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하운과 파랑새

길 제22집

by 수필가 고병균

소록도 중앙공원에 한하운韓何雲의 시비가 있다. 한하운의 본명은 태영, 1920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943년 배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하고,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와 경기도 용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한센병 환자였다.


한센병이란 문둥병이라고도 하고, 나병이라고도 불리는 제3군 법정 전염병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병으로 레위기에서는 한센병의 증상, 진단과 대처 방법 등을 아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병 있는 날 동안은 ……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라.’고 한다.


영화 ‘벤허’에서 본 한센환자의 비참한 생활모습이 떠오른다. 깊은 산 굴속에 격리된 환자에게 두레박처럼 줄이 달린 바구니에 음식을 담아 내려주는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17년 ‘소록도 자혜의원’이 설립되면서 한센인을 격리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고 수용 인원도 550명에 불과한데, 대부분 완치되었다고 안내하는 분이 소개했다.


한센병은 나병 균의 침투로 발병하며, 치료받지 않은 환자와 오랜 기간 긴밀한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고 한다. 일단 발병하면 근육에서 먼저 병적 증상이 나타나고, 신경계통의 합병증으로 진행하는데, 사지四肢의 감각이 없어지고, 촉감 통각 온도감각 등이 소실되며, 위치감각 진동감각 등도 없어진다. 심하게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단 부위가 떨어지기도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한센병은 잠복기간도 다양하다고 한다. 그러기에 16세 때 한센병 진단을 받았던 한태영이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직장생활도 했다. 그러나 25세에 한센병이 재발함으로써 직장을 그만두고 숨어서 살아야 했다. 이때 이름을 ‘하운何雲’으로 바꾸었는데, ‘어찌하여 내 인생이 구름처럼 떠돌게 되었는가?’ 이런 의미라고 한다. 가슴이 찡해 온다.


한하운은 이북 출신이다. 그런데 왜 남쪽에서 살게 되었을까? 그의 나이 28세인 1948년, 약을 구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후 남북 왕래의 길이 막히면서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도 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민족의 불행이 한하운의 생애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 그는 전국을 떠돌며 유랑생활을 했다. 밤에는 쓰레기통 옆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깡통을 들고 다니며 빌어먹는 생활을 이어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일도 있었다.


이런 형편에서도 그는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시집을 발간했다. 1949년 �한하운시초詩抄�, 1955년 �보리피리� 등 시집이 2권이나 된다. 이 외에도 1956년 �한하운 시집�, 1958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 1960년 자작시 해설집 �황톳길� 등을 발간하였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하운은 한센병이란 천형의 병고를 애조 띤 가락으로 읊어냈다. 이런 그를 향하여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시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한센인의 권익을 위해 일을 했다.’고 하면서 ‘그 업적을 기려 이곳 소록도에 시비를 세웠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한하운의 삶이 어떠했었는지 그의 일화 하나를 극본 형식으로 꾸며 소개한다. 제목은 「시를 파는 문둥이」다.

때 : 1948년 어느 날,

곳 : 명동에 있는 한 바

등장인물 : 한태영, 정지용, 이용악, 신사

바의 한쪽에 신사 몇 명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명동에서 문둥이가 시를 판대.’ 하는 말소리가 들린다. 이때 한태영이 들어온다. 남루한 옷을 입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온 거지꼴이다. 그는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신사들 곁으로 다가간다.


신사 “뭐요?”(태영은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신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민다. 거기에는 「파랑새」라는 제목의 시가 적혀 있다. 신사는 ‘불루 버드(Blue Bird), 불루 버드(Blue Bird).’라고 중얼거린다.)

신사 (태영을 향하여) “이거 당신이 지은 거요?”

태영 “네, 시가 되건 안 되건 한 장만 사 주세요.”

신사 “여기에 계신 분들은 시인들이오. 이 분은 정지용, 이 분은 이용악이란 분이오.”(정지용에게 종이를 넘겨주고, 태영에게 돌아서서 술을 권한다.)

신사 “인간이 사는 조건은 육체적 조건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요. 정신적인 것이 제일이라오. 그러니 한 잔 드시오.”(태영은 손바닥을 펴 보이며 거절한다.)


지용 (작은 소리로 시를 읽는다. 그것을 반복한다.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 나는 / 죽어서 /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 푸른 들 /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 푸른 울음 / 울어 예으리.
나는 / 나는 / 죽어서 / 파랑새 되리.


지용 (읽기를 마치고는 태영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태영의 손에 쥐어준다.) “오늘은 돈이 없으니 내가 애지중지하는 이 만년필을 갖다 쓰시오.”

태영 (만년필을 탁자 위에 놓으며) “나에게 시급한 것은 술이나 만년필이 아니요,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할 돈이요.”(허둥지둥 퇴장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어울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나에게서 탁구를 배운 홍 여사가 있다. 우연한 기회에 복지관의 탁구장을 찾아와서 나를 만났다. 그미는 ‘뇌수술을 받았다.’고 하며 ‘1년 정도 우울증으로 고생했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 후로 뇌수술을 받았다는 이 여사가 찾아왔고,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에 잠겨 있던 강 여사도 찾아왔으며, ‘소화가 안 된다.’는 조 선생도 찾아왔다. 한 때 우울증으로 고생한 이분들은 요즈음에도 거의 매일 탁구장을 찾는다. 거기서 땀 흘리며 사람들과 어울린다.


한하운도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 가족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그는 파랑새처럼,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죽어서라도 ‘파랑새 되리’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라고 읊었을 것이다.


괜스레 눈물이 나려고 한다. 고개를 들었다. 중앙공원의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오른다. 티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을 날아올라 비이잉 돌더니, ‘나병은 낫는다.’고 새겨진 ‘구라탑’ 꼭대기에 내려앉는다. 거기서 푸른 노래를 부르고, 푸른 울음을 옌다.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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