분이다.


 한마디 말을 뱉어내기도 힘에 겨운 듯한데 분노와 흥분에 벌게진 얼굴로 목청을 돋우신다. 


  “우리 집 며느리가 제 시어미인 우리 마누라를 때려서 뒤로 자빠지는 걸 내가 옆에 있다가 잡아줘서 안 넘어졌어요.”


언젠가 한국 신문 어디에선가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일이 정말로 있으려고.... 설마.... 나는 말을 잊었다. 그리고 사무엘 노인의 앙상한 두 볼에 눈물이, 진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도깨비도 때려잡는다는 한국 해병대 출신이라고 자랑하시던 그 기개는 어디로 가고 며느리에게 얻어맞아 응급실 침대에 누운 늙은 마누라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야 하는가.... 모든 사정은 양쪽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던지 고부간의 갈등은 갈 데까지 간 것 같았다.

나도 내 시어머니의 며느리였을 것이고 내 며느리의 시어머니이지만 워낙 서로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으니 서로 상관을 안 한다. 챙길 일이 있을 때 서로 챙겨주면 서로 편하다. 하지만 같이 살게 되면 이렇게 문제가 곪다가 터지게 되는 모양이다. 할머니가 엄청나게 분이 차서 헉헉거리며 하소연을 계속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집 팔아 가지고 와서 그 애들 집 살 때 다 주었어요. 방, 세 개짜리 사서 하나는 우리 내외가 쓰고 또 하나는 저희들이 살고 또 하나는 손자 둘이 함께 쓰고 살았어요. 손자들 어렸을 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손잡고 학교에 데려가고 데려오고, 끼니때 맞추어 따신 밥해주고, 정말 손발이 다 닳도록 저희들 위해서 살았어요. 오하이오에 사는 딸이 자꾸만 저한테 와서 살자고 그랬지만 어떻게 할머니 할아버지 손이 필요한 손자가 있는 아들 집을 놔두고 딸 집에 가요? 인제 와서 후회막급입니다.”


옆에서 자신이 말할 차례를 이제나저제나 애타게 기다리는 사무엘 노인은 도무지 기회를 잡지 못하고 옆에서 전전긍긍이다.


  “그랬는데 손자들이 자꾸만 커가니까 저희들도 각방을 써야겠다고 졸라서 지하실에 방 하나를 꾸며 우리가 내려가고 저희 식구만 위에서 살게 됐어요.” 

  “그런데, 그런데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사무엘 노인이 분연히 들고 일어섰다.


  “그 지하실 방이라는 게 땅 밑이 아니고 경사가 진 곳이라 앞쪽으로는 차고로 들어와서 연이어 방이 있어요. 집의 뒤편으로 보면 땅 밑이지요. 그리고 변소와 샤워장이 방 옆에 붙어 있어서 우리는 그걸 쓰면 됐지요. 창문 하나 없는 골방 같은 거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런데 허리가 신통치 않은 마누라는 하루에 한 번씩 목욕탕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허리를 지져야 견디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까 자꾸 몸이 아퍼요.”


사무엘 노인은 이렇게 집의 구조와 마누라의 상태를 단숨에 설명하고는 만족한 듯 물러앉았다. 잠깐 휴식을 취한 할머니는 계속해서 뒷마당에 채소를 심어 잘 키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깻잎은 물론 배추에다가 상추랑 오이, 그리고 한국 고추를 심기만 하면 쑤욱쑤욱 자라는 걸 따다가 김치도 담그고 풋고추는 그냥 된장 푸욱, 찍어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어요? 그걸 계절에 따라 저희들 일 끝나고 오면 싱싱한 것 골라서 밥상에 올려 주곤 했어요.”


할머니는 잠시 채소밭의 야채 가운데 빠뜨린 것이 없나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말을 계속했다.


