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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고병균 Dec 02. 2023

[9-5]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 곽재우는 임진왜란의 영웅이다. 학자들은 완벽에 가까운 게릴라전, 유격전을 펼쳤던 지휘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명량 해전의 이순신’, ‘진주대첩의 김시민’, ‘행주대첩의 권율’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정암진 전투의 곽재우’ 이렇게 말하지 않고 ‘홍의 장군(紅衣將軍) 곽재우’라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홍의 장군(紅衣將軍) 곽재우에서 홍의는 그의 아버지 곽월이 명나라에 갔을 때 가져온 붉은 비단으로 만든 옷이다. <난중잡록>에서는 ‘붉은 생초(紅綃)에 안을 댄 옷을 착용하고 당상관(堂上官)의 입식(笠飾 장식)을 갖춘 갓을 쓰고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을 칭했다.’라고 적었다. 철릭이란 무관이 입던 공복(公服)의 하나로 직령(直領)으로서,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큰 소매가 달렸다. 그리고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은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을 입은 장군이란 뜻이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이야기는 의성 출신 의병장 신흘이 남긴 <난적휘찬(亂蹟彙撰)>에 정암진 전투와 함께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전라 순검사라고 칭하는 왜적이 ‘정암진을 건너야겠다.’라는 격문을 돌렸는데, 이르기를 ‘맞이하는 자는 안전하고, 항거하는 자는 죽으리라.’라고 씌어 있었다. 


이에 곽재우가 분연히 일어나 꾸짖기를 ‘감히 말하노니, 적을 맞이하는 자는 죽으리라.’ 하고, ‘천자께서 네놈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하려 한다는 사실을 들으시고 미리 홍의장군을 보내어 정예병을 거느리고 도중에 습격하도록 하셨노라.’ 하는 내용의 격서를 적에게 보냈다. 그리고 곽재우는 즉시 실천에 옮겼다. 


한 사람에게 붉은 옷을 입혀 산 위에서 내달리게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 같은 색깔의 옷을 입혀 말을 타고 산 위로 치달리도록 하여, 서로 바라보이는 땅을 달리게 하였더니 능히 산골짜기를 날아 넘는 듯했다. 저쪽에서 사라지면 이쪽에서 나타나고, 이쪽에서 사라지면 저쪽에서 나타나는 왕래 동작이 깜짝할 사이인지라, 왜적이 이상하게 여기다가 마침내 흩어져 강을 건너지 못했다.     


1592년 10월, 진주대첩에 원군으로 참여했을 때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곽재우는 직접 교전하지 않고 심리전을 펼쳤다. 심대승에게 명하여 산에 올라 횃불을 밝히고 포성을 울리며 ‘전라 의병 1만과 홍의장군이 내일 도착해 왜군과 싸울 것’이라 소리치게 했다. 곽재우만이 펼칠 수 있는 전술이다.     


<기재사초> 임진일록 4권에도 의병장 곽재우와 정암진 전투를 언급했다.

곽재우(郭再祐)는 의령(宜寧) 사람으로 승지 곽월(郭越)의 아들이다. 일찍이 글을 업으로 하였는데, 적이 의령 근처로 온다는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 그들을 회유하여 이르기를, ‘적이 이미 육박해 왔으니, 우리의 부모 처자가 적에게 붙잡히게 될 것이오. 우리 마을에서 젊은 나이로 싸울 만한 자가 수백 명이 됩니다. 만일 마음을 같이하여 정진(鼎津)을 근거지로 삼아 지키면 마을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리겠소.’ 하니 여러 사람이 호응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정진(鼎津)’은 정암진을 말하는 듯하다.

군대를 나룻가 언덕 위에 매복케 하였다. 또 호각 부는 자를 많이 구해서 붉은 옷을 입히고 산꼭대기로 올라가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들을 사면에 벌여 두고, 적이 이르면 일제히 호각 소리를 내고 언덕 뒤의 복병은 활을 마구 쏘기도 했다. 적은 이것을 보고 놀라 흩어졌다. 

적의 목 백여 급을 베었고, 적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정만록>에서도 정암진 전투의 전황과 함께 그 이야기가 나온다.

곽재우는 장사 10여 명을 뽑아 자신과 똑같이 붉은 옷을 입히고 백마를 태워 매복시킨 다음 스스로 미끼가 되어 왜군을 유인했다. 10여 리쯤 왜군을 유인한 뒤 화살로 신호를 보내자 곽재우와 같은 복장을 한 장사 10여 명이 불시에 튀어나왔다. 왜군이 혼란에 빠지자 숲에서 강노를 쏘아 왜군을 공격했다.


왜군은 강기슭으로 달아났는데 이는 곽재우가 의도한 것으로 물이 잔잔한 곳에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다. 그 장애물에 막힌 왜군을 급습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상의 자료에서 홍의장군의 이야기가 많이 언급된다. 그렇지만 왜군이 도하 지점을 골라 세워둔 푯말을 의병군이 위치를 바꿔 늪으로 유인했다는 내용은 없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정암진 전투에서 펼친 전술은 신출귀몰했다. 그 전투에서 조선군의 ‘지휘관은 곽재우, 병력은 의병 50명’, 왜군의 ‘지휘관은 안코쿠지 에케이, 병력은 선봉 2,000명’이라 기술하고 있다. 전투 결과 역시 ‘곽재우 의병이 승리’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사망자나 부상자가 얼마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한편 생각해 보면 50명의 의병으로 2천 명의 왜군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승리할 수 있을까? 곽재우가 펼친 심리전, 기만전술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한 필승 전략이었다. 그만이 펼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작전이었다. 


만약 곽재우가 펼친 기만전술이 어설펐다면 어찌 되었을까? 금방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적들이 놀라 물러갔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의병장 곽재우의 지도력이 뛰어났음을 말해준다. 그의 지시사항을 의병들이 충실하고 엄격하게 따랐음을 의미한다. 이런 지도자가 건강하고 유능한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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