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진주대첩의 현장 진주성을 찾아간다. 진주대첩은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이다. 진주성에는 맹장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싶어 찾아간다.
진주에는 딸의 시가가 있다. 추석을 맞아 시어머니를 뵈러 가는 딸을 따라나섰다. 진주성만 돌아본 다음 아내와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귀가할 예정이다. 사위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간다.
10시쯤 출발했다. 추석 연휴 첫날이라 오가는 차들로 붐빈다. 12시가 조금 넘어 진주에 들어섰다.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아간다. 냉면집 하○옥이다. ‘진주 냉면의 원조’라고 사위가 소개한다. 여기서 나는 두 번 놀랐다.
먼저 밀려드는 차량에 놀랐다. 큰길에서 좌회전했는데 차량이 밀려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지시봉을 든 식당 직원이 통제하고 있으나 한 대가 나가면 다른 한 대가 들어간다.
다음에는 냉면을 보고 놀랐다. 저수지를 방불케 하는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냉면이 가득 들어 있다. 오이, 달걀지단, 육전, 실고추 등 고명도 푸짐하다.
육수를 한 숟가락 떠서 마셨다. ‘와, 맛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먹성이 좋은 나는 무엇이건 많이 먹고, 빠르게 먹는다. 그런데 그것을 다 먹을 수 없었다. ‘진주 냉연의 원조’라는 사위의 말이 허언(虛言)은 아니었다.
이제 진주성을 보러 간다.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주차장에 들어왔다. 매표소 옆에 ‘진주성’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것을 천천히 읽어본다.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호국의 성지 진주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토성이며 고려 말 석성으로 수축하였고, 임진왜란 직전에 외성을 확장하였습니다.’
‘1896년 경상남도가 생기면서 도청 소재지가 있었고,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한 1925년까지 행정의 중심이었다.’
‘1592년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이 있었고, 1593년 2차 전투 때 성이 함락되어 논개가 왜장을 안고 순국한 현장입니다.’
‘일제에 의해 진주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해자 구실을 하였던 대사지가 메워지고 시가지가 형성되어 지금은 당시 내성의 모습만 남아 있습니다.’
진주에는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많이 거주했던 성이다. 1592년 일본 도요토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진주대첩의 현장이며, 1593년 일본이 제2차 공격을 받아 성안에 있었던 조선의 관군, 의병, 백성 등이 몰사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그래서 진주성은 ‘호국의 성지’다.
‘진주성은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이 말은 반성하지 않는 자들의 변명이다.
공자는 ‘하루 세 번 반성’하라고 했다. ‘반성하는 자가 있는 그곳이 가장 거룩한 땅이다.’ 이렇게 말하는 학자도 있다.
반성하지 않는 나쁜 버릇은 왕이나 문무백관이나 마찬가지다. 그 나쁜 버릇 때문에 1910년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1945년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천만다행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건국했지만, 나라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았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된 진주성 안에는 1979년 복원사업이 있기 전까지 민가 750여 동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2000년, 진주성 정비사업이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진주성, 그것을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진주성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임진왜란의 역사를 두고 남의 탓하기보다 나라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진주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공북문’이 있다. 공북(拱北)이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라는 뜻이다.
‘현재의 공북문은 2002년 5월 1일에 복원되었다.’ 한가운데 문이 있고, 그 양쪽으로 대칭을 이룬 계단이 있으며, 그 위에는 누각이 있는 공북문은 ‘홍예식 2층 다락루’이다.
‘홍예식’이란 문의 상단부가 무지개 모양의 건축 양식이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성문은 직사각형 모양인데, 문루를 길쭉한 돌로 걸치면 ‘개거식’ 성문이고, 나무로 걸치면 ‘평거식’ 성문이다. 낙안읍성의 동문, 고창읍성의 공북루 성문 등이 그런 성문이다.
누각이 2층으로 된 진주성 공북문은 ‘2층 다락루’이다. 반면 ‘상당산성 동문’은 누각이 1층이고, ‘해미읍성 진남문’은 누각이 아예 없다.
성문 바닥은 대부분 수레가 다닐 수 있게 평평하다. 특이하게도 사다리를 걸치고 드나드는 ‘현문식’ 성문도 있다. ‘온달산성’의 성문이 바로 그런 성문이다.
‘공북문은 밤에 보면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라고 소개한다. 그것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내가 진주성을 찾은 목적은 공북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1592년 진주대첩의 역사 현장을 더듬어보고 싶은 것이다.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정신을 배우고 싶은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을 새기고 싶은 것이다. 이게 내가 진주성을 찾은 진정한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