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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고병균 Dec 02. 2023

[10-9] 노량해협을 건너며

수필 임진왜란

9시가 조금 넘어 출발했다. 하늘은 맑고 태양은 빛난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던 자동차가 하동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달리고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군으로 진입했다. 남해 섬은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남해도는 육지와 연결하는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52m의 현수교로, 1973년에 개통된 남해군의 관문이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무심코 건너온 남해대교는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사이를 잇는 교량이요, 아래 바다는 ‘노량해협’이다.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노량 해전’의 바로 그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1592년 5월 23일 일본이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당시 육지에서는 연전연패했다. 그렇지만 바다에서는 전혀 달랐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연전연승했다. 


1592년 6월 16일의 옥포 해전을 비롯하여 사천포 해전 당포 해전 한산대첩 부산포 해전 등 승승장구했다. 이런 그를 선조는 감옥에 처넣었다. 전쟁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권력다툼의 고질병이 도졌는지 모른다.      


한편 일본은 그 기회를 노렸다. 1597년 8월, 14만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또 쳐들어왔다. 이것이 정유재란이다. 경상도를 먼저 점령했던 임진왜란과 달리 이번에는 전라도를 먼저 공격해 왔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을 대파함으로써 남해의 해상권은 물론 육지에서의 보급로까지 확보되었다. 육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남원성과 전주성을 별다른 저항 없이 점령했다.


선조는 다급해졌는지 이순신을 투입했다. 백의종군한 이순신, 그가 이끈 조선 수군이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1597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이다. 그런데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노량해협에서 일본 수군이 도전해 왔다. 아니다. 일본으로 철수하려는 마지막 해전이다.      


“세상에 나와, 나라에서 써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라.”


평소 이렇게 강조했던 이순신, 그는 이 해전을 죽음으로써 나라에 충성할 마지막 기회라고 인식했는지 ‘오라, 적이여! 나의 마지막 바다로’ 이렇게 다짐하며 기다렸다. 그 결전의 장소가 바로 여기 노량해협이다.      


노량 해전에서 상대한 왜장은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 이들은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공격해 왔다. 이를 상대하는 조선 수군의 배는 불과 200여 척, 숫자로 따지면 열세다. 그러나 전투의 승패는 병사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용인 전투에서 8만 명의 조선군이 그 1/50에 불과한 1,600명의 일본군에게 대패했다. 반대로 명량 해전에서는 13척의 조선 수군이 10배나 되는 133척의 일본 수군을 대파했다. 전투에서의 승패는 작전을 펼치는 사령관의 지략에 따라 좌우된다.


운동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 2002년의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 대표 감독 히딩크는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했었다.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그들을 아시아의 새로운 강팀으로 길러냈다. 


축구 경기에서건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서건 지도자가 이렇게 중요하다. 오늘날은 조선시대와 달리 지도자를 국민이 선택한다. 선거를 통해서 진정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백성을 다스리는 일뿐만 아니라 국가 경영의 제반 영역에서 건강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 소중한 임무가 유권자에게 있다. 안타깝게도 그 권리를 함부로 행사하는 유권자가 많다. 몹시도 안타깝다.     


노량 해전에서 우리 수군은 왜선 200여 척을 침몰시키고 150여 척을 나포하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세 불리하다고 느낀 일본 수군은 관음포 방면으로 도주한다. 이순신 장군이 그냥 놔둘 리 없다. 그 퇴로를 차단하여 격파하고, 포위당한 명나라의 장수 진린도 구해냈다. 그러나 이순신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쳤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순신의 애석한 죽음을 보면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성경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을 구별하여 백성 위에 세우라고 가르친다. 능력 있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등 세 가지의 덕목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 막상 투표할 때가 되면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인지?’ 매사에 ‘진실한 자인지?’ 따지지 않는다.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인지?’ 이런 것도 따지려 하지 않는다. 무조건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사람인지? 이것만 따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착잡한 마음을 떨치려고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이 가문의 원수요 나라의 원수인 일본 수군을 수장시킨 바다, 7년 동안이나 끌어온 그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낸 바다, 당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흔들거리는 물결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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