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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Oct 06. 2021

이민자들의 세월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그 막강함은 한국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면 이곳에서보다 두 배 이상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소문을 낳아, 한동안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행을 했다. TV를 틀어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 젊은이들이 이제는 흔히 눈에 띈다. 이제 김 씨, 박 씨, 최 씨가 한국인들만의 라스트 네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물론 얼마 전까지도 한국인은 그다지 알려진 민족이 아니었다. 오래전 처음 세 들어간 아파트의 매니저가 나를 보고 달려와 함박꽃 같이 웃으며 ‘아유 제페니즈?(일본인이세요?)’하고 물었다. ‘노, 코리언(아뇨, 한국인이에요)’이라고 대답하니 샐쭉해져 돌아서 가던 것이 잊히지 않는다. 김치니 된장 냄새에 코를 쥐고 돌아서던 사람들이 이제는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도 만들어 먹는다는 기사도 보았다. 한국의 경제력이 높아지니 여기 한국인들의 위상도 높아졌다. 얼마나 좋은가⋯. 


딸 ‘디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집으로 담임의 편지가 왔다.


  ‘디이의 학교 생활과 태도에 대해 부모님과 상의하고 싶으니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마 전 디이의 방 쓰레기통에서 형편없는 점수가 매겨진 시험 답안지 몇 장을 발견했다. 이름 석자는 제대로 썼는데 그 아래로는 그냥 백지였다. 그 시험 답안지에는 부모의 사인을 받아오라는 메모가 있었다. 그걸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면 어쩌자는 것일까⋯. 


그보다 더 오래전 나는 부모님께 도저히 보여드릴 수 없는 점수의 시험 답안지를 들고 안방 문 앞에서 떨다가 머리를 써서 몰래 서랍 속의 도장을 훔쳐냈다. 서랍 속에는 도장이 몇 개인가 있어서 제일 허술해 보이는 나무로 된 도장을 훔쳐내 꽝꽝 찍어서 선생님께 가져가곤 했다. 범죄는 처음이 힘들다는 것도 알았다. 우수한 점수의 시험 답안지의 도장과 빈약한 점수의 답안지 도장이 생김새부터 틀리다는 것을 다행히 선생님은 적발하지 못했다. 문 앞에서 벌벌 떨던 일도, 들킬까 봐 눈치 살피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지능범답게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 내 예측이 옳았는지 도장 하나가 증발해버린 것을 부모님은 알지 못하고 사셨다. 그래도 한 가닥의 양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가⋯ 반세기가 지난 후 언젠가 이야기 끝에 어머니께 하하 웃으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실직고하니 ‘잘했다’하고 눈을 흘기시는데 전혀 화가 나신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나도 선생님이 무서워 시험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는 못했었다. 성적표를 받아오던 날의 악몽 같은 추억이 망령처럼 떠올랐다. 그 망령이 나를 붙잡았다. 나는 디이의 백지 시험 답안지들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펼쳐 놓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주자는 마음으로 혼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채 들락날락 며칠간 조금씩 오르는 혈압을 달래며 눈치를 보는데 아 이는 당돌하게 아무 내색도 없다. 그러던 중 선생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디이, 미시즈 보이런이 엄마 보고 만나자는 편지를 보내왔는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니?” 


디이는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겁이 나서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디이에게 문제가 있어요.” 


미세스 보이런은 50은 안됐지만 백인 특유의 잔주름으로 그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차가운 외모에 푸른 눈을 가진 여선생이다. 나와 디이는 여선생의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송구한 얼굴로 선생의 책상 위를 흘끔거리고 있었고 디이는 나와 반대로 골이 잔뜩 오른 얼굴로 여선생 뒤의 창밖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푸른 잔디 끝의 멀리 보이는 미끄럼틀에서 아이들 몇 명이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무조건 그 앞에서 아이를 야단치고 설교하고 타이른 후에 선생에게 용서를 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디이, 나 좀 봐라.” 


선생 앞에 앉아서 당돌하게 창밖만 바라보는 아이에게 선생이 말했다. 그런데 디이는 못 들은 척 꿈쩍도 안 하고 창밖으로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디이, 날 좀 보라니까⋯.” 


선생이 약이 오르는지 내 앞인데도 불구하고 짜증스러운 톤이 섞인 목소리로 채근했다. 그런데도 전혀 동요가 없는 아이를 잠시 바라보던 선생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보셨지요? 디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 도무지 내 말을 안 들어요. 그리고 이걸 좀 보세요.”


