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명량대첩, 이순신에게 내린 교서

수필 임진왜란 제8부

by 수필가 고병균

명량해전은 1597년 9월 16일(10월 26일)에 벌어진 해전이다. 이순신의 수군 함대가 일본 수군 함대를 대파한 해전이다. 망국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한 실로 기적과 같은 해전이라 명량대첩이라 한다. 정유재란 판세를 완전히 뒤집은 대첩이요. 우리 역사에 길이 빛날 대첩이며, 세계 해전사에 손꼽을 만큼 위대한 대첩이다. 일본 전함 59척을 대파한 한산도대첩, 일본 전함 200여 척을 대파한 노량해전과 함께 이순신의 3대첩으로 손꼽힌다.


명량해전을 말하기에 앞서 7월 16일(8월 26일)에 벌어진 칠천량해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칠천량 해전은 조선 수군이 대패한 해전이다. 이 전투의 지휘관 삼도 수군통제사 원균은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다 왜군에게 붙잡혀 전사했다. 반면 전라 우수사 이억기와 충청 수사 최호 등 장수들도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함선도 박살 나고 말았다. 이로써 조선 수군은 완전히 궤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는 이순신에게 복직 교서를 내렸다. 이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는 내용을 차분하게 읽으면서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왕은 이와 같이 이르노라. 아! 나라가 의지하여 보장(保障)으로 생각해 온 것은 오직 수군뿐인데, 하늘이 화(禍) 내린 것을 후회하지 않고 다시 흉한 칼날이 번득이게 함으로써 마침내 우리 대군(大軍)이 한 차례의 싸움에서 모두 없어졌으니, 이후 바닷가 여러 고을을 그 누가 막아낼 수 있겠는가.

‘하늘이 화를 내린’ 사건은 칠천량해전이다. 그 전투의 지휘관은 원균이다. 선조가 이순신을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끌어내리고 원균을 앉힌 것이 원인이다.

한산을 이미 잃어버렸으니 적들이 무엇을 꺼리겠는가. 초미(焦眉)의 위급함이 조석(朝夕)으로 닥쳐온 상황에서, 지금 당장 세워야 할 대책은 흩어져 도망간 군사들을 불러 모으고 배들을 거두어 모아 급히 요해처에 튼튼한 큰 진영을 세우는 길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도망갔던 무리가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한창 덤벼들던 적들 또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위엄과 은혜와 지혜와 재능에 있어서 평소에 안팎으로 존경을 받던 이가 아니고는 이런 막중한 임무를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칠천량해전의 패배로 한산을 잃어버렸다. 그 전투의 지휘관은 원균이다.

초미(焦眉)의 위급함을 수습해야 한다 그 막중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평소 위엄과 은혜와 지혜와 재능이 있는 자이다. 평소 안팎으로 존경을 받던 자이다. 누구일까?


생각건대, 그대의 명성은 일찍이 수사(水使)로 임명되던 그날부터 크게 드러났고, 그대의 공로와 업적은 임진년의 큰 승첩이 있고 난 뒤부터 크게 떨쳐 변방의 군사들은 마음속으로 그대를 만리장성처럼 든든하게 믿어왔는데, 지난번에 그대의 직책을 교체시키고 그대가 죄를 묻고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나의 모책(謨策)이 좋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며, 그 결과 오늘의 이런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선조는 이순신에게 백의종군의 멍에를 두 번이나 씌웠다. 녹둔도 전투에서 승리해ᅟ걌음에도 이일의 모함으로 백의종군의 멍에를 썼고, 임진왜란 중 해전에서 연전연승했음에도 원균의 모함으로 백의종군의 멍에를 썼다. 입에 바른말로 칭찬할 일이 아니다.


이제 특히 그대를 상복 중에 기용하고 또 그대를 백의(白衣) 가운데서 뽑아내어 다시 옛날같이 충청․ 전라․ 경상 3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바이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들 면도 살해되었다. 왕은 이순신을 마음으로 위로해야 한다. 충청․ 전라․ 경상 3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면 위로가 될까?


그대는 부임하는 날 먼저 부하들을 어루만져 주고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찾아내어 단결시켜 수군 진영을 만들고 나아가 형세를 장악하여 군대의 위풍을 다시 한번 떨치게 한다면 이미 흩어졌던 민심도 다시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며, 적들 또한 우리 편이 방비하고 있음을 듣고 감히 방자하게 두 번 다시 들고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대는 힘쓸지어다.

수사(水使) 이하 모두 그대가 지휘하고 통제하되 만약 일에 임하여 규율을 어기는 자가 있거든 누구든 군법대로 처단하도록 하라. 그대가 나라를 위해 몸을 잊고 기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남은 이미 그대의 능력을 다 시험해 보아서 알고 있는 바이니, 내 어찌 감히 많은 말을 보태겠는가.

‘부하들을 어루만져 주고’ ‘흩어져 도망간 자들을 찾아내어 단결시켜’ … ‘그대는 힘쓸지어다.’ 이순신은 이런 일을 잘 감당했었다. 그런데 의심 많은 선조가 이순신을 지원할까? 자신이 제시한 그 일을 감당하도록 아낌없이 지원할까? 조금은 의심스럽다.


아! 저 손육항(孫陸抗)이 국경의 강 언덕 고을을 두 번째 맡아서 변방의 군사 임무를 완수했으며, 저 왕손(王遜)이 죄인의 몸으로 적을 소탕한 공로를 세웠던 것처럼, 그대는 충의(忠義)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나라 구제해 주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바라면서, 이에 교서(敎書)를 내리는 것이니 생각하여 잘 알지어다.

그대는 충의(忠義)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선조는 이순신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교서를 내린 목적이다.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연전연승했다. 그러나 원균이 지휘한 칠천량해전 단 한 번에 조선 수군은 박살 나고 말았다. 이는 선의 인사정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순신에게 내린 교서를 읽으면서 인사정책으로 ‘적재적소’ 원칙의 중요함을 실감한다. ‘적재적소’란 ‘어떤 일에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그 임무나 지위를 맡기는’ 인사정책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적재적소의 원칙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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