  “아, 그리고 친구한테서 뿌리를 얻어서 농사지은 토마토는 또 얼마나 잘 자라게요... 여름 내내 그걸 따서 먹는 재미도 크지만,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이 말을 하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순간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쪼랑쪼랑 매달린 토마토들을 눈앞에 그려보니 기뻐지는 것 같았다.


  “네에, 그렇겠지요... 그런데 평소에 고부간에 사이가 안 좋으셨나 봐요. 어떻게 하시다가 며느리한테 맞으셨어요?”


잠깐 한눈을 파셨던 할머니는 내가 묻는 말에 다시 제정신이 드는지 분개한 얼굴로 사정을 설명한다. 


  “이번만이 아니에요. 제 시부모를 사람 취급을 안 해요. 그 애들 결혼할 때 우리들이 반대를 했어요. 아주 인상이 고약해요. 눈이 짜악 찢어진 게 도무지 복이 안 붙게 생긴 데다가 고분고분 말을 할 줄 모르고 뭐라고 하면 대꾸도 안 해요.”


할머니가 잠깐 분을 삭이고 쉬는 틈을 타서 사무엘 할아버지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지난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집 앞의 큰 나무가 집의 드라이브 웨이(driveway)를 막아버렸어요. 그걸 애들이 집에 들어올 때 고생할까 봐 온종일 그 나무를 치우느라고 힘들어서 내가 폐렴에 걸려서 병원에 들어왔었어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고생했다고 이야기해 주시지 그랬어요?”

  “얘기, 하나 마나예요, 말해도 몰라요. 추운 겨울 며늘아이 아침에 출근할 때 발 시릴까 봐 보일러에 장화를 따뜻하게 해서 신고 가게하곤 했었는데 그런 것도 전혀 몰라요, 고마운 줄을 몰라요.”


사무엘 노인은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한 가닥, 한 가닥의 앙금들을 메뉴 펼치듯 늘어놓았다. 그 다양한 메뉴마다 섭섭하고 괘씸하고 어이가 없는 것이 밑반찬처럼 골고루 섞여 있었다.


  “그렇게 지내셨으면 아드님은 어땠어요?”


시부모와 며느리가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보다는 갈등이 많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좋은 시부모에 나쁜 며느리는 없다는 말을 명심하면 우선 내가 먼저 잘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며느리의 남편인 아들은 그동안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아들은 사업체가 버지니아에 있어서 주중에는 버지니아에 있고 주말에만 올라오기 때문에 몰라요.”

  “그러면 주말에만 오더라도 서로 이야기를 나눠서 부모와 자식 간인데 잘 지내셔야지요.” 

  “잘 지내기에는 이미 글러 먹었어요. 원래가 이 애가 싸가지가 없어요.”

  “그래도 손주들을 키워 주셨으니 손주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정이 들었을 텐데....” 

  “걔들도 어렸을 때하고 달라요. 중학교 고등학교랑 들어가서 대가리가 크고 나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습게 알아요.”


도무지 이야기가 평행선이다. 집안 가족들의 문제이고 보니 내가 나서서 옳다, 그르다 할 계제도 못 되고 이렇게 얻어맞았다고 경찰을 불러서 응급실에 들어온 노인네들이 답답할 뿐이다. 나는 누구 편도 아니며, 누구 편이 될 수도 없다. 그냥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공감도 하고 다독이는 게 중요하다. 괜히 맞장구를 치면 네가 뭔데 내 며느리를 나쁘게 생각하냐고 오히려 멱살을 잡히게 될지도 모른다... 또 이 자리에 없는 며느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메뉴 또한 다양할 것이다. 눈여겨보니 할머니도 처음 어이 구구하던 허리도 이야기하면서 많이 회복된 듯 자유자재로 누웠다 앉았다 하신다.


  “크게 치료하실 것이 없으시면 퇴원하라고 할 텐데, 그러면 다시 집에 들어가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두 분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쩔 것인가 난감한 표정이다.


