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4부
한양을 함락시킨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1592년 6월 1일(7월 9일)에 개성까지 점령했다. 그 소식을 들은 선조는 평양성도 버리고 의주로 몽진했다. 거기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아 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
선조는 떠나면서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김명원, 이조판서 이원익 등에게 평양을 지키도록 명했다. 그런데 지휘권을 도원수 김명원이 아닌 좌의정 윤두수에게 맡겼다. 그러나 그는 무관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병력을 배치하는 법이나 작전을 펼치는 법도 모르는 문관이다. 작전에 실패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평앙성에서는 세 차례의 전투가 벌어졌다. 제1차 평양성 전투는 평양성을 빼앗긴 전투이고 제2차 전투와 제3차 전투는 평양성을 탈환하려는 전투이다. 간략하게 살펴본다.
6월 12일(7월 20일) 광해군은 평양부 전역의 남자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자신은 똑같이 행동하겠다.’라고 백성들에게 선전했다. 평양성 조선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듯 했다.
제1차 평양성 전투는 1592년 6월 13일(7월 21일) 대동강에 도달한 고니시의 부대가 양각도를 건너 대동관을 향해 조총으로 사격하며 시작된 전투이다.
조선군도 이에 맞섰다, 그러나 조선군은 훈련이 부족했다. 그래도 윤두수와 이원익, 김침 등은 당황하지 않고 동대원의 일본군 진영을 기습 공격해 수백 명을 죽이고 말 수십 필을 빼앗았다. 그것도 잠깐 다른 일본군들이 석회탄에 진을 쳐 그곳의 조선군이 크게 패해 도망쳤다. 보고를 들은 윤두수는 허숙과 김억추를 시켜 대동강을 지키게 했다.
6월 14일(7월 22일) 새벽, 윤두수는 고언백에게 400명의 병정을 주며 부벽루 밑 능라도의 적을 기습 공격을 하게 했다. 그 작전도 패배하였고, 대동강의 수심이 얕은 것을 일본군에게 알게 하였다. 윤두수와 김명원은 군사들을 내보낸 뒤 무기를 모두 풍월루의 연못에 버리고 빠져나왔다. ‘함께 한다’고 장담했던 광해군은 안주목으로 후퇴했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그래도 괜찮은가?
일본군은 평양성을 무혈입성했다. 평양성이 함락당한 것은 개전 60일 만이다.
제2차 평양성 전투는 조선의 김명원 군대와 명의 지원군 조승훈 군대가 연합하여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는 잘못된 정보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당시 평양성에는 1만 8,700명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1만 1,000명의 구로다 나가마사가 함께 입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로다 나가마사의 병력이 황해도 공략을 위해 성을 빠져나갔다. 그것을 ‘적의 주력 부대가 빠져나갔다.’라고 보고했다. 그것은 조선의 척후장 순안 군수 황원이 퍼뜨린 잘못된 정보였다.
조명연합군 지휘부는 ‘일본군 측이 전의를 상실했다.’라고 잘못 판단하고는 평양성 탈환의 기회로 여겼다. 나쁜 정보는 나쁜 결과를 낳게 한다.
7월 17일(8월 23일) 아침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으로 진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양성의 문이 열려 있고 적들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또 판단의 오류가 방생했다. 명군의 선봉장 사유는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병력을 평양성 안으로 진격시켰다. 이때 길 양편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이 조총을 사격하며 공격했다. 명의 선봉장 사유, 부장 천총, 장국충 등이 전사했다.
부상을 입은 조승훈은 패잔병만 이끌고 요동으로 돌아갔다. 조명연합군 최초의 전투는 패배로 끝났다. 그날이 7월 18일(8월 24일)이다,
황원의 잘못된 보고는 심각한 파장을 불렀다. ‘조선이 일본과 손잡고 명군을 함정에 빠뜨렸다.’라는 헛소문이 나돌았고, 그것이 명나라 조정에까지 전해졌다. 조선의 조정은 사신을 파견해 이를 해명해야 했다. 이게 유언비어의 폐해이다.
제3차 평양성 전투는 1592년 8월 1일(9월 6일), 조선군 단독으로 나선 전투인데 같은 장소에서 세 번째 패배한 전투이다.
조선군은 세 갈래로 공격했다. 순변사 이일은 5천 병력을 이끌고 동쪽에서, 조방장 김응서는 1만 병력을 이끌고 서쪽에서, 순찰사 이원익은 5천 병력을 이끌고 북쪽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김억추는 수군을 이끌고 대동강 입구를 점거하고, 임중량은 중화를 지켰다.
일본군의 척후병 50명과 교전이 벌어졌다. 조선군이 간단히 격퇴했다. 그러자 조선군의 사기는 올랐고, 그 기세를 몰아 성문을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그것은 실수였다. 일본군 수천 명이 성 밖으로 나와 반격했다.
조선군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다가 일본군에 도륙당하고 말았다. 조선군은 지휘체계가 정비되지 못하였고, 병사들도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조선군 진형이 무너질 때, 동쪽의 이일과 북쪽의 이원익은 남은 병력을 데리고 서쪽으로 후퇴했다. 막상 서쪽에 있던 김응서는 단독으로 평양성으로 돌격했다가 크게 패하여 와해되었다.
평양성은 반드시 회복해야 할 땅이다. 그렇지만 제2차 전투에서도 탈환에 실패했고,, 제3차 전투에서도 실패했다. 일단 빼앗기면 되찾는 일이 이처럼 어렵다. 애초에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평양은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이다. 그 땅의 백성들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진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다. 땅을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