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쐬려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고려고등학교 주변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가면 일곡동, 나는 왼쪽 오치동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북부경찰서를 지나고, 현대병원 앞을 지났다. 여기서 또 좌회전하면 일방통행 도로, 한국전력공사 광주 지역본부 방향으로 거슬러 가다 보면 도로 건너편에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4차 도로를 건너 거기로 들어서면 딱 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 하나 있고 그 주변은 메타세쿼이아가 숲을 이룬다. 이 나무가 방음벽 역할을 한 것인지 고속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쌩쌩 지나가도 그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곳은 고속도로 완충 녹지다. 한때 쓰레기 불법 투기가 성행하여 청소 취약 지역이었는데, 오치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숲 가꾸기 사업’을 전개한 결과 지금은 녹색 쉼터가 조성되었다. 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진 주민 소통 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길이는 240m, 폭은 10m에 불과한 이 작은 공원을 오치동 주민자치위원회는 ‘명언이 있는 숲’이란 멋진 이름을 붙여 놓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명언이 적힌 팻말 40여 개를 설치해 놓았다. 주민자치위원회의 열린 생각이 명물 공원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나는 여기에 올 때마다 곳곳에 숨어 있는 명언을 숨바꼭질하듯 찾아 읽는다. 어떤 명언을 읽으면 복잡했던 생각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명언을 읽으면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거나 경건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같은 명언이라도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가오는 느낌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명언을 하나를 음미해 본다.
‘선행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다. - 칸트 - ’
칸트의 이 말이 나에게 경종을 울린다. 나는 지금까지 팻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선행’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 주체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칸트는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선행’이라고 정의한다.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 등과 같이 ‘선행’도 의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행’이란 실천하지 아니하여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곧 의무라고 강조한다. 어리석고 평범한 나에게도 ‘선행을 반드시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칸트는 ‘선행’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부터는 선행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10년이 넘었다 해도 이 가르침에 따라 일상생활 중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도 의무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을 착실하게 실천할 때 비로소 따뜻한 가정이 만들어지고 건강한 사회가 조성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오치동 녹색 쉼터 ‘명언이 있는 숲’을 걷는다. 거기에 걸려 있는 명언을 읽으며 뜻을 되새김하고, 마음을 다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