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8부
일본군이 펼치려 했던 수륙 양공책은 명량대첩에서 이순신에게 패배함으로 좌절되었다. 일본군은 남해안의 해안가에 왜성을 쌓고 농성에 돌입했다. 사실 일본군 지휘관들은 본국으로 철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철수 불가와 함께 재북상을 독촉하는 바람에 엉거주춤한 상황이 되었다.
조명연합군은 이들을 격파하여 전쟁을 끝장내겠다고 결의했다. 그래서 벌인 전투가 제1 울산성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의 공격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도산성을 점령하는 일이다. 도산성은 일본군의 침략 본거지 부산과 매우 가깝다. 따라서 도산성을 점령하면 부산의 본거지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게 된다. 그리하면 일본의 조선 침략을 사실상 좌절시킬 수 있다. 둘째는 도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를 죽이는 일이다. 그는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는 등 조선에 치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를 잡아서 설욕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조명연합군은 울산성 공략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12월 20일에는 여여문을 도산성에 잠입시켜 일본군의 배치를 기록하였다. 공성에 투입되는 병력만 해도, 명군이 최소 30,000명에서 최대 44,000명, 도원수 권율을 최고 지휘관으로 하는 조선군 10,000여 명 등 모두 40,000명에서 54,000명이다. 연합군은 본영을 경주에 설치하고, 일본군 원병을 차단할 길목도 선점했다. 정예 병력과 군량, 화포 등이 속속 모여들었다. 또 호남 지방으로 별동대를 보내어 순천 왜성들을 공격하는 모습도 보였다. 말 그대로 일본군을 낚기 위한 작전이었다.
1597년 12월 23일(1598년 1월 29일), 연합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다. 마귀, 이여매, 파새 등이 지휘하는 명군은 울산성 서북쪽으로 진군하여 일본군을 성내로 퇴각시켰다. 경리, 양호 군대는 울산성의 목책을 점령했다. 그 결과 일본군은 도산성 바깥의 병영성과 언양성이 함락되었고, 서생포 왜성과의 연락도 두절되었다. 도산성의 일본군은 조명연합군의 그물 같은 포위망에 갇혔다. 그러나 양호는 작전이 없었다. 무조건 공격하다가 일본군의 조총 공격에 사상자가 속출했다. 양호 군대는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명연합군은 포위망을 유지하면서 공세를 강화했다. 28일 연합군은 도산성 외성을 함락시키며 가토군을 몰아붙였다. 가토군은 좁은 내성으로 몰리며 결사 항전을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가토 기요마사는 할복을 준비하는 사태를 맞이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조명연합군의 작전을 알아차렸다. 조명연합군의 공격 목표가 도산성의 가토 기요마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일본군 장수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나오시게, 모리 카츠노부, 아사노 나가마사와 요시나가 부자, 다치바나 무네시게, 하치스카 이에마사 등이 성에서 나왔다. 거리도 멀고 가토와 사이가 나쁜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까지 출병했다. 총사령관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도 자신의 가신 야마구치 무네나가를 급파했다. 6만에서 8만에 달하는 일본 대군이 도산성으로 몰려들었다.
조명연합군은 일본군의 가토군과 구원군 사이에 끼고 말았다. 그 결과 조명 연합군은 박살 나고 말았다. 그 교전 상활에 대하여 퇴각하는 연합군의 기록과 추격하는 일본 구원군의 기록은 서로 극명하게 달랐다. 아전인수이다.
“추격을 예상하고 퇴로에 복병을 설치하여, 추격군을 섬멸했다.”(조선과 명의 기록)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조명연합군을 무참히 개박살 냈다.” (일본의 기록)
10여 일에 걸친 울산성 전투는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다. 참 아쉽다. 도산성을 점령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가토 기요마사를 사로잡거나 죽이지 못한 것이 몹시 아쉽다. 내가 느끼는 아쉬움이다.
제1차 울산성 전투 이후 일본군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이겼다고 축하 잔치를 베풀었을까? 아니다. 공격 대상이었던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는 기껏 축조한 도산성을 포기하고 서생포로 후퇴했다. 거기서 종전까지 웅거했다. 다른 일본 장수들도 안전한 성으로 옮기고, 성의 방호력을 강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조선의 왕이나 대신들은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했을까? 전혀 아니다. 반면 일본은 어떠한가? 조선을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300여 년이 지난 1910년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35년 동안 조선 백성을 노예로 취급했다.
1945 천만다행으로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났지만, 대한민국을 향한 일본의 태도는 ㅇ전했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공격했다. 80년이 지나도록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파도가 밀려오듯 공격하지만, 대한민국은 변변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속이 후련해지는 소식이 들린다. 한글이 일본을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떻게 점령하고 있을까?
먼저 일본의 청년 대학생들이 배운다. 삼성 엘지 한화 등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 배운다. 중년 여성들도 배운다. 한국의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서, 한국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고 싶어서 배운다. 초등학생들도 배운다. 한국 아이들은 5세만 되어도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초등학교 학생 중에는 5학년이 되어서도 일본어를 읽거나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65세 이상 노인들도 배운다. 자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배운다. 1446년에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이 일본을 점령하고 있다.
역사에서 일본은 무력으로 조선을 점령했다. 이제는 한글이 우리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아가고 있다. 일제강점기 저들이 말살하려 했던 한글이 원수를 갚아가고 있다. 악(惡)으로 갚지 않고 선(善)으로 갚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만세! 세종대왕 만세! 한글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