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5부
권율(權慄)은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한산대첩의 이순신, 진주대첩의 김시민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영웅이다. 이런 그에 대하여 학자들은 ‘타고난 싸움꾼’이라고 말한다. ‘영의정 권철의 아들이자, 오성 이항복의 장인’이라 소개하면서 ‘그의 가계는 다툼이 많은 가정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그는 싸움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이런 말을 그렇지만 이에 관련하여 증거가 될만한 구체적인 사례는 없다.
이런 권율에게 주변에서는 ‘음직’에 나아가라고 권한다. 음직(蔭職)이란 과거에 의하지 않고 부조(父祖)의 공으로 얻은 벼슬을 말한다. 그것을 음서제도라고 한다.
그러던 중 1580년(선조 13년)에 사위 이항복이 과거에 급제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2년 뒤인 1582년(선조 15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응시하여 병과로 급제했다. 여기서 ‘식년’(式年)이란 과거를 보이는 시기를 지정한 해인데, 《태세(太勢)가 자(子 쥐띠)·묘(卯 토끼띠)·오(午 말띠)·유(酉 닭띠)가 드는 해로서,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나이 46세에 벼슬길에 오른 권율은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예조 좌랑, 호조 정랑 등을 역임하고, 1587년(선조 20년) 전라도 도사로 나갔다가, 1588년(선조 21) 예조 정랑이 되고, 그해 9월 호조 정랑을 역임했다. 이때까지는 그에게서 싸움꾼의 기질이 나타나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그 기질이 나타났다.
‘경상도와 전라도 양쪽에 큰 진지를 구성해 둘 것’을 왕에게 건의도 하고, 용인 전투에 참전해서는 기습 공격하려는 전라도 순찰사 이광에게 반대 의견도 냈다.
‘평지라 은신할 곳이 없다.’
‘병사들의 훈련 상태나 병력의 수로 보아 우리가 열악하다.’
‘적은 수의 적과 싸움으로 병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조강(祖江)을 건너 임진강을 막아서 서로(西路)를 튼튼히 하고, 군량미를 운반할 수 있는 도로를 확보한 다음에 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조정의 명을 기다리는 것이 옳겠다.’
권율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전술을 구사할 줄 아는 진정한 싸움꾼이다.
권율, 이순신, 김시민 외에도 임진왜란 중 일본군을 상대로 싸운 선한 싸움꾼이 있다. 조선을 지키려는 숭고한 목적으로 싸운 사례를 둘만 소개한다.
황해도 연백평야를 지켜낸 초토사 이정암도 선한 싸움꾼이다. 왜군 대장과 나눈 대화에서 선한 싸움꾼의 기질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은 성으로 대군을 이길 수 없으니 항복하라.”
“너희는 병(兵)으로 싸우나 우리는 의(義)로써 싸운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싸움꾼의 배짱이 없으면 도저히 뱉을 수 없는 말이다. 조선군이 수세에 몰렸을 때 이정암은 눈물겨운 결단을 내린다.
“성이 함락되면 여기에 불을 질러라. 왜군의 손에 모욕을 당하느니 여기서 불에 타 죽겠다.”
영천성을 탈환한 신녕의 무인 의병대장 권응수도 선한 싸움꾼이다. *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을 하는 자, * 적을 만났을 때, 다섯 걸음 이상 물러나는 자, * 맡은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여 장수의 명령을 듣지 않은 자, * 적과 싸우는 도중 대열을 벗어나는 자 등은 목을 벤다. 이렇게 하여 군기를 비로 세웠다. 그리고 그는 전투에 솔선수범했다. 영천성의 성문을 도끼로 깨뜨리는 등 용감하게 싸웠다. 그 결과 성을 탈환했다. 권응수는 군기를 세울 줄 아는 현명하고 선한 싸움꾼이다.
권율을 비롯하여 이정암, 권응수 등은 선한 싸움꾼이다. 위기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형편이 어떠하든지 외부 세력을 상대하는 정의롭고 선한 싸움꾼이다.
권율과는 질적으로 다른 악한 싸움꾼도 있다. 그 사례 셋을 소개한다.
북방사 이일(李鎰)이 그런 싸움꾼이다. 그의 싸움 상대는 조산만호 이순신과 경흥 부사 이경록이었다. 1587년 여진족이 녹둔도를 침략해 왔을 때, 이일은 도망쳤고 이순신과 이경록은 그들을 반격하여 물리쳤다. 그런데 이일은 ‘녹둔도 함몰’이란 말로 폄훼하면서 ‘이순신과 이경록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라고 건의했다. 북방사라는 고위 직책을 이용하여 낮은 직급의 이순신과 이경록을 상대로 싸웠다.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려고 싸웠다
순찰사 윤탁연도 그런 싸움꾼이다. 그의 싸움 상대는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끈 의병장 정문부이다. 그는 정문부의 전공(戰功)을 사실과 반대로 보고했다. 정문부의 부하가 가진 수급을 빼앗아 자기 군사에게 주기도 했으며, ‘정문부의 행동이 불궤(不軌)스럽다.’라고 아뢰었다. 윤탁연은 순찰사란 고위 직책을 이용하여 낮은 직급의 의병장 정문부를 상대로 싸웠다. 상대의 공적(功績)을 말살하려고 싸웠다.
이상 이일과 윤탁연 등은 악한 싸움꾼이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싸우고, 높은 직급을 이용하여 낮은 직급의 사람을 상대한 비겁하고 악한 싸움꾼이다.
‘상 받을 자에게는 상을 주고 벌 받을 자에게는 벌을 내려야 한다.’
한비자(韓非子)의 사상에서 유래된 말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이 원칙은 공정한 평가와 엄중한 규율 준수를 강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나라를 위해 싸운 선한 싸움꾼에게 상을 주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싸운 악한 싸움꾼에게는 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질서가 바르게 유지되고, 공정한 나라가 된다.
조선의 왕 선조는 이 원칙을 지켰을까? 선한 싸움꾼에게 상을 주었을까? 그는 해유령 전투의 영웅 신각을 죽였다. 그는 육상 전투에서 맨 처음 승리한 영웅이다. 해전에서 23전 23승의 영웅 이순신에게는 백의종군의 징계를 내렸다. 무려 두 번이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