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 중 육군의 삼로군 작전은 싱겁게 끝났다. 수로군은 어떠했을까? 수로군의 지휘관은 명의 진린이다. 그는 명량 해전에서 관망 태세만 취했던 인물이다. 이런 자가 지휘하는 수로군 역시 작전에 성공할 것 같지 않다.
수로군이 펼친 작전은 두 가지였다.
먼저 펼친 작전은 순천 왜교성 전투이다. 거기에는 15,000명의 왜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외교에 능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다.
1598년 10월 19일(음 9월 20일) 1차 공격, (21일)에 2차 공격, (22일)에 3차 공격, (10월 2일)에 4차 공격, (3일)에 5차 공격, (4일)에 6차 공격 등 줄기차게 공격했었지만, 왜군은 방어만 했다.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전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2월 10일(음 11월 13일)에는 왜군의 군량미 창고가 있는 장도를 공격했다. 장도는 순천만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이순신은 군사를 상륙시켜 배에 실을 수 있을 만큼의 군량미를 빼앗아 오고 나머지는 불태우게 했다.
명의 진린이 지휘한 연합 수군은 섬 가까이 진격해서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 장도 주변은 수심이 얕다. 대형 군선이 기동하기에 불리하다. 섬 가까이 접근해 있던 명의 전선 39척이 썰물 때 갯벌에 걸리고 말았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왜군이 총공격을 가해 왔다. 조선의 지형에 어두운 진린의 작전 실수였다.
이순신은 이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중에 어떤 문책을 받게 될지 모르니, 판옥선 7척을 갯벌에 댔다. 판옥선도 갯벌에 걸렸다. 그러나 판옥선은 높다. 왜군이 활을 쏘아도 대포를 쏘아도 닿지 않는다. 판옥선은 다음 밀물 때 빠져나왔다.
전투 결과는 어떠했을까? 왜군 전선 30척이 격침되었고, 11척이 나포되었으며 병사도 3,000명을 물리쳤다. 명 수군의 피해는 전선 39척이 침몰당했고, 수군 2,300명도 전사했다. 조선 수군의 피해도 있었다. 사도첨사 황세득(黃世得)과 군관 이청일(李淸一) 휘하 장병 130명이 전사했다. 이 피해는 명군을 구하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 명의 진린은 없는 것만 못하다.
명나라가 계획한 수륙 합동작전도 실패로 끝났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총사령관 유정이 작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이요, 또 하나는 지휘관 진린의 어리석은 작전 때문이다. 이로써 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장도 해전은 노량 해전의 전초전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이순신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라, 적이여! 나의 마지막 바다로’ 하며 노량 해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난중일기> 을미년(1595년) 5월 29일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社稷威靈(사직위경) 粗立薄效(조립박효)
사직의 위엄과 영험에 힘입어 겨우 조그마한 공로를 세웠는데,
寵榮超躐(총영초렵) 有踰涯分(유유애분)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 분에 넘쳤다.
身居將閫(신거장곤) 功無補於涓埃(공무보어연애)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 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니,
口誦敎書(구송교서) 面有慚於軍旅(면유참어군여)
입으로는 교서를 외우나, 얼굴에는 군사들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있을 뿐이다.
어떤 학자는 이순신의 업적을 23전 23승이라고 말한다. 단 1척의 배도 격침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순신 자신은 ‘장수의 자리에 있으면서 티끌만 한 공로도 바치지 못했으니’라고 말한다.
또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해전들은 모두 정복군의 해전으로 해당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투를 수행했다고 한다. 반면 이순신이 수행한 해전은 수비하는 해전이었고, 조선의 조정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은 바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전쟁 물자조차도 자급자족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지지도 받은 것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선조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았고, 대신들은 온갖 트집을 잡았다고 한다. 그 예로 전쟁 중에 삭탈관직의 벌을 내린 것,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것 등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임금의 총애와 영광이 너무 커서’라고 표현했다.
이 시에 나타난 이순신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도(道)가 트인 사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謙遜)의 미덕이 몸에 밴 사람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다. ‘토끼가 잡혀 죽으면 사냥개는 쓸모없어 삶아 먹는다.’ 이런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으면 야박하게 버린다는 의미다.
여기서 ‘토사’는 이순신이 말하는 마지막 바다 곧 노량 해전을 말한다. 선조가 자기의 공을 인정해 줄까? 이순신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럴 것 같지 않다. 선조의 눈치만 살피던 문무백관들, 이순신을 ‘역적’이라고 주장하며 ‘죽여야 한다.’라고 탄핵했던 문무백관 199명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순신의 마음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아, 이순신의 그 쓸쓸한 마음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어찌 위로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