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저기 올라가 봅시다.”
함께 여행하던 백 선생님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은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돌계단이 있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길이다. 10m 정도 올라갔을 때 오른쪽에 안내판이 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안내판을 들여다보았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128호 고흥 쌍충사’(高興 雙忠祠)라고 소개한다. 마음이 솔깃해진다. 집중하여 자세하게 읽었다.
“쌍충사는 임진왜란 이전에 남해안에 침입한 왜적을 막다가 손죽도에서 전사한 충렬공 이대원(1566~1587) 장군과 임진왜란 중에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충장공 정운(1543~1592) 장군을 배향한 사우이다.”
쌍충사에 배향된 인물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다. 이대원 장군은 향년 22세. 장군은 향년 50세이다. ‘불과 22세인데…….’ 전쟁의 참상을 실감하며 몇 계단 더 올라갔다.
길이 오른쪽으로 꼬부라지고 그곳에 출입문이 있다. 둘이 들어가도 비좁고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은 문이다. 살짝 밀었더니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다. 자그마한 마당이 있고 그 건너편에 담장과 내삼문, 그 너머로 보이는 사우, 마당의 오른쪽에 관리사 건물, 왼쪽에 강당, 아주 단출한 구성의 사우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왼쪽 옆으로 난 작은 문을 통과했다. 작은 광장이 나온다. 상당히 높은 언덕이라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왼쪽으로 돌아섰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소록도가 보인다. 그 사이는 녹동 앞바다, 수면 위로 쏟아진 햇빛이 흔들리는 물결 따라 반짝반짝 빛난다. 항구에서 나온 배가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평화로운 바다에서 살벌한 전투가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얼른 돌아섰다. 높게 선 현충탑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동상 둘이 나란히 서 있다. 특이하게도 병사들의 동상도 있다. 창을 옆에 세우고 서 있는 경계병의 동상, 적을 향해 창을 꼬나든 전투병의 동상, 활을 당기고 있는 궁수의 동상 등이 적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있다. 장군들과 함께 병사들의 희생까지 기리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충탑의 왼쪽에 대형 그림이 있다. 말 탄 장군과 수많은 병사들, 불길에 휩싸인 채 침몰하는 배 등 전투 장면이 사실감 있게 그려진 모자이크 형태의 역사화이다.
현충탑 앞으로 다가갔다. 그 왼쪽 아래에 ‘현충탑 건립에 즈음하여’라는 글이 있다. ‘2004년 7월 1일, 고흥군 현충탑 건립추진위원회’라 하며 건립 시기와 주체를 소개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 바친 애국 열사들의 희생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라는 건립목적도 밝히고 있다.
오른쪽에 ‘헌시’도 있다. 청라 장효문의 글인데 이런 내용이 눈에 띈다.
겨레와 민족을 위해 / 목숨 바친 거룩한 이
나라 위해 선혈로 쓰러져 /
자유 민주를 지키려 / 산화한 우리의 임이여
조금 떨어진 곳에 ‘현충탑’의 안내문도 있다. ‘임진왜란, 6.25 등 전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라는 말이 또 나온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나라는 일본이다. 그들은 우리 국토를 수시로 침범해 왔다. 1592년의 임진왜란, 1597년의 정유재란, 그리고 300여 년이 지난 1910년의 경술국치 등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그런가 하면 1950년 6.25 전란을 일으킨 나라는 북한이다. 그 상처는 70년이 지났건만 지금까지도 전혀 아물지 않고 있다.
쌍충사에서 매년 3월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친 이대원 장군과 정운 장군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요, 6.25 전란 중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126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엄숙한 마음이 들면서 고개가 숙여졌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까딱 잘못하면 나라가 또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것을 IMF가 경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일본은 독도를 향하여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와 동족이라고 하는 북한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협하고 있다.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하지 않게 될까? 어떻게 하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넘보지 못하게 될까? 어떻게 하면 동족상잔의 깊은 상처가 치유되고 국민 상호 간의 갈등이 해소될까?
이런 시설을 갖추어 놓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제사를 지내는 날, 선열의 넋을 기리면 해결될까? ‘이분들의 삶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야 한다.’ 혹은 ‘숭고한 애국정신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말 한마디 가르치면 해결될까? 아니다. 그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럼 누가 그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까? 쌍충사가 있는 고흥 사람만 실천하면 될까? 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그래야 한다. 특히 국가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앞장서서 그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다. 현충탑 앞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나 자신부터 솔선수범(率先垂範)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순국의 성지 고흥 쌍충사에서 그 가르침을 마음으로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