미시즈 보이런은 한 손으로 꼭 눌러 덮어 놓았던 종이 한 장을 펼쳐 내게 밀어 놓았다. 얼핏 처음에는 한 장의 만화를 카피해놓은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뿔이 달리고 흉측하게 생긴 마귀할멈과 별이 달린 막대기를 들고 있는 예쁜 천사가 그려진 종이였다. 그리고 마귀할멈 밑에는 ‘미시즈 보이런’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마귀할멈은 잉잉 울고 있었고 천사 그림 밑에는 ‘나, 디이’라고 씌어 있었다. 못된 마귀할멈을 천사가 혼내주는 그림이었다. 아주 잘 그린 그림이었다. 예술적인 안목으로 보자면 그 선이라든지 구성이 수준급이었다. 의아한 얼굴로 선생을 보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디이가 그렸어요?” 


바보같이 중얼거리는 내게 아직도 화가 난다는 얼굴로 그러나 한심한 듯 선생은 고개를 또 까닥 까딱 한다. 왠지 픽하고 웃음이 나오는 주책스러움에 위급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어 표정관리에 애를 쓰면서 나는 정신을 차리며 생각한다. 이건 사인 안 해 간 백지 시험 답안지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지만 문제아 징계위원회 같은 데 넘겨져 선생 모독죄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 

미시즈 보이런은 예측했었던 듯 꿈쩍 않고 창밖만 바라보는 디이 대신 죄인이 되어 오그라든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전혀 숙제도 안 해오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머니께서는 이 애의 시험 답안지를 보셨나요?” 


나는 시험지를 쓰레기통에서 찾아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백지 답안지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눈치만 보고 있다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선생은 작정한 듯 디이를 향해 선포했다.


  “디이, 나를 봐. 나를 보고 할 이야기 있으면 해 보라구, 내 말 안 들리니?” 


이런 학생이라면 내가 선생이라도 분통 터질 일이다. 나는 안달이 났다. 


  “디이, 밖은 좀 그만 내다보고 미시즈 보이런을 좀 보라니깐.” 


여전히 창밖으로 향한 아이의 고집스럽고 단호한 눈빛을 보며 나는 아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듯 한국어로 소리쳤다. 


 “보셨지요? 디이는 선생인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요.” 


선생은 증거를 잡은 취조관처럼 의기양양했다. 그때 옆에서 흥, 하는 콧방귀 뀌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은 본격적으로 아이를 노려 보았다. 상상이 안된다. 나야 비록 훔친 도장으로 위기를 넘긴 과거는 있었으나 이런 지경에 이른다면 오들오들 떨며 싹싹 용서를 빌 것이다. 아무리 세대가 변했고 교육방법이 다른 나라에서 성장했기로 이래도 되는 것일까. 아직 어린아이가 아닌가⋯. 아! 이 아이는 정말 문제아로구나. 나는 문제아를 둔 엄마의 고통을 순식간에 가슴 깊이 체험하였다. 이건 정말 큰일이로구나. 나는 위기를 큰 목소리로 모면해 보려는 듯 아이에게 소리쳤다.


  “디이, 너 왜 이러니? 선생님 보고 빨리 잘못했다고 그래⋯.” 


그 순간 디이는 시선을 돌려 선생을 보는 대신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엄마, 난 미시즈 보이런의 얼굴을 보기 싫어요.” 


이건 또 갈수록 태산이구나. 기가 막혀할 말을 잃고 쩔쩔매고 있는 나를 도와주려는 듯 아이가 선생을 향해 눈을 내리깔고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미시즈 보이런, 나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의자 밑으로 주저앉고 싶었다. 


  “너, 너 디이야⋯.” 


나는 말더듬이가 되어 말을 잇지 못하며 숨을 헉헉 내쉬었다. 미시즈 보이런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됐다.


  “네. 보세요, 내 학교 생활 30년에 이런 아이는 보도 듣도 못했어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예요.” 


나도 동감이었다. 둘이 거의 같은 이유로 넋이 나간 듯한데 아이는 두 사람의 감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자존심 강한 도도한 얼굴로 또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의 얼굴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은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람 특유의 자긍심과 고집스러움이 조화를 이루어 거의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나는 선생을 향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미시즈 보이런,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아이를 잘못 가르쳤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사과드립니다. 잘 타이르겠어요⋯.” 


