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10부
“저기로 올라가 봅시다.”
백 선생이 가리킨 곳은 상당히 가파른 언덕길이다.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의 돌계단으로 10m 정도 올라갔을 때 오른쪽에 안내판이 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28호 고흥 쌍충사’(高興 雙忠祠)라고 소개한다. 마음이 솔깃해진다. 집중하여 자세하게 읽었다.
“쌍충사는 임진왜란 이전에 남해안에 침입한 왜적을 막다가 손죽도에서 전사한 충렬공 이대원(1566~1587) 장군과 임진왜란 중에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충장공 정운(1543~ 1592) 장군을 배향한 사우이다.”
쌍충사에 배향된 인물은 둘이다. 두 분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1587년 손죽도 해전에서 전사한 이대원 장군은 1566에 태어났으니 향년 21세이다. 약관의 나이에 전사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해 부산포 해전에 전사한 정운 장군은 1543년에 태어났으니, 향년 49세이다. 두 분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나라는 일본이다.
몇 계단 더 올라가니 길은 오른쪽으로 꼬부라지고 그곳에 출입문이 있다.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은 문이다. 살짝 밀었더니 ‘삐꺼억’ 소리를 내며 열린다.
자그마한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마당의 정면 건너편에 담장과 내삼문이 있고, 그 너머로 사우가 보인다, 오른쪽에 관리사 건물, 왼쪽에 강당, 아주 단출한 구성의 사우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왼쪽 옆으로 난 작은 문을 통과했다. 작은 광장이 나온다. 시야가 확 트인 언덕이다.
왼쪽으로 돌아섰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소록도가 있다. 그 사이는 녹동 앞바다, 수면 위로 쏟아진 햇빛이 흔들리는 물결 따라 반짝반짝 빛난다. 항구에서 나온 배가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평화로운 바다에서 살벌한 전투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뒤로 돌아섰다. 높게 선 현충탑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동상 둘이 나란히 서 있다. 특이하게도 병사들의 동상도 있다. 창을 옆에 세우고 서 있는 경계병의 상, 적을 향해 창을 꼬나 든 전투병의 상, 활을 당기고 있는 궁수의 상 등이 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장군들과 함께 병사들까지 그 희생을 기리려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충탑의 왼쪽에 대형 벽화가 있다. 말 탄 장군과 수많은 병사들, 불길에 휩싸인 채 침몰하는 배 등 전투 장면이 사실감 있게 그려진 모자이크 형태의 역사화이다.
현충탑 앞으로 다가갔다. 그 왼쪽 아래에 ‘현충탑 건립에 즈음하여’라는 글이 있다. ‘2004년 7월 1일, 고흥군 현충탑 건립추진위원회’라 하며 건립 시기와 주체를 소개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 바친 애국 열사들의 희생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라는 건립목적도 밝히고 있다.
오른쪽에 ‘헌시’도 있다. 청라 장효문의 글인데 이런 내용이 눈에 띈다.
겨레와 민족을 위해 / 목숨 바친 거룩한 이 / 나라 위해 선혈로 쓰러져 /
자유 민주를 지키려 / 산화한 우리의 임이여
조금 떨어진 곳에 ‘현충탑’의 안내문도 있다. ‘임진왜란, 6.25 등 전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런 말이 또 나온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이다. 그들은 우리 국토를 수시로 침범해 왔다. 1592년의 임진왜란과 1597년의 정유재란을 일으켰고, 300여 년이 지난 1910년에는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빼앗고 경술국치의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6.25 전란은 1950년에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다. 동족상잔의 상처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아물지 않고 있다.
쌍충사에서는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낸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친 이대원 장군과 정운 장군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요, 6.25 전란 중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126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엄숙한 마음이 들고 고개가 숙여진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까딱 잘못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을 IMF가 경고한 바 있으며, 러시아의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참상이 그것을 절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쌍충사와 같은 시설을 갖추어 놓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아니다. 제사를 지내는 날을 정하여 선열의 넋을 기리면 해결될까? 그것도 아니다. ‘이분들의 삶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야 한다.’ 혹은 ‘숭고한 애국정신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말 한마디 가르치면 해결될까? 이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 방법은 딱 하나다. 그 가르침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쌍충사가 있는 고흥 사람들,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래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다. 그 숭고한 가르침을 고흥 쌍충사에서 가슴 깊이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