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쳐들어 왔을 때, 민심이 이반된 조선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의 동조로 일본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점령하였고 한양까지 진출했다. 이랬던 자를 순왜(順倭)라 하고, 역으로 조선에 부역한 일본인은 항왜라 부른다.
순왜 중 대표적인 인물은 정해왜변 때 일본군의 길잡이로 활동한 사을화동이다. 정해왜변(丁亥倭變)은 1587년 음력 2월에 일어났다. 임진왜란 5년 전이다. 전라도 남해안을 침범한 왜구로 인하여 녹도권관 이대원이 전사하고 가리포 첨사 이필은 눈에 화살을 맞았다. 조정에서는 신립과 변협을 방어사로, 김명원을 전라도 순찰사로 삼아 방어하게 했다. ‘녹도권관’를 ‘녹도 만호’라 하는 자료가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순왜에 관한 기록이 있다.
‘사천해전에서 왜군의 선단에서 조총을 쏘는 소총수 중에 조선인도 있었다.’
1592년 9월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진격해 왔을 때 함경도에는 순왜가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경인이다. 그는 전주에 살다가 회령으로 유배되었고, 나중에 회령부 아전으로 들어가 재산을 모았던 인물이다.
당시 유배형에는 죄의 질에 따라 유배지를 3가지로 나뉜다. 가벼운 죄인에게는 천리 정도, 조금 무거운 죄인에게는 2천 5백리 정도, 가장 무거운 죄인에게는 삼천리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 유배를 보냈다. 국경인의 경우 전주에서 회령으로 유배되었으니 세 번째 유형에 해당된다. 그의 죄질이 지극히 나빴음을 의미한다.
그는 ‘회령부의 아전’으로 들어갔다.
‘아전’이란 중앙이나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를 말하며, 경아전(京衙前)과 외아전(外衙前)으로 구분된다. 경아전(京衙前)은 중앙 관청에 근무하는 아전으로 녹사(錄事)·서리(書吏)·조례(皁隷)·나장(羅將)·차비군(差備軍) 등이 있다. 외아전은 지방 관서에서 근무하는 아전으로 향리(鄕吏)와 가리(假吏)로 나누어진다. 향리는 그 지방 출신의 아전이고, 가리는 다른 지방 출신의 아전이다. 국경인은 가리에 속한다.
지방 관청에는 수령이 근무하는 정청(正廳)이 있고, 그 앞에 아전이 근무하는 이방청(吏房廳)을 비롯한 육방청(六房廳)이 있었다. 육방이란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등을 말한다.
아전은 양반으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았다. 이런 처지에서도 국경인은 재산을 모았다고 하니 상당한 실력가였음이 확실하다.
국경인은 조정에 대하여 상당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들을 달래어 나라에 충성하도록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선조 역시 그런 인물이 못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경인의 마음에 불을 지른 자가 있었다. 바로 두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다.
임해군은 선조의 맏아들로 당시 21세였다. 선조는 임해군에게 영부사 김귀영과 칠계군 윤탁연을 수행원으로 붙여 주면서 함경도로 파견했다. 수행원 윤탁연은 북관대첩을 승리로 이끈 의병장 정문부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은 지다.
순화군은 선조의 여섯째 아들로 당시 13세였다. 한준과 황정욱, 이개 등을 딸려 강원도 지방으로 내보냈다. 수행원 황정 욱은 순화군의 장인이다.
선조가 두 왕자를 이렇게 조치한 이유는 뭘까? 망나니 같은 임해군과 순화군이 몽진하는 중에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하여 미리 격리한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또 어떤 학자는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 다섯째 아들 정원군, 여섯째 아들 순화군 등을 악당 3인방이라고 말한다. 그 임해군에 관한 기록이 실록에 있다.
‘그에게서 왕자의 품격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민간인을 함부로 구타하고 살해했으며 토지와 노비를 강탈하는 등 왈패 짓을 일삼았으니 평소 효성이 지극하고 학업에 열중했던 광해군과는 친형제지간이지만 여러모로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임해군은 왕의 명을 수행하기보다 민가를 약탈하고 주민을 살해하는 등 온갖 행패를 부렸다. 주민들로부터 반감을 샀다. 이에 관한 기록이 《선조실록》에 있다.
‘왕자 일행은 고을에서 접대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찍을 휘둘렀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소동이 벌어져 난리가 난 것만 같았다.’
강원도로 갔던 순화군도 왜군을 피해 함경도 경성으로 갔다. 거기서 임해군을 만나 똑같이 행패를 부렸다. 왕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수행원들이 왕자들을 핑계로 삼아 행패를 조장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함경도의 순왜는 국경인 외에 그의 삼촌 국세필 김수량 정말수 등이 있었다. 이들을 두둔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저들의 마음에 불만을 품게 한 자는 선조이고, 저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자는 망나니 같은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이다. 저들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