나는 사실 대책도 없으면서 허덕허덕 두서없이 아득한 심정으로 용서를 빌며 속으로 한탄했다. 자식을 잘못 키운 엄마의 몫이 이것이구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내가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선생이란 무서운 존재였다. 나는 늘 뒷전에서 선생의 눈에 안 띄도록 조심했다. 그러나 눈에 안 띄도록 조심하는 것과 선생을 보기 싫어서 안 보겠다는 것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이 아닌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 오만방자한 아이에게 그냥 당하는 선생이 측은해 보여 한 대 쥐어박고 싶도록 아이가 미웠다. 선생도 이 애가 보기 싫었던지 나를 향해 '자, 어쩔 테냐?' 하듯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끄떡도 안 하던 아이가 계속 넋 나간 듯 선생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내게 폭발하듯 대들었다. 


  “엄마. 엄마가 왜 미시즈 보이런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거죠?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엄마가 잘못했다고 그래요? 내가 잘못했으면 내가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요.” 


갈수록 태산이다. 어찌 됐든 화가 난 선생에게 빌고 앞으로는 조심하겠다고 약속하고 교실을 나가 적당히 아이를 야단쳐주고 훈계하고 이 일을 끝내고 싶었는데⋯. 오늘의 미팅을 적당히 잘 마무리하여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험지 때문에 어두워졌던 내 인식 속의 검은 구름을 이 기회에 말끔히 씻어버리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당히 잘 넘겨 버릴 일은 애초에 아니었다. 후에 엄마한테 혼날 것 각오하라는 암시를 담은 부릅뜬 눈을 아이에게 보내며 힐끗 선생의 눈치를 보니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어떻게 요리를 해나갈 것인가 연구하는 주방장처럼 파란 눈을 빛내며, 성난 소처럼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그 기세에 눌려 나는 풀 죽은 소리로 딸에게 사정하듯 한국어로 말했다. 


  “선생을 마귀할멈이라고 한 것이 잘못인 것을 모르니? 빨리 잘못했다고 말해. 그리고 다시는 그런 나쁜 짓 안 하고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해. 선생에게 마귀할멈이 뭐야⋯.” 


그때 딸 디이는 보기 싫다던 미시즈 보이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미시즈 보이런, 당신은 내게 잘못한 것이 없나요? 당신은 나를 차별했어요. 나는 금방 알았어요, 나를 다른 애들과 다르게 대하는 걸요. 당신이 나를 어떻게 차별했는지는 스스로 잘 알 거예요. 내가 그런 당신을 어떻게 존경해요?” 


아이는 아이답지 않게 거침없이 말했다. 아이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분노가 밀물처럼 내 가슴에 쓸려와 파고들었다. 미시즈 보이런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가셨다. 반짝이던 푸른 눈이 안개가 낀 듯 빛을 잃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나처럼 말을 더듬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노우, 노우. 절대 그런 적은 없어, 그건 네가 오해한 거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에 힘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허둥대면서 계속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데 그 말들이 이미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딸 디이의 상처 받은 어린 가슴의 통증이 내 가슴에 칼처럼 예리하게 파고들어 깊게 퍼져 나갔다. 노랑머리들 속에 단 하나의 까만 머리, 흰 얼굴들 속에 노란 얼굴 하나...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의 눈이 뜨거워지며, 눈부신 태양 아래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위에 느닷없이 안개비가 내리는 듯했다. 


  “노우, 나는 알아요. 내게 거짓말하지 말아요.” 


이제 아이는 어쩐지 시선을 떨구고 있는 선생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오래전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학부모다. 


  “디이, 선생님이 너를 왜 차별하시겠니? 네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아이를 달래 보려고 쥐어짜는 내 목소리에 바람소리가 섞여 있는 듯했다. 나는 이제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또다시 공손하게 선생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과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잘 타이르겠어요.” 


그런데 차갑고 거만하던 선생의 태도에 이상한 변화가 온 것이 보였다. 무언가 덮어놓았던 흉터를 들킨 듯 그는 당황하고 허둥댔다. 그리고 따지고 드는 디이에게 은근하고 자애롭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이, 내가 차별을 했다고 생각한다니 정말 놀라겠구나, 나는 결코 그런 적이 없어. 내게는 너희들 모두가 똑같이 사랑스러워.” 


미시즈 보이런은 마귀할멈 따위는 이제 관심도 없다는 듯 갑자기 대두된 인종차별의 문제에서 빠져나가려고 허둥댔다. 그리고 확인하듯 내게 강조했다. 


