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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고병균 Dec 02. 2023

[7-6] 절이도 해전, 구겨진 자존심

수필 임진왜란

절이도 해전(折爾島海戰)은 1598년 8월 20일(음 7월 19일)에 현재의 고흥군 고금도인 절이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이 전투에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은 일본 수군의 전선 50여 척을 침몰시켰고, 16,600여 명의 전사자를 발생시켰다. 그런데 조선은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을까? 이유는 무엇일까?     


8월 19일(7월 18일). 이순신은 ‘적 함대 100여 척이 금당도, 고금도와 거금도 중간의 섬으로 온다.’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첩보를 전해준 자는 칠천량 해전에서 포로로 잡혀갔던 김완이다. 그는 이 해전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 돌아왔다. 


이순신은 첩보를 전해준 자를 참수했던 이일이나 신립과는 달랐다. 그를 신임했고 그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이것도 이순신의 훌륭한 점이다.


이순신은 수군 함대를 금당도의 길목에 전진 배치했다. 이때 명나라 수군 대장 진린은 합세하지 않고 관망 태세만 취하고 있었다. 얄밉기 짝이 없다.


8월 20일 새벽, 일본함대는 거금도(절이도)와 녹도(소록도) 사이를 뚫고 금당도를 향해 나아간다. 기다리고 있던 이순신 함대가 이들을 여지없이 쳐부수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조명연합군은 남해의 제해권 일부를 되찾았다. 고흥반도에서 동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학자들은 이 전투의 기록이 없다고 한다. 난중일기에도 없고, 이충무공전서에도 없다고 한다. ‘천병(명나라의 장군)을 모욕하는 일은 (명나라의) 황제를 모욕한다.’라는 취지에서 (명나라 장수 진린이)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 전투의 전과를 알 수 있었을까? 다른 기록을 참고하여 추중(推重)한 것이다. 먼저 선조 수정 실록(선조 31년 8월)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舜臣自領水軍(순신자령 수군)

이순신이 수군을 지휘하여

突入賊中 發火砲(돌입적중 발화포)

일본함대 속으로 돌진하여 함포를 발사함으로써

燒五十餘隻 賊逐還(소오십여척 적축환)

50여 척을 불태움에 적군이 쫓겨 되돌아갔다.     


‘수정실록’은 ‘실록’과 어떻게 다를까? ‘실록’은 임금이 재위(在位)한 기간의 사적(事蹟)을 편년체로 기록한 것으로 사관들이 작성한 사초를 근거로 정리하여 편찬한다. 그런데 ‘수정 실록’은 실록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부분이 나타났을 때 다시 편찬한 것이다. 따라서 ‘수정 실록’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편찬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변질될 수 있다.


‘적선 50척이 대파되었다.’라고 하면 거기에 탑승한 인원은 얼마나 될까?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전투함 아타케부네의 승선 인원은 노꾼이 50에서 200명, 전투 요원이 100명에서 200명이다. 평균 탑승인원을  300명으로 산정하면 수장된 적군은 최소한 15,000명에 이른다. 이에 반해 아군의 손실은 30여 명이었다. 

이런 전투에 대한 공식 기록이 없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이 분개하고 있다. 


200여 년이 지난 1795년에 윤행님(尹行恁)이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참 이상한 기록이다.

‘녹도만호 송여송이 진린에게 적 전선 6척과 수급 69개를 상납했다.’     

절이도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대승을 거두었으나 자존심은 지키지 못했다. 명나라 군인들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려도 당하기만 했다. 심지어 영의정 류성룡까지도 그렇게 당했다. 

이런 수모를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는 절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 나라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까지만 자유를 누리는 것이 절제다. 생산자와 동시에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절제이다. 

특별히 국가 지도자가 절제를 솔선수범하여 실천하면 나라가 부강해진다. 그것이 전쟁을 방지하고, 나라의 자존심도 지키는 지름길이다.      


일본은 오늘날에도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2020년도 일본 교과서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싸움에서도 절제가 요구된다. 우리가 싸울 상대는 당시의 동인이나 서인이 아니고, 오늘날의 보수나 진보도 아니다. 서로 경쟁의 상대는 될지언정 싸움의 상대는 아니다. 이것이 바로 절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일본이다. 그들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남해안을 침범해 왔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고 했으니 독도 도발에 대하여 방어만 할 것이 아니라 공격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려면 온 국민이 절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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