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민족의 영웅 이순신은 무쇠팔 같은 체력과 바위 같은 정신력을 지닌 인물일 거다. 나는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 ‘한산’을 관람한 의사 중에 ‘이순신을 괴롭히는 질병이 있었다.’고 말한다. 의사들은 난중일기에 드러난 기록을 근거로 이순신을 괴롭히는 질병으로 위장염, 수면 장애와 불면증, 다한증 등을 언급한다.
가장 먼저 위장염을 들었다. 위나 장에 생긴 염증으로 발병하는 질병이다.
나도 각종 질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에는 배앓이를 자주 했다. 설사도 자주 했었다. 언젠가는 하얀 색깔의 거품이 있는 곱똥도 쌌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할머니는 나는 눕혀 놓고 ‘○○이 배는 똥배, 할머니 손은 약손’하며 배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면 신통하게도 배앓이가 나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질에 자주 걸렸다. ‘하루거리’라고 했는데, 하루는 아프고 다음날은 멀쩡한 질병으로 1달 이상 지속되었다. 그 증상이 나타나면 날마다 주사를 맞았다. 하루는 오른쪽 팔에, 다음 날에는 왼쪽 팔에 번갈 주사를 맞았다. 통통 부어오른 팔을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장티푸스에 걸린 일이 있었다. 장질부사라고도 하는 장티푸스는 급성 전염병의 하나이다. 그때는 밥맛이 없었다.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는데 도대체 밥을 먹기 싫었다. 어머니께서 우동(우리 말로는 가락국수)을 시켜 주셨지만 먹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보기도 싫었다.
‘잦은 복통과 토사곽란’을 호소하고, ‘식사를 제대로 못할 정도의 고통에 시달렸다.’
난중일기에 이런 기록도 있다. 에이치플러스(H+) 양지병원 가정의학과 임지선 전문의는 ‘잦은 복통’의 원인은 위장염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염과 장염이 함께 동반하는 위장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로 생기는 신경성 위장염의 비중도 크다.”
“속쓰림, 더부룩함, 메슥거림, 잦은 트림, 구토 증상과 함께 설사가 나타날 수 있고, 위궤양이 급성으로 발현되면 토혈 및 혈변 등의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신경성 위장염은 재발이 쉬워 만성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과로와 스트레스로 잦은 음주까지 겹친다면 증상은 더 악화된다.”
‘신경성 위장염’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1. 신경성 위염은 스트레스성 위염이라는 별명이 있다.
2. 신경성 위염은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되는데, 급성은 증상만 있고 위의 점막에 염증 소견이 나타나지 않은 초기상태이다.
3. 위장염은 위궤양을 초래할 수 있으며, 반대로 먼저 위궤양이 발생한 후 위염이 뒤따라 발병할 수도 있다.
4. 위장염의 예방은 스트레스의 조절이다. 스트레스를 잘 풀고 해소하는 것이다.
또 이순신을 괴롭히는 질병으로 ‘토사곽란’도 있었다고 한다. 식중독의 일종인데, 노로 바이러스, 급성 위장염, 콜레라 등에 의해 발생한다. 위의 내용물이 입을 통하여 갑작스럽고 강력하게 배출되기도 하고, 현기증, 탈수, 오한 등의 증상도 있으며, 묽거나 붉은 변을 보기도 하고, 복부 경련 및 복통, 복부 팽만감 등의 증상이 나타날 나기도 한다.
‘광주 목사가 찾아왔는데 아침 식사 전 술을 마시기 시작해 결국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취했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볼 때, ‘위장병 증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수면 장애와 불면증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난중일기의 내용을 근거로 자율신경실조증의 증세가 있었다고 말한다.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유린하고,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최악의 상황에서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를 수행해야 한다. 그 막중한 임무가 수면장애를 일으키고, 불면증에 시달리게 한다.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 채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면 내분비계와 심혈관, 호흡기, 소화기 등의 신체 기능 조절에 이상이 나타나고 그 기능의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자율신경실조증이 발생한다.
이순신은 엉뚱한 이유로 의금부에 잡혀갔다. 200명의 문무백관이 모인 가운데 심문이 이루어졌는데, 그 심문이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되었다. 이런 그에게 백의종군의 하명이 내려졌다. 설상가상으로 모친의 부고를 받는다. 전쟁 후반부에는 이순신의 아들 면이 일본군에 의하여 살해되기도 했다.
이상의 일들이 이순신에게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가했으며 그 결과 자율신경실조증이 나타나고, 그 증상을 악화시켰을 것이리라고 추측한다. 의사들의 주젱에 충분히 공감한다.
마지막으로 다한증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식은땀과 몸살에 시달렸고, 자고 나면 땀으로 이불이 흥건히 젖었다’는 내용이 난중일기에 나온다. 식은땀은 일시적 현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수면 무호흡증, 갑상선 질환, 불안 장애 등도 의심해 볼 수 있다.
남모르는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는 중에도 이순신은 해전사에 빛나는 백전백승의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다. 이랬던 그가 노량해전에서는 허무하게 전사했다. 왜 그랬을까? 이순신에 대한 ‘선조의 무조건적인 견제(牽制)’와 ‘문관들의 터무니없는 모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질병보다, 훨씬 더 모질게, 이순신을 괴롭혔을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내몰았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