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10부
군대 개혁의 꿈을 간직한 김시민에게 진주 판관이 제수되었다. 1591년이다. 진주 판관은 진주 목사 바로 아래 관리로 지방 관청에서 실무를 담당하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 목사 이경을 지리산으로 피신했다. 얼마 후 목사 이경이 병사하고, 김시민은 목사 대리로 임명받았다. 김시민은 즉시 진주성으로 돌아왔다. 난리가 났을 때, 피난을 떠나는 것은 목사의 자세가 아니라고 김시민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진주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 오른쪽 언덕배기에 만화 게시판이 눈에 띈다. 10개의 장면으로 꾸며진 만화인데 그 제목이 ‘준비된 리더샵, 불패의 업적을 이룬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이야기’로 무척이나 길다.
이 만화의 제목에서 김시민을 ‘준비된 리더샵’이라고 표현했다. 김시민은 1583년 30세에 니탕개의 난을 평정하는 전투에 참전했었고, 1584년 31세에 무과(대과)에 급제하여 종6품 훈련원 주부 벼슬에 올랐다. 그는 ‘군대 개혁 및 강화에 관한 의견’을 병조에 제출한 바 있다. 김시민은 준비된 지도자이다.
만화의 내용에 김시민이 상대한 일본군을 3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10여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안내판에는 2만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2만인지 3만인지 따지지 않는다.
언덕 위쪽에는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며,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오른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고 있다. 적을 향하여 호령하고 있을까? 파란 하늘, 우거진 나무숲이 장군의 위엄을 드높인다.
동상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입구에 ‘김시민 장군 전공비’가 있다. 김시민 장군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의미 파악은 독자에게 맡기고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기상은 예리하면서도 강했고 (氣銳而剛) / 자질은 굳세면서도 온화했네 (質毅而溫)
의리로써 줄기를 삼고 (義以爲幹) / 충성으로써 뿌리를 삼았네 (忠以爲根)
성을 지켜 적을 물리친 것은 (全城郤敵) / 누구의 공적이 이와 같겠는가 (如其功)
나라 일에 목숨 바친 것은 (死於王事) / 누구의 충성이 이와 같겠는가 (如其忠)
비봉산이 높고 높으며 (晉山義義) / 남강 물이 넘실거리니 (晉水洋洋)
비석 하나 영원히 전해져(一石千秋) / 산처럼 높고 물처럼 영원하리(山高水長)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평평한 공간이 보이고 그 가운데 우물이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우물터 한가운데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는 원통형의 우물이다. 맑은 물에 흰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이 비친다. 수량도 풍부하게 보인다.
두레박으로 물을 떴다. 물을 길어 뜨겁게 데우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왜군을 향해 그것을 퍼부은 진주성 백성들의 눈물겨운 모습을 상상하며 떠올렸다. 그런데 두레박 끈 한쪽이 떨어져서 물이 조금만 올라왔다. 한 모금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물이 시원하다. 이물은 진주 백성의 생명수다. 백성의 목을 축인 생명수요, 적을 물리친 생명수다.
다시 언덕을 따라 올라갔다. 그 오른쪽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된 ‘진주성 북장대(晉州城 北將臺)’가 있다. ‘북장대’의 ‘장대’는 군대를 지휘하는 높은 대를 말한다. 광해군 10년(1618)에 경상우병사 남이흥(南以興)이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북장대의 누각 이름은 진남루(鎭南樓)이다.
발을 딛기 어려울 정도로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갔다. 바닥이 깨끗하다. 한쪽에 젊은 부부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누워있고 여자는 그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다. 난간 옆에 섰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로 아래는 주차장, 그 부근의 복잡한 거리가 보이고, 진주 시가지가 저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자리로 딱 좋다.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도 여기 서서 전투를 지휘했을 것이다. 동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오른손을 들고 호령했을 것이다. 3천8백 조선병사를 이끌고 3만 왜군을 막아낸 김시민 장군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슬아슬했을 전투 장면이 떠오르며 손에서 땀이 난다.
진주성에서 김시민 장군의 개혁 정신을 배운다.
김시민은 목사 대리로 임명받은 즉시 진주성 안으로 돌아왔다. 피난지 지리산에서는 진주성의 개혁을 이룰 수 없다, 진주성 안에서 들어와야 가능해진다.
김시민은 뿔뿔이 흩어진 병사를 불러 모았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말도 생각난다. 성채를 보수하고, 전쟁 무기를 확충했으며, 군사 훈련을 통해 군대 체계를 확립했다. 이는 모두 목사 대리로서 김시민의 권한에 속한 일이다. 개혁이란 자기가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다.
상사가 부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선조는 왕의 권한을 이용하여 간섭하다 폭삭 망한 전투가 있다. 그 예로 두 가지만 든다. 하나는 육상에서 벌어진 임진강 방어 전투이다. 조선의 정예 부대가 몰사당했다. 다른 하나는 해상에서 벌어진 칠천량해전이다. 조선 수군이 완전히 궤멸당했다.
그 누구라도 권한 밖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결단코 개혁이 아니다.
호국의 성지 진주성에는 김시민 장군의 개혁 정신이 스며 있다. 공북문에 스며 있고, 만화에도 스며 있었으며, 김시민 동상에도 스며 있고, 북장대에도 스며 있었으며, 심지어 진주성 샘물에도 스며 있다. 그 정신은 유비무환의 정신이요, 솔선수범하는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