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진주성과 김시민 장군

수필 임진왜란 제10부

by 수필가 고병균

군대 개혁의 꿈을 간직한 김시민에게 그 꿈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졌다. 37세인 1591년 진주 판관에 제수된 것이다. ‘판관’이란 진주 목사 바로 아래의 관리로 지방 관청에서 실무를 담당한다.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판관 김시민은 상사인 목사 이경을 따라 지리산으로 피신했다. 얼마 후 목사 이경이 병사했다. 목사 대리로 임명받은 김시민은 즉시 진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개혁을 실현하려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진주성 안으로 도로가 있고, 그 오른쪽 언덕배기에 만화로 된 게시판이 눈에 띈다. 10개의 장면으로 꾸며진 만화인데 제목이 <준비된 리더샵, 불패의 업적을 이룬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이야기>로 무척이나 길다.

김시민을 ‘준비된 리더샵’이라 했다. 그렇다. 김시민은 30세인 1583년, 여진족 니탕개를 토벌하는 전투에 참전한 바 있는 지도자요, 31세인 1584년, 무과(대과)에 급제하여 종6품 훈련원 주부에 오른 지도자이며, ‘군대 개혁 및 강화에 관한 의견’을 병조에 제출한 바 있는 ‘준비된’ 지도자이다.

만화의 내용에 김시민이 상대한 일본군을 3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10여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안내판에는 2만이라고 소개한다. 일관성을 유지했으면 더 좋겠다.

만화의 왼쪽 언덕 위에는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있다.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왼손은 허리의 장검을 잡고, 오른손은 지휘봉을 들어 앞을 가리키고 있다. 그 모습이 파란 하늘, 우거진 소나무 숲과 어울려 위엄을 드높인다.

동상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입구에 ‘김시민 장군 전공비’가 있다. 김시민 장군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의미 파악은 독자에게 맡기고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氣銳而剛(기예이강) 기상은 예리하면서도 강했고

質毅而溫(질의이온) 자질은 굳세면서도 온화했네

義以爲幹(의이위간) 의리로써 줄기를 삼고

忠以爲根(충이위근) 충성으로써 뿌리를 삼았네.

全城郤敵(전성극적) 성을 지켜 적을 물리친 것은

如其功(여기공) 누구의 공적이 이와 같겠는가?

死於王事(사어왕사) 왕의 명령에 따라 일에 목숨 바친 것은

如其忠(여기충) 누구의 충성이 이와 같겠는가?

晉山義義(진산의의) 비봉산이 높고 높으며

晉水洋洋(진수양양) 남강 물이 넘실거리니

一石千秋(일석천추) 비석 하나 영원히 전해져

山高水長(산고수장) 산처럼 높고 물처럼 영원하리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평평한 공간이 보이고 그 가운데 우물이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우물터 한가운데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는 원통형의 우물이다. 맑은 물에 흰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이 비친다. 수량도 풍부하게 보인다.

두레박으로 물을 떴다. 물을 뜨겁게 데운 아낙네들, 그 물로 왜군을 공격한 진주성의 관군들, 그 눈물겨운 장면을 상상하며 떠올렸다. 그런데 두레박 한쪽 끈이 끊어져서 조금만 담겨 올라왔다.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한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이 물은 진주성 백성에게는 생명수였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왜적에게는 무기였다.


언덕을 따라 올라갔다. 그 오른쪽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된 ‘진주성 북장대(晉州城 北將臺)’가 있다. ‘북장대’의 ‘장대’는 군대를 지휘하는 높은 대를 말한다. 광해군 10년(1618)에 경상우병사 남이흥(南以興)이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북장대의 누각 이름은 진남루(鎭南樓)이다.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갔다. 바닥이 깨끗하다. 한쪽에 젊은 부부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누워있고 여자는 그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다. 난간 옆에 섰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로 아래는 주차장, 그 부근의 복잡한 거리가 보이고, 진주 시가지가 저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자리로 딱 좋다.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도 여기 서서 전투를 지휘했을 것이다. 동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오른손을 들고 호령했을 것이다. 3천8백 조선 병사를 이끌고 3만 왜군을 막아낸 김시민 장군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슬아슬했을 전투 장면이 떠오르며 손에서 땀이 난다.


진주성에서 김시민 장군의 개혁 정신을 배운다.

김시민은 목사 대리로 임명받은 즉시 진주성 안으로 돌아왔다. 피난지 지리산에서는 진주성의 개혁을 이룰 수 없다, 진주성 안에서 들어와야 가능해진다.

김시민은 뿔뿔이 흩어진 병사를 불러 모았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말도 생각난다. 성채를 보수하고, 전쟁 무기를 확충했으며, 군사 훈련을 통해 군대 체계를 확립했다. 이는 모두 목사 대리로서 김시민의 권한에 속한 일이다. 개혁이란 자기가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상사가 부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선조는 왕의 권한을 이용하여 간섭하다 폭삭 망한 전투가 있다. 그 예로 두 가지만 든다. 하나는 육상에서 벌어진 임진강 방어 전투이다. 조선의 정예 부대가 몰살당했다. 다른 하나는 해상에서 벌어진 칠천량해전이다. 조선 수군이 완전히 궤멸당했다.

그 누구라도 권한 밖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결단코 개혁이 아니다.


호국의 성지 진주성에는 김시민의 개혁 정신이 스며 있었다. 김시민은 개혁을 실천하되, 권한 범위 안에서 실천했다. 남에게 미루지 않고 솔선수범하여 앞장섰다. 독단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관군과 백성 그리고 의병들까지 합심하여 추진했다. 이렇게 하여 30,000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개혁 정신이 만화, 동상, 샘물 등 곳곳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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