  “저기요, 누가 그러는데 시에미 구박한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해서 집에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있다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될까요?”

  “며느리가 집에 못 들어오면 손주들이 좋다고 하겠어요? 그리고 이 집주인이 아들 며느리일 것이 분명할 텐데 어떻게 동거인이 집주인을 못 들어오게 합니까?” 


두 분은 극히 실망한 듯이 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할머니가 어떻게 하셨길래 며느리가 때렸어요?”

  “때렸다기보다는 밀었어요. 우리가 아래층에 살지만, 부엌은 위층에 있으니까 올라갔는데 애가 부엌에서 뭘 하고 있길래 문가에 그냥 서 있었어요. 그런데 나를 그냥 뒤로 밀어버리는 거예요....”


할머니의 말을 받아 사무엘 노인이 계속했다.


  “그때 내가 뒤에서 붙잡지 않았으면 그냥 층계 아래로 굴러떨어졌을 거예요. 내가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인데 나까지 같이 뒤로 굴러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정말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무서운 듯 몸을 움츠린다. 법적으로 당신들이 집안에 앉아 며느리를 못 들어오게 할 수는 없다는 내 설명에 맥이 빠진 듯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담당 의사가 와서 모든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으니 퇴원해도 된다고 알려준다.


 누구에게서 어떤 정보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한번 며느리를 혼내줄 참으로 며느리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가 용서해달라고 와서 빌면 다짐을 받고 그렇게 시부모로서의 위신을 세우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때였다. 경찰에게서 며느리가 타운 경찰에 두 분이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금지해달라는 신청이 접수되어 두 분은 그 지하실 방이나마 못 들어가시게 되었다는 통고를 해왔다고 응급실 직원이 와서 알려준다.


“아니, 그럴 수가 있어요?”


두 분은 정말 아연실색이다. 잠시 전에 다시는 며느리와 얼굴을 마주 보기가 싫어 들어가기 싫다던 집에 못 들어가신다는 통고를 받는 순간 너무너무 돌아가고 싶은 집이 된 모양이다.


  “왜 못 들어가요, 왜? 우리 짐들은 어떡하구요?”


할머니가 울상을 하고 소리친다. 통고를 받은 직원이 이어서 설명해준다.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들어가기 원하면 오늘 밤 5시부터 한 시간 동안 담당 경찰을 대동하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집은 물론 집 근처 15m 안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우린 오늘 밤 어디서 자라는 겁니까?”


직원에게 대드니 직원이 '아이던 노우(I don't know)'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퇴원하셔야 한다. 입은 환자복을 벗고 올 때 입으셨던 옷으로 갈아입은 후 멍하니 그냥 앉아 계신다.


  “다른 자녀분들 안 계세요?”

  “오하이오에 딸이 살아요. 그렇지만 어떻게 갑자기 그리로 가겠어요, 할아버지 병원 예약도 다음 주에 있는데 약이 떨어져서 의사는 꼭 봐야 해요.”

  “수중에 돈은 좀 있으세요?”

  “조금 있는 것 어디 맡겨놨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버지니아에 있는 아들한테 전화하세요, 며느리한테 쫓겨나서 갈 곳이 없다고요....”


나는 이 지경까지 가게 된 두 노인이 불쌍하고 답답해서 짜증이 날 정도로 화가 났다. 두 사람은 또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무슨 속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응급실 직원이 며느리와 통화를 했다는데 그쪽 이야기로는 시아버지가 자신을 지팡이로 때려서 멍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했다 한다. 나는 경찰이 통고한 시간이 되오니 어쨌든 가셔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머물만한 곳을 알아보시라고 재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릴 내쫓기야 할라고....”

“그럼, 그럼.....”


그리고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두 어깨가 땅에 꺼질 듯 애처로운 두 노인이 응급실 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에 석양의 햇살이 조는 듯 내려앉는데, 그 햇살마저 두 노인에게는 무거워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기적을 믿는 의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