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영웅의 출현

수필. 임진왜란 제2부

by 수필가 고병균

몽진을 떠난 선조에게 낭보(朗報)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이순신이 이끈 해상의 옥포 해전(玉浦海戰)과 곽재우가 이끈 육상의 기강 전투 등 두 번의 승전보다. 선조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


옥포 해전(玉浦海戰)은 5월 7일(6월 16일)에 경상도 거제현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도도 다카토라의 일본 수군 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그날 오후, 이순신 수군은 지나가는 왜군의 소형 함대 5척을 전멸시켰다. 이게 합포 해전이다. 5월 8일에는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 중이던 일본군 함대 11척을 격침했다. 이게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이다. 저들은 옥포 해전의 소식을 접하기 전에 당했다. 거북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상 세 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조선 수군의 사기는 높았다. 그것을 축하하듯 갈매기들이 춤을 춘다. 이순신 함대의 주위를 선회하고 있다.


기강 전투는 5월 18일(6월 27일) 경상도 의령 남강의 기강에서 곽재우가 이끈 의병이 왜 수송선을 탈취한 육상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곽재우가 이끈 의병의 첫 번째 전투이고, 첫 번째로 승리한 전투이다.

곽재우는 1592년 4월 22일(5월 18일) 평소 알고 지내던 장정 10명과 노비를 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최초로 창의 한 의병이라 무기도 부족했고, 군량미도 부족했다. 군사훈련도 받은 적 없는 오합지졸이었다.

곽재우는 이런 의병을 이끌고 나가 싸웠다. 왜 수송선 3척이 나타난 5월 4일에는 부관 4명을 이끌고 나가서 쫓아 버렸고, 왜 수송선 11척이 나타난 5월 6일에는 의병 13명을 이끌고 나가서 쫓아버렸다. 이런 곽재우를 나는 영웅이라 칭한다.

곽재우 의병이 용맹을 떨칠 수 있었던 원인은 전투 장소의 선택에 있었다. 곽재우가 선택한 기강(岐江)은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의 낙동강(洛東江)과 남강(南江)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의령군 창녕군 함안군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기강은 전라도로 가는 길목이요, 진주(晉州)까지 통하는 요충지다. 기강을 흐르는 물줄기는 북으로 대구를 거쳐 멀리 안동이나 문경까지 통한다. 낙동강을 통해 물자를 보급하는 왜군의 주요 거점이 되는 곳이다.

전쟁 수행에 있어 보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물자 수송은 해로를 통하는 방법과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육상에서는 강을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이처럼 전략적 전술적 가치가 있는 기강을 전투 장소로 선택한 곽재우, 그의 지혜가 빛난다.

곽재우는 왜적의 군세가 강함을 알았고, 조선의 의진이 미약함도 알았다. 그래서 정면 대결을 피했다. 대신 강물에 말뚝을 박아 왜의 보급 선단이 거기에 걸리게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전술이다. 곽재우는 움직이지 못하는 배를 기습 공격했다. 정말이지 기발한 아이디어다.


역사학자들은 기강 전투의 승리에 대하여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

첫째. 의병장 곽재우의 첫 번째 승리로 곽재우 의병의 진영이 크게 강화되었다.

둘째. 낙동강을 이용한 왜 수군의 보급에 막대한 차질을 주었다. 왜군의 전투 수행에는 제약을 주는 한편 몰리던 아군에게는 정비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셋째. 왜군에게 의병의 존재를 알렸다. 그들이 상대할 적은 ‘관군만이 아니라 의병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했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수 효과도 있었다.


곽재우(郭再祐) 의병이 두 번째로 승리한 전투는 정암진 전투(鼎巖津 戰鬪)이다. 5월 24일(7월 3일)에 의령의 남강 정암진에서 안코쿠지 엔케이[安国寺恵瓊]가 이끈 왜군 2,000명을 무찌른 전투로 매복 작전이 빛났다.

일본군 6부대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전라도 진격 작전을 지휘하고 그의 휘하 안코쿠지 엔케이[安国寺恵瓊]는 경상도 의령으로 진격한다.

5월 26일에 정암진 대안에 도착한 엔케이는 지역 주민을 강제 동원해서 통과할 지점에 나무 푯말을 꽂고, 뗏목도 만들어 도하 준비를 완료했다. 그날 밤, 곽재우는 나무 푯말을 엉뚱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군사를 매복시켰다.

날이 밝자. 도하를 시작한 선봉대가 푯말을 따라 늪지대로 들어갔다. 이때,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매복한 의병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남강에 도착한 왜군이 의병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유쾌 상쾌 통쾌한 승리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 6부대는 전라도 진격을 포기했다.

이와 함께 곽재우의 위상이 달라졌다.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은 의령과 삼가 두 현을 곽재우의 지휘 아래 편입시켜 병력이 1,000명으로 늘어났고, 전 목사 오운과 박사제 휘하의 병력 3,000명까지 합세하여 총 4,000명이 되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옥포 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과 기강 전투에서 승리한 곽재우, 이 두 분은 조선 백성에게 희망을 안겨준 영웅이다. 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이란 난세를 통해 영웅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해상 전투의 영웅 이순신과 육상 전투의 영웅 곽재우 두 분을 환영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들의 활약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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