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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고병균 Jul 03. 2022

[11-2] 권력에 묻힌 진실

수필. 임진왜란

1604년 고위관료였던 유희서가 포천으로 휴가를 갔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성군(儒城君) 유희서(柳熙緖)의 벼슬은 승정원(承政院) 6명의 승지 가운데 으뜸인 도승지(都承旨)로 정3품이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에 비유되는 실세였다. 이 사건을 담당한 자는 임진왜란 후 혼란한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은 포도대장 변양걸이다.      


변양걸은 1572년(선조 5) 무과에 급제한 뒤, 용양위부장(龍驤衛將)· 벽동군수 ·인산진첨절제사(麟山鎭僉節制使)· 강계부사 등을 지냈다. 1583년 여진족이 경원부(慶源府)에 침입했을 때 길주목사 겸 조방장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부하들로부터 존경받는 것을 시기한 주장(主將)의 무고로 서변(西邊)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또 북변(北邊)의 여진족 침입을 방어한 공으로 순천부사가 되었고, 1591년에는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뱃길로 행재소에 군량을 조달하는 한편, 창의사 김천일(金千鎰)과 협력해 강화도를 방어하고, 조정의 명령이 충청도와 전라도에 전달되도록 하였다. 이어 충청도병마절도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594년 정월에 일어난 송유진의 난을 평정하였고, 1597년 경기우도방어사(京畿右道防禦使)가 되었으며, 1599년에는 훈련대장이 되었으나 문신·언관들의 탄핵을 받고 사직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들 가운데 조선에 남아 있던 자들이 난을 일으키자 그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훈련대장에 복직되었다.     


사건을 조사한 결과 유희서의 애첩과 임해군(臨海君)이 관련된 정황이 드러났다. 포도대장 변양걸은 최대의 난관에 봉착했다. 왕의 아들이 관련되어 있으니 덮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진실을 밝혀야 할까?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변양걸은 용의자를 모두 체포했다. 그런데 또 사건이 발생했다. 잡혀있던 4명의 용의자가 포도청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변양걸은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사건의 용의자는 임해군 이진이었다. 평소 유희서의 애첩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가 그녀를 간통하고 그녀를 아예 빼앗기 위해 사람을 시켜 살해하도록 사주(使嗾)를 했다. 남을 부추겨 좋지 않은 일을 하도록 사주(使嗾)한 사람은 임해군, 그가 바로 유희서를 죽인 배후의 인물이었다.


사건을 파 해친 포도대장 변양걸은 표창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도리어 문초를 당하고, 파직을 당했으며, 급기야 유배형을 받았다. 한편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선 유희서의 아들에게 그 죄가 덮어 씌워졌다. 유희서의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오늘날에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진실을 밝히라고 외친다. 그러나 진실은 권력 앞에서 맥을 못 춘다. 조선시대의 절대 권력자 선조 앞에서 진실을 밝힐 사람은 없다. 갖가지 죄목을 들어가며 수많은 사람을 탄핵했던 대간들조차도 상의 비답이 준엄하다 하여 눈치만 보고 있었다. 대간이라고 헤도 옳은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학자는 ‘권력의 크기가 바로 진실’이라고 한다. 진실은 권력을 이기지 못하고 묻혀버린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진실을 숨기고 그 권력으로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진실을 말한 변양걸은 죄인이 되었다. 그런 세상은 오늘날에도 진행형이라고 주장한다. 천암함 사건과 세월호 사고를 들먹이며 그렇게 말한다.


선조는 임해군을 탄핵했던 신하들까지도 파직시키고 유배를 보냈다. 자기 아들 임해군의 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것과 달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들을 처리했다. 임진왜란 당시 육상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자 신각을 처리할 때에도 그랬다. 역시 권력의 크기가 진실임을 말해준다.


유희서 사건을 보면 정말 분통이 터진다. 중국 드라마 ‘포청천’이 그리워진다. 진실을 정확하게 파헤치고, 그것을 어김없이 도려내는 포청천, 그와 같은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중에 재상 김덕영에 의하여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권력이 진실을 덮어도 세월을 이기지는 못한다. 절대 권력자 선조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유희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이후 선조와 신하들 사이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두 달 넘게 정사를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권력으로 진실을 묻으려 했던 선조, 그가 자초한 일이다.      

매사에 공정하지 않은 왕 선조가 다스린 나라 조선에서 평화란 았을 수 없다. 오로지 당파 싸움만 있다.

아무리 강한 권력으로도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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