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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의병장 곽재우의 영웅 본색

수필. 임진왜란 제9부

by 수필가 고병균

곽재우는 임진왜란의 전쟁 영웅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영웅 본색이 드러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 고을의 정암진을 왜적이 어떻게 건너겠느냐?”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전쟁에 대비하는 것을 비판한 말이다. 그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자는 곽재우의 첩 장인 이로이다. 그 말에 대하여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비판한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도 왜적을 막지 못했는데 한 줄기 개울을 가지고 이러니 참으로 우습다.”

논란의 그 정암진을 적군이 진짜로 건너지 못하게 막은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로의 사위 곽재우이다. 곽재우의 영웅 본색을 조정에까지 알린 사건이다.


“현풍, 창녕에 있던 왜군의 움직임이 심상찮으며, 대규모의 왜군 선단이 낙동강 하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1592년 음력 7월 1일, 의병장 곽재우가 경상 감사 김수로부터 받은 첩보이다. 이 첩보대로 왜선 70여 척이 의령에 상륙하려 했으나, 곽재우 의병부대의 공격에 막혀 퇴각했다. 싸울 줄 알고 이길 줄 아는 곽재우의 영웅 본색이 여실히 드러난 전투이다.


곽재우는 순왜 공휘겸을 생포하여 처형한다. <난적휘찬>의 기록을 소개한다.

“영산의 양반이었던 공휘겸은 왜란이 발발하자 한양으로 간 다음 집에 편지를 보내 ‘경주 부윤이나 밀양 부사 정도는 될 수 있다.’라고 하며 임금을 두고 불경한 발언을 쏟아내었는데 왜군의 침입으로 혼란한 틈에 역모를 꾀하려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곽재우는 공휘겸이 영산에 돌아옴을 기회로 그를 죽이려 했다. 공휘겸과 동향 사람으로 그와 친분이 있는 훈련 봉사 신초와 접촉하여 유인하게 했다.

‘사람을 모았으니 같이 모의하자.’라는 신초의 꾐에 공휘겸은 순순히 따라왔다가 곽재우 부하들에게 사로잡혔다. 곽재우는 공휘겸의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 참수했다.”

벌 받을 자에게 벌을 주는 공정의 지도자 곽재우의 영웅 본색이 드러난 사건이다.


<난중잡록> 7월 9일 자의 기록을 소개한다. 7월 이후 곽재우 의병은 왜군이 점령한 창녕, 현풍, 영산 등의 탈환 작전에 참여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성을 탈환한 곽재우 특유의 영웅 본색이 드러난다. 어떤 전술을 구사했을까?


“곽재우가 정예 부대 수백 명을 거느리고 현풍에 주둔 중인 적을 유인하려 했다. 그러나 적이 반응하지 않자 곽재우 의병은 밤에 공격했다. 산에 올라가 5개 달린 횃불을 들고 공격했다. 함성과 포성으로 공격했다. 이는 의병의 수가 많은 것처럼 속이기 위한 것인데, 이튿날 왜군이 달아났다. 5일 뒤 창녕의 왜군도 달아났다.”

“영산을 수복할 때 곽재우는 적진이 마주 보이는 산봉우리에 진을 치고 대치했으며, 왜군 기병 1백여 명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는데, 조선군이 만만치 않음을 본 왜군이 다음날 퇴각하여 영산을 수복했다.” 이로써 피 흘리지 않고 현풍 창영 영산을 수복했다.


<송압집>에 실린 학봉 김 선생의 용사사적(鶴峯金先生 龍蛇事蹟)에 곽재우에 관한 일화가 있다. ‘학봉 김 선생’은 초유사 김성일이다. 상 받을 자에게 상을 주어야 병사들의 사기가 오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곽재우는 거병을 시작할 때, 적의 수급 베는 것을 금지했다. ‘전공을 탐내어 참수를 즐기면 해를 입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하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까닭에 곽재우 의병 중에는 적의 머리를 베러는 자도 별로 없었고, 사살한 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첩의 장인 이로가 나서서 ‘본래 의도는 매우 좋으나 종군하여 힘써 싸우는 자 중 누가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수급을 베지 못하게 하면 의병들이 결국 태만해질 것이다.’ 하였다. 곽재우는 그의 충고를 받아 방침을 바꾸었다.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최대한 챙겨주려 노력했다. 이는 전투의 목적을 의병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키면서 전술은 유연하게 펼지는 곽재우만의 영웅 본색이다.

화왕산성 전투에서는 신출귀몰한 전술을 구사하는 곽재우의 영웅 본색이 드러난다. 첫째는 의병의 숫자가 많은 것처럼 꾸민 전술로 적의 사기를 꺾은 일이요, 둘째는 나무 상자 전술이다. 적군은 나무 상자 속에 식량이나 무기가 들었을 거라 짐작하고 열었는데, 벌 떼가 나왔다. 셋째도 나무 상자 전술이다. 왜군은 ‘두 번 당하지 않는다.’고 상자에 불을 질렀는데 이번에는 화약이 폭발하여 적군에게 더 큰 타격을 입혔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곽재우의 영웅 본색을 드러낸 대사가 있다.

“의기 있는 조선의 장정들은 들으시오. 왕실과 조정이 비록 왜적을 피해 북으로 몽진하였다고는 하나 우리마저 손을 놓고 산속으로 숨어든다면 우리의 고향 산천은 왜적들의 땅이 될 것이며, 우리의 자식 또한 잔학무도한 왜놈들의 노예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토록 참혹한 땅에 사느니 나 곽재우와 함께 싸웁시다. 우리 땅을 능욕질 한 왜놈들과 원 없이 싸워보는 것이 어떻겠소!”

읽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심장이 뛴다. 곽재우의 영웅 본색이 드러난다.


왜군에 대한 적개심과 투쟁심이 엄청났던 곽재우, 그러나 그는 무작정 싸우지 않았다. 최대한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놓고 싸웠으며, 신출귀몰한 전술을 구사했다. 실로 곽재우는 영웅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낸 의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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