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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199대 1의 법칙

수필 임진왜란 제7부

by 수필가 고병균

카톡으로 글이 하나 날아들었다. ‘199대 1의 승리자’란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인데, 사형에 처할 뻔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구해낸 분이다. 글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1597년(정유년) 2월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이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이순신이 체포된 원인을 ‘원균의 모함’이라고 했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군 고니시의 계략에 조선의 왕 선조가 놀아난 것이다.

이순신을 심문하는 국형장이 열렸다. 선조가 지켜보고, 200명의 문무백관이 배석한 국문은 그날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배석한 문무백관 대다수는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라고 주장했다. 선조도 그 의견에 동조하며 은근히 이순신을 죽이려고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녹둔도 전투에서 여진족을 물리친 공이 있다. 임진왜란 중에도 해상 전투에서 이순신의 공이 어떠한지 누구나 안다. 이런 충신을 저들은 ‘역적’이라 호도하며 ‘죽여야 한다.’라고 탄핵했다. 심지어 이순신의 오랜 벗이요, 그를 삼도 수군통제사로 추천했던 류성룡까지도 ‘공(功)은 공, 사(私)는 사’라고 하며 ‘죽이라.’고 역설했다.

저들에게 조선의 장래나 백성의 삶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선조의 눈치만 살핀다.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고 아부한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있을 뿐이다. 그런 문무백관이 무려 199명이다.

이런데도 형을 집행하지 못했다. 그것은 ‘경상도의 많은 장수 중 이순신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두둔한 재상,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원익은 누구인가? 그는 조선의 왕족이다. 이순신보다 2년 늦은 1547년 12월 5일(음력 10월 24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천도정(咸川都正) 이억재(李億載)이고, 어머니는 사헌부 감찰(監察) 정치(鄭錙)의 딸이다. 조선의 제3대 왕 태종 이방원의 서자(庶子) 익녕군(益寧君) 이치(李袳)의 4세손이다. 후궁 선빈 안씨에게서 태어난 익녕군은 태종의 여덟째 아들이고, 원경왕후 민씨에게서 태어난 세종대왕의 서제(庶弟)이다.

이순신을 국문할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 영의정(領議政) 겸 도체찰사(都體察使)로 전시의 모든 권한을 가진 국가 비상사태의 직무 총사령관이었다.

‘형을 집행하라.’ 선조의 엄명이 떨어졌다. 순간 국문장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오리 이원익이 일어났다. 선조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하~”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아뢴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한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 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법과 원칙을 고수한 명언이었다.’ 역사학자들의 평이다.

이 판결로 이원익은 이순신을 살려냈다. 그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위기에 처한 조선의 사직을 지켜냈다. 이원익은 이순신과 함께 우리 역사에 길이 빛날 충신 중 충신이다. 나라의 보배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글의 제목 ‘199대 1의 승리자’에서 ‘199대 1’이란 선조의 눈치나 보는 문무백관 199명과 법과 원칙을 고수한 재상 이원익 1명과의 사이에 벌어진 의견 대립을 말한다. 그 대립의 ‘승리자’는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이다.

대쪽 같은 신념의 재상 이원익, 그의 마지막 순간도 아름답다. 1634년 2월 26일(음력 1월 29일) 향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 이원익,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를 위해 부고도 알리지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이나 칭송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

아무리 그래도 영의정을 여섯 차례나 역임한 분의 업적을 후대에 알려야 한다. 그것을 인식한 것인지 그의 13대 후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이승규 교수가 자기 재산을 털어 이원익 기념관 ‘충현박물관’을 건립했다. 그 박물관이 경기도 광명시에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이원익에 대하여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초가집에서 소박하게 살았던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라고…….’ ‘자신을 낮추고 나라와 백성만 떠받드는 공복(公僕)이었다고…….’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자리를 잡게 된다고…….’


배석한 문무백관 200명 중 199명은 이순신을 향하여 ‘죽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선조의 눈치만 살핀 사람이다. 선조 앞에 굽실거리며 아부만 일삼는 사람들이다. 나라의 앞날이나 백성의 삶은 안중에 없고, 자신의 벼슬자리만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런 중에 딱 한 사람, 이원익은 달랐다.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한다. 그는 이순신의 가치를 알고,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았을 것이다.

이런 자를 성경에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하나. 그런 자에게 풍성한 재물을 약속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라 축복한다.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사람은 문무백관 199명은 아니었다. 소신으로 판결한 이원익 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것을 ‘199대 1의 법칙’이라고 명명한다.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는 아첨이나 일삼는 199명보다 소신을 지킬 줄 한 사람이 더 소중하다는 법칙이다. 국민 각자가 그 한 명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라는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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