  “나는 30년 가깝게 아이들 선생을 했어요, 그리고 이때까지 아이들을 차별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어요. 오늘 오시라고 한 것은 앞으로 디이가 학교 생활에 좀 더 흥미를 가졌으면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오시라고 한 것이지요.” 


디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기세 등등 선언하던 선생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이 자리를 빨리 얼르고 달래서 마무리하고 싶은 선생의 서두름이 묻어났다.


이 나라는 인종차별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엄연히 존재한다. 직접 당할 때도 있지만 느낌이 올 때는 더 깊다, 어디에서건 꿈틀댄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했다는 지적을 받는 일은 피해야 한다. 특히 공직자, 교육자들에게는 악몽이다. 신문에라도 나게 되면 수습하기 어렵다. 면허가 취소되고, 재수 없으면 법정에 서게 되고 겨우 혐의를 벗어나게 되더라도 연금이 따르는 명예로운 정년퇴직이 위태롭게 된다. 미시즈 보이런에게서 이 끔찍한 불운을 감지한 사람의 비굴함이 온몸으 로 드러났다. 


  “평등함을 지키며, 인종에 편견이 없는 것을 맹세하며⋯.” 


그의 머릿속에 교육헌장의 한 구절이 떠올랐을 것이다.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 이제 가요.” 


나는 엉거주춤 따라 일어나며 다시 한번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도 딸의 담임선생인데⋯ 


  “미시즈 보이런,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디이를 잘 부탁해요.” 


아이는 그 말을 듣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디이가 무슨 오해가 있나 봐요, 디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아주 예민해서 친구들하고도 잘 틀어져서 틴에이져 때보다 더 힘든 때라고 하지요. 디이에게 미시즈 보이런은 절대로 차별을 하는 선생이 아니라고 타일러 주세요. 저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짐을 받아두려는 듯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어 잡은 손을 흔들며 ‘물론이죠’라고 힘을 주어 대답했다. 문 밖으로 나가는 디이의 뒷모습을 좇는 미시즈 보이런의 눈빛에서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았음을 들킨 허둥댐이 엿보였다. 


나는 교실을 떠나기 전 책상 위에 펼쳐진 아이의 마귀할멈과 요정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만화 같아 보이지 않았다. 상처 받은 아이의 분노가 깊이깊이 가라앉아서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아파서 통곡하는 듯했다. 나는 그 그림을 그냥 놔둔 채 급히 아이의 뒤를 따랐다. 그림은 미시즈 보이런이 두고두고 보아야 할 것이었다. 


  “엄마는 왜 미시즈 보이런한테 잘못했다고 그래요? 그 여자가 먼저 내게 사과를 해야 하는데⋯. 엄마 때문에 나, 더 화났어⋯.”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딸이 내게 엄중 항의를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도, 그 이후에도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학년 종업식 때 가져온 성적표 뒷면, 담임선생의 학생에 대한 평가서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얼마 전,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된 딸 디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오래된 상처의 붕대를 풀 듯 조심스럽게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미시즈 보이런이 어떻게 너를 차별하던?” 


디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건 다 잊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안 잊히는 건 엄마가 그냥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는 거였어요.” 


디이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화가 난다는 듯이 입을 꼬옥 다물었다. 혹시 이 애는 그때 잉잉거리며 우는 마귀할멈 밑에 ‘엄마’라고 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까⋯ 나는 부끄러웠다. 


  “미시즈 보이런. 디이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세요. 문제가 있는 것은 디이가 아니고 당신이에요. 왜 디이에게 차별대우를 했어요?” 


나는 그때 소리치고, 책상을 두드리고 분연히 일어나 나왔어야 했다. 아⋯ 그랬어야 했다. 


  “미시즈 보이런 같은 사람은 어린아이들의 선생을 할 자격이 없어요. 아이들은 알아요. 나는 그 일로 강해졌어요. 세상에는 내가 앞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 일이 많구나, 하는 각오 같은 것 말이에요. 그때는 그냥 화나고 밉고 싫기만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의 아팠던 한 토막의 추억을 관대한 용서와 이해로 승화시킨 딸을 보며 나는 드디어 미시즈 보이런을 용서하였다. 그리고 나를 용서하였다. 


이제는 세계의 흐름 속에 우뚝 선 한국의 이민자들이 사는 이 땅에 ‘디이’의 다음 세대는 차별대우를 받는 아픔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이는 아마 없게 될 것이다. 그들보다 먼저 살다 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세대들이 고통과 상처를 경험하고, 강해지고, 그리고 용서함으로 이루어놓은 단단한 토양 위에 살게 될 것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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