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10부
진주대첩의 현장 진주성을 찾아간다. 진주에는 딸의 시가가 있다. 추석을 맞아 시어머니를 뵈러 가는 딸을 따라나섰다.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현장 진주성에는 맹장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싶어 찾아간다.
10시쯤 출발했다. 추석 연휴 첫날이라 오가는 차들로 붐빈다. 그래도 사위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막힘없이 달려 진주에 들어섰다. 12시가 조금 지났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간다. 바로 냉면집 하○옥이다. 나는 여기서 두 번 놀랐다.
먼저 밀려드는 차량에 놀랐다. 큰길에서 좌회전했는데 차량이 밀려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지시봉을 든 식당 직원이 통제하고 있으나 한 대가 나가면 다른 한 대가 들어간다.
다음으로 식당에서 내놓은 냉면에 놀랐다. 저수지를 방불케 하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냉면이 가득 들어 있다. 오이, 달걀지단, 육전, 실고추 등 고명도 푸짐하다. 육수를 한 숟가락 떠서 마셨다. ‘와, 맛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먹성이 좋은 나는 무엇이건 많이 먹고, 빠르게 먹는다. 그런데 그것을 다 먹을 수 없었다. ‘진주 냉면의 원조’라는 사위의 말이 허언(虛言)은 아니었다.
이제 진주성을 보러 간다.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을 요리조리 피해 주차장에 들어왔다. 매표소 옆에 ‘진주성’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것을 천천히 읽었다.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호국의 성지 진주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토성이며 고려 말 석성으로 수축하였고, 임진왜란 직전에 외성을 확장하였다.’
‘1896년 경상남도가 생기면서 도청 소재지가 되었고,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한 1925년까지 행정의 중심지였다.’
‘1592년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이 있었고, 1593년 2차 전투 때 성이 함락되어 논개가 왜장을 안고 순국한 현장이다.’
‘일제에 의해 진주성이 크게 훼손되면서 해자 구실을 하였던 대사지가 메워지고 시가지가 형성되어 지금은 당시 내성의 모습만 남아 있다.’
진주성은 ‘호국의 성지’다.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3천8백 조선군을 이끌고, 2만여 일본군을 물리친 진주 목사 김시민 장군,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몰사당한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등 3장사와 진주성 군관민, 그리고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의기 논개, 이분들은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오래도록 기려야 할 호국의 영웅이다.
‘진주성은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이 말은 변명이다. 왜구의 침략을 막아냈는데 성이 훼손되었을까?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나라를 다스렸는데 성이 훼손되었을까?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남의 탓만 하는 비겁한 자들의 변명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된 진주성 안에는 1979년 복원사업이 있기 전까지 민가 750여 동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2000년, 진주성 정비사업이 완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진주성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필요는 있다. 여기에 더하여 진주성을 국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임진왜란의 역사를 두고 남의 탓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진주성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공북문’이다. 공북(拱北)이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라는 뜻이다.
‘현재의 공북문은 2002년 5월 1일에 복원되었다.’ 한가운데 문이 있고, 그 양쪽에는 대칭을 이룬 계단이 있으며, 그 위에는 누각이 있는 ‘홍예식 2층 다락루’이다.
‘홍예식’이란 문의 상단부가 무지개 모양인 건축 양식이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성문은 직사각형 모양인데, 문루를 길쭉한 돌로 걸치면 ‘개거식’ 성문이고, 나무로 걸치면 ‘평거식’ 성문이다. 낙안읍성의 동문, 고창읍성의 공북루 성문 등이 그런 성문이다.
‘2층 다락루’란 누각이 2층인 성문이다. 반면 ‘상당산성 동문’은 누각이 1층이고, ‘해미읍성 진남문’은 누각이 아예 없다. 공북문은 매우 화려한 성문인 셈이다.
성문의 바닥은 대부분 수레가 다닐 수 있게 평평하다. 특이하게도 사다리를 걸치고 드나드는 ‘현문식’ 성문도 있다. 그 예로 충북 단양군에 있는 ‘온달산성’의 성문이 있다.
공북문은 ‘밤에 보면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라고 소개한다. 그것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러나 진주성을 찾은 목적은 공북문의 야경을 보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할 만큼 대한민국이 발전한 것에 감사한다.
1945년 일제 강점기, 노예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한 연합군에게 감사한다. 1948년 극심한 혼란 중에,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을 건국한 지도자에게 감사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도록 원조한 16개 나라의 유엔군에게 감사한다. 전쟁의 폐허에서 자녀 교육에 투자했던 선배 어르신들에게 감사하고, 배고픔의 상징 보릿고개를 극복하기까지 ‘잘살아보세’ 하며 경제 개발에 힘쓴 지도자 그리고 땀 흘린 산업 역군과 수출 주역들에게 감사한다.
오늘날 국민이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다. 오로지 눈물겹게 수고한 선배 어르신들 덕분이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안고 공북문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진주성을 지켜낸 김시민 장군, 그분의 당시 업적을 살펴보고 그분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라. 기대하며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