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10부
“남해대교입니다.”
운전하던 백 선생이 자동차를 세우며 한 말이다. 우리는 박 선생의 주도하에 이 선생과 함께 1박 2일의 남해와 통영 관광을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나섰다.
높게 솟을 주탑, 그 사이를 잇는 남해대교, 그 풍광이 시원하다. 그 한쪽에 ‘남해대교’란 제목의 안내판이 있다. 무심코 읽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사이를 잇는 대교’란 글귀가 눈에 띈다. ‘뭐?’ ‘노량?’ 그래서 물었다.
“백 선생님, 저 아래 바다가 노량해전의 현장 노량해협인가요?”
“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의 그 바다입니다”
군인 출신 백 선생의 응답이다. 순간 마음이 숙연해진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물결 위로 당시 치열했을 전투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노량해전은 퇴각하는 일본군과 그것을 막으려는 조명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해전이다.
해전에 참전한 두 진영의 전력을 함선으로 비교해본다
조선의 이순신이 인솔하는 수군의 전함은 판옥선 60척이고, 협선과 방패선이 80~180척이다. 정유재란이 끝난 후 나대용 장군이 보고한 ‘삼도의 판옥선 60척’이 근거이다.
명의 진린이 인솔하는 수군의 전함은 사선과 호선이 300여 척인데, 이들은 소형이어서 전함으로 사용할 만한 배가 못 된다. 이런 까닭에 명의 장수 진린과 등자룡은 참전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을 간파한 이순신이 판옥선 2척을 선사하며 두 장수에게 ‘참전할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당시 상황의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한편 일본 장수 시마즈 요시히로가 인솔하는 구원군의 전함은 안택선과 세키부네를 합하여 최소 350척이다. 승선 인원이 180명이나 되는 대형 함선인 안택선에는 다이묘와 같은 장수들이 승선하고, 이보다 작지만 빠른 세키부네에는 일반 병사들이 승선한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인솔하는 주둔군의 전함은 최소 150척인데, 이들은 해전에 참전하지 않은 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이상 두 진영의 전함을 합하면 무려 1천 척이 넘는 대규모 해전이다.
그날 새벽 2시부터 시작된 전투는 낮 12시까지 무려 10시간 동안 치열했다. 전투 결과는 어떠했을까? 피해 규모를 나라별로 따진다.
조선 수군은 전선 피해 0~4척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명나라의 기록에는 전선의 피해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시마즈 가문의 기록에 ‘4척 격침’이라 했다. 치명적인 피해는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것이다.
명 수군의 피해는 전선 손실 1~2척인데, 이중 등자룡이 승선한 판옥선이 침몰했다.
일본 수군은 전선 침몰 200척이다. 일본의 《정한위략(征韓偉略)》에 ‘일본 대장선조차 분멸되었으며, …… 200척 완파’라는 기록이 있다. 혼란을 틈타 일본 수군의 구원군 전함 50~60척이 탈출했다. 해전에 참전하지도 않는 주둔군 전함 70척도 탈출하고,
노량해전이 끝났다. 7년간 끌어온 전쟁도 끝났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다.
제1차 금산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장 고경명의 장남 고종후는 아버지와 동생의 시신을 수습하던 중 일본을 향하여 ‘가문의 원수요, 나라의 원수’라고 외쳤다. 그리고 스스로 복수장군이 되어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다. 그러나 원수를 갚지 못하고 전사했다.
이순신 역시 저들을 순순히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라, 적이여! 나의 마지막 바다로!’ 하며 원수를 갚으려고 기다렸으나, 원수를 갚지 못한 채 전사했다. 한편 고니시 유키나가와 시마즈 요시히로, 가도 기요마사 등 일본 장수들은 모조리 살아서 돌아갔다.
조선의 왕이나 대신들이 이후 원수를 갚으려 했을까? 아니다. 당파싸움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렇게 300여 년이 지난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조선 백성은 일본의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지긋지긋한 세월이 35년이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다. 1948년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천만다행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당파싸움(?)으로 일관했다. 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1950년, 동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100년이 되어도 회생 불가라는 거지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후로도 7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간혹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당파싸움(?)의 명분일 뿐 원수를 갚으려는 숭고한 뜻은 없었다. 이런 상황인지라 원수 갚는 일은 불가능했다. 내가 남해대교를 건넌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린다. 복수의병장 고종후가 갚지 못한 원수, 이순신 장군도 갚지 못한 그 원수를, 420년도 더 지나 갚았다는 소식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갚았을까?
먼저 경제력으로 갚았다.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997년에 11,000달러로 폭증하더니, 2024년에는 무려 36,194달러를 달성하여 일본의 35,793달러를 능가한 것이다. 이 소식이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또 K-방산으로 갚았다. 육군의 K-2 전차와 K-9 자주포, 공군의 KF-21 전투기 등은 일본을 넘어 국제 방산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해군은 더 놀랍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세종대왕함 등 해군 함정이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하며 5대양을 누비고 있다.
이상 원수를 갚고 있다. 그 주인공은 누구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린 역군들이요, 실험실에서 24시간 불을 밝힌 국방 과학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얼음냉수다. 말이 아니라 경제력이나 방산 무기 등 능력으로 원수를 갚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요, 영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