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지례 전투의 영웅들

수필 임진왜란 제4부

by 수필가 고병균

의병이 승리한 전투가 또 있다. 바로 지례 전투이다. 지례 전투김천시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우두령에서 김면이 이끄는 의병부대에게 패배한 일본군은 지례로 후퇴하게 된다. 권율 장군에게 패배한 또 다른 일본군 부대 역시 지례로 후퇴한다. 그 일본군들은 지쳤는지 지례현에서 곯아 곯아떨어진다.

이 기회를 노려, 의병연합군은 담장 안 창고의 주변에다가 장작을 쌓아서 불을 질렀고, 몸에 불이 붙은 일본군들은 우왕좌왕한다. 이 틈을 타 의병연합군은 일본군을 향해서 무수히 수많은 화살을 쏘았으며, 수많은 일본군들을 사살하게 된다.

사실 지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분들은 평소 큰소리 뻥뻥 치던 고관대작이 아니다. 잡풀에 불과한 민초들이다. 눈물 나도록 숭고한 이분들의 활약상을 다시 소개한다.


일본군 고바야가와 부대가 창원에서 남원으로 직행하다가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에게 막혀 지례·김산·선산·개령 등지에 흩어져 주둔했다. 지례군(知禮郡)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으로 1914년 김천군에 통폐합되었다.

지례·김산의 왜군이 거창으로 향하다가 우두령에서 김면(金沔)이 이끄는 의병들에게 패하여 다시 지례로 되돌아갔다. 우두령(牛頭嶺)은 ‘소머리재’로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과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사이에 있는 소백산맥의 고개로, 해발 고도는 580m이다. 지방도 제1099호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며, 이는 본래 옛 국도 제3호선이었다.

또 다른 왜군 부대가 황간·순양·무주·금산을 거쳐 전주로 가던 중 권율(權慄) 장군에게 패하여 대덕·지례로 후퇴했다.

이리하여 지례 향교에는 왜군 1,5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행장을 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들을 섬멸한 절호의 기회다.


당시는 음력 7월, 그리 춥지 않다. 아무 데서나 잠을 청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병사 1,500여 명이 잠을 잘 정도라면 그 시설의 크기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한 초등학교 중 학생 수가 가장 많았을 때는 1,200명이었다. 이들을 수용한 교실은 50개나 되었는데, 운동장을 바라보는 2층의 본관 건물, 중간의 2층 건물과 후관 건물까지 세 겹이었다.

그러니까 왜군이 잠들어 있는 향교의 시설은 웬만한 초등학교 시설과 맞먹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으로 소풍 나온 것이 아니다. 조선의 의병에 쫓겨 왔다. 그래서 몹시 피곤하다. 몸에 지닌 행장을 아무렇게나 풀어놓고 조총도 내려놓고 드러눕는다.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들을 물리칠 절호의 기회다.


그날은 1592년 7월 29일(9월 4일)이었다. 의병 연합군이 담장 안 창고 주변에 장작을 쌓고 불을 질렀다. 당시 건축 재료는 벽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니다. 기둥도 석가래도 온통 나무이다. 수년 동안 마른나무다. 향교 건물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깜짝 놀란 왜군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피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옷에 불이 붙었다. 그것을 끄려고 발버둥이다. 그런 왜군을 향해 의병들이 화살을 날렸다. 왜군은 불에 타 죽고 화살에 맞아 죽었다. 도망자가 10여 명 있었으나 멀리 가지 못하고 잡혀 죽었다.

이게 지례 전투의 전말이다. 참으로 통쾌하다. 속이 후련하다.


전투가 끝난 직후 의병 총대장 김면(1541년 52세)은 합천군수 배설(裵楔, 1551년 42세)에게 ‘왜병을 추격하라.’라고 명했다. 배설은 응하지 않았다. ‘수령으로서 어찌 백면서생인 김면의 지휘를 받으랴!’ 이런 생각이었다. 그는 스스로 추격하지도 아니하였고, 다른 사람이 추격할 기회마저 잃게 했다. 참 괘씸하다. 배설은 김면의 명을 수행하지 아니한 죄로 나중에 곤장을 맞았다.

배설은 칠천량 해전 당시 패색이 짙어졌을 때 전함 12척을 이끌고 탈영했다. 나중에 그 배를 이순신에게 인계함으로써 조선 수군을 재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그는 명량 해전에서 또 탈영하였다. 기회주의자로 여겨진다.

어쨌든 지례 전투의 영웅은 의병장 곽재우와 김면 그리고 권율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권율을 영웅으로 묘사했다.’고 하며 ‘삼류’라고 비난하는 자가 있었다.


임진왜란의 영웅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순신, 김시민, 권율 등 셋을 꼽는다.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권율의 공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권율의 아버지는 영의정이었고, 사위는 병조판서였다. 이런 이유로 논공행상을 논할 때 권율에 대한 대우가 달랐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권율의 공(功)은 다른 사람에 비해 부풀려졌던 게 사실이다. 선조로부터 심하게 핍박을 받았던 이순신과 달랐고, <군대 개혁에 관한 글>을 병조에 제출한 김시민에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라고 비난한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권율은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쓸 수는 없다. 작가로서 양심에 따라 쓴 나의 글에 대하여 ‘삼류’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지나치다.


지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은 누가 뭐라 해도 곽재우 김면 권율 세 분이다. 그분들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이다. 430여 년이 지난 세대가 자기가 정한 잣대로 저분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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