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아버지와 국화

길 제22집

by 수필가 고병균

나의 아버지는 국화다.

무서리 내리기 전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시월의 국화다.


접시보다 더 큰 대국도 아니고,

수백 송이의 소국도 아닌,

한적한 산골의 외줄기 국화다,


씨도 없고

열매도 없이

향기만 날리는 국화꽃이다.


그 빈털터리 아버지께서

당신의 시 ‘평화파 문중가’에

국화꽃 향기 같은

가문의 향내를 남기셨다.


임진왜란 당시

칠천 의병 이끌고

금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향년 60세로 순국한

충신 고경명과

차남 고인후 부자(父子)의 향내


아버지와 동생의

머리 없는 시신을 수습하던 중

일본군을 향하여

“가문의 원수, 나라의 원수”

가국지수(家國之讐)를 외치며

스스로 복수 장군 되어

진주성 제2 전투에 참전한

효자 고종후의 향내


제봉의 손녀 양산 축(軸)씨의 아내

제봉의 계녀(季女) 노상용의 처

제봉의 질녀(姪女) 안여인의 부인

일오구칠, 정유년에 입절(立節)한

제봉 가(家) 열녀 세 분의 향내.


틈나는 대로 들려주신

충(忠)․효(孝)․열(烈) 일문삼강(一門三剛)

가문향내가


아버지 떠나신 시월만 되면

국화꽃 향기 되어

바람따라 푸울 풀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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