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재란 제8부
1597년 9월 16일(10월 26일)에 벌어진 명량해전(鳴梁海戰) 또는 명량대첩(鳴梁大捷)은 영화로 소개될 만큼 유명하다.
명량대첩에 앞서 지휘관 이순신에게는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남 어란진 지역의 백성들이다. 그들은 자기가 덮고 자는 솜이불을 내주었다. 물항아리도 내주었다. 이는 일본 수군을 물리치라는 백성의 숭고한 명령이다.
또 이순신을 돕는 사람으로 장흥(長興) 사람 마하수(馬河秀)가 있다. 그 일화를 ‘마씨가장(馬氏家狀)’이라고 하는데, 대화체로 꾸며면서 소개한다.
마하수는 강진 병영성을 축조한 마천목 장군의 후손으로 당시 벼슬은 선공주부(繕工主簿)였다. 그의 고향은 현재 주소로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다. 정유년에 배 한 척을 만들어 해상에서 피난하다가 이 통제(李 統制, 이순신)가 복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랴.’ 하며 회녕포(會寧浦)로 찾아온 온 것이다.
“칼날을 무릅쓰고 찾아오니 무척 수고했구려, 그대와 함께 온 피난선이 몇 척인고?”
“10척가량 됩니다.”
“그대들은 배를 모아 나의 후원이 되어 군대의 위용을 도와준다면 큰 보조가 될 것이요.”
“제가 비록 늙었으나 공과 함께, 죽고 삶을 같이 하겠습니다.”
李 공(公)이 극구 칭찬하며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 이 문장에 시를 지은 분이 누구일까? (극구 칭찬하며 시 한 수를 지어)라고 하면 이공이다. 그런데 (시 한 수를 지어 올렸다.)라고 하면 마하수다. 과연 누구일까? 내 실력으로는 분간할 수 없다.
문화와 예절 바른 성스러운 선조의 나라 / 어쩌다 추악한 오랑캐가 쳐들어오나
사나이 늙었어도 장한 이 마음 / 이야말로 전쟁에서 죽을 때로다.
함께 온 피난선의 선주는 백진남(白振南), 김성원(金聲遠), 문영개(文英凱), 변홍원(卞弘源), 백선명(白善鳴), 김택남(金澤南), 임영개(任永凱) 등이다. 이들 중에 끼어 있던 정명설(丁鳴說)이 나섰다.
“우리들이 본래부터 길러온 것이 충성심인데 오늘날 늦춰서는 안 됩니다.”
이 통상(李 統相)이 피난선의 선주들에게 지시한다.
“먼바다에 열을 지어 군대같이 가장하라.”
“이 기회를 타서 같이 나간다면 파죽(破竹)의 승세(勝勢)가 있을 것이요.”
“내 마음도 벌써 정했습니다.”
정명설(丁鳴說)이 응답하니 다른 선주들도 화답하며 출동했다.
피난선이 바깥 바다에서 진을 벌리고 있을 때, 李 공이 적에게 포위된 것을 본 정명설이 칼을 뽑아 들고 나섰다. “대장부가 죽어야 할 때다.” 하며 적진으로 돌진했다. 안타깝게도 왜군의 탄환에 맞았다. 그의 두 아들 성룡(成龍)과 위룡(爲龍)이 자기 아버지의 시신을 피난선 위에 올려놓고 적진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적은 이(李) 공(公)에게 패하여 멀리 도망했다. 그들은 분을 풀지 못했다.
이처럼 이순신을 돕는 민간 선박들이 많았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는 전투에 임하는 지휘관에게 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략은 자기의 영달을 꾀하는 계략이 아니었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계략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전투에 승리하려는 선한 계략이었다. 이런 계략을 나는 ‘거룩한 계략’이라고 하고, 그런 계략을 발휘하는 자를 ‘거룩한 지도자’라고 말한다.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은 진정 거룩한 지도자였다.
부끄럽지만 나의 성공 사례를 하나 소개하나. 교감으로 근무할 때였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11월에 학예발표회를 실시한다. 학생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학부모에게 보여주는 행사이다. 이런 행사를 추진하려면 체육관 같을 시설이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학교에는 다목적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 행사장에 참석한 순신 시의회 정○○ 의원에게 요청했다.
“정 의원님, 이런 행사를 할 만한 시설이 없습니다. 체육관이 필요합니다.”
“그래요, 체육관 신축 요청서를 만들어보세요.”
이날 이후 밤잠을 설쳐가며 요청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일은 나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수업안을 작성하는 일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에게 맡길 수도 없다.
그러다가 학년 초가 되었다. 학부모 회의를 앞두고 교육과정 설명 자료 만들기에 몰두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과부하가 걸렸는지 덜컥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했다.
이후 건강 문제로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도 ‘○○초등학교 체육관 신축 요청서’가 만들어졌고, 그것을 정 의원에게 전달했다. 그해 겨울 체육관 신축 사업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2002년 학교 예산에 체육관 사업비 8억 원이 배정되었다.
나의 사례는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마씨가장(馬氏家狀)’ 일화에 비할 바 못 된다. 그래도 공통점은 있다. 하나는 목표가 학교를 위한 점이요, 둘은 심근 경색 등 어려움을 극복한 점이며, 셋은 남에게 밑기지 않고, 스스로 감당한 점이다.
이상 세 가지는 성공에 이르는 3대 요건이다. 400여 년 전 명량해전의 큰 성공은 물론, 오늘을 사는 나의 사례처럼 아주 작은 성공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성공 요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