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정문부와 윤탁연의 갈등

수필. 임진왜란 제3부

by 수필가 고병균

1593년 2월 29일(3월 31일), 윤탁연이 함경도 관찰사를 제수받아 왔다. 아울러 왕세자 광해군을 호송하게 되었다. 윤탁연은 1538년생으로 55세였다. 그는 45세인 1583년, 형조참판으로 죄인을 다스릴 때 임신한 여자를 장형에 처하여 낙태 치사하게 한 책임을 물어 좌천된 일도 있었다.

관찰사 윤탁연은 의병대장 정문부 정문부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평사는 일개 막관(幕官)이니 마땅히 감사(監司)의 절제를 받아야 하고 서로 대등하게 대해서는 부당하다.”

감사 윤탁연에게, 정문부는 일개 평사요 의병장이다. 1565년생으로 자신보다 28년이나 젊다. 어린 정문부가 자신과 대등하게 맞서려 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다.


갈등을 일으킨 자는 윤탁연이다.

그는 정문부의 전공(戰功)을 사실과 반대로 보고했다. 정문부의 부하가 수급을 가지고 관남으로 가면 그것을 빼앗아 자기 군사에게 주기도 했다. 치사하고 비겁하다. 못된 자는 못된 짓거리만 골라서 한다. 오늘날에도 윤탁연처럼 못되게 구는 자가 있다.


윤탁연은 ‘정문부의 행동이 불궤(不軌)스럽다.’고 아뢰었다. ‘불궤 (不軌)’란 ① 법이나 도리를 지키지 않음. ② 반역을 꾀함. 등을 뜻하며, ‘∼를 도모하다.’는 말로 쓰인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정문부는 군대를 해산시키려 했다. 그런데 군졸들이 흩어지지 않고 그의 곁에 있었다. 혹자는 사잇길로 달려가서 행재소(行在所)에 보고하기도 했다. ‘백 명의 친구보다 한 사람의 원수가 더 무섭다’는 말이 생각난다.


정문부는 왜적을 추격하여 안면까지 몰아내고 길주로 돌아갔다. 함경도를 완전히 탈환한 것이다, 윤탁연은 이 일을 두고 시비를 걸었다. ‘평사가 적을 놓아 보낸 죄를 지금 당장 구문(究問)해야 할 것이니 속히 잡아 오라.’고 하며 정문부를 뒤쫓게 했다. ‘구문’이란 ‘알 수 있을 때까지 캐묻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윤탁연의 주장에 모순이 있다.

‘평사가 적을 놓아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토 일본군은 함흥을 지나 안변으로 퇴각했다. 그때 윤탁연은 함흥에 있었다. 일본군과 맞서 싸울 기회가 있었다. 그러니 ‘평사’가 적을 놓아 보냈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적반하장이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 꼴이다.

정문부는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순찰사가 적을 놓아 보냈기 때문에 의병장도 놓아 보낸 것이니, 구문할 이유가 없다.’


윤탁연은 또 다른 트집을 잡는다. 정문부를 향하여 ‘발호(跋扈)한 자’라고 조정에 보고했다. ‘발호’란 ‘권세나 세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조정에서는 둘 사이를 무마시키려고 사신을 보냈다. 그러자 윤탁연은 사신들에게 후한 뇌물을 주었다. 사대부의 가속으로서 관남 지역에 있는 자들에게 곡식을 베풀어 구제하고, 조정에서 북쪽으로 보낸 사람들에게 옷과 장비를 주었다.

조정에 돌아간 사신들이 민심을 제대로 보고했을까? 윤탁연은 옹호하고, 정문부의 공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이에 함경도 남북의 백성 중 분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594년 4월 2일 윤탁연은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다. 탄핵 사유로 선조실록 50권, 1594년(선조 27년) 4월 2일 경술 1번째 기사를 소개한다.

“사헌부가 사욕만 채우는 함경도 관찰사 윤탁연의 체직을 청하다.”

그해 5월 28일, 윤탁연은 향년 57세로 객사했다. 송익필, 이산해 등과 함께 시문에 능한 8문장가 중 하나였던 그가 좋은 재능을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데만 사용한 것 같아 몹시도 안타깝다.


조정에서는 정현룡에게 함경도 관찰사를 제수하고, 정현룡(鄭見龍)은 1547년생 47세로 정문부보다 18세 상이었다.

정문부에게도 정3품인 영흥 부사가 제수되었다. 20대의 정문부에게 상당히 파격적인 승진이다. 이후 예조참판, 장단 부사를 거쳐서 40세인 1615년 부총관에 이어 병조참판으로 임명되었다.

붕당정치는 정문부를 그냥 놔주지 않았다. 북인의 횡포에 관직을 고사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58세인 1623년 전주 부윤이 되었다. 그렇지만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향년 59세다.

형장의 이슬로 스러질 때, 정문부는 시종일관(始終一貫) ‘원통하다.’라고 주장했다.


의병대장 정문부는 임진왜란의 영웅이다.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다. 그러나 20대에는 비리 혐의자 윤탁연의 모함을 받았고, 늙어서는 당파싸움으로 희생된 비운의 영웅이다. 이런 나라는 공정한 나라가 아니다.

정문부처럼 ‘원통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런 나라는 공정한 나라가 될 수 없다. 또 모함을 일삼는 자가 날뛰는 나라도 공정한 나라가 될 수 없다. 영웅을 대접하되, 사후에 ‘명복을 빕니다.’ 혹은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미사여구로만 대접하는 나라도 공정한 나라라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나라는 ‘상 받을 자에게 상을 주고 벌 받을 자에게 벌을 주는’ 나라이다.

다른 말로 공정한 나라는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는 나라’이고, 그 영웅이 ‘살아있을 때 영웅으로 대접하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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