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파주 화석정에서

수필. 임진왜란 제10부

by 수필가 고병균

파주 화석정(花石亭)에 왔다. 딸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왔다. 집에서의 거리는 불과 60Km인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화석정은 율곡 선생의 5대조께서 지은 정자인데, 경기도가 지정한 유형문화재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구조의 건축물이다.

거기에는 율곡 선생이 8세 때 지은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 실력이 부족하여 한문 연구가인 대명 강상구 님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이 시는 화석정 풍경을 노래한 시였다. 강상구 님의 해석에 내가 본 화석정 풍경을 간략하게 덧붙여 소개한다.


林亭秋已晚(임정추이만) / 숲 속 정자에 가을 이미 저물어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 시인 문사의 정취는 끝이 없는데

정자 주변의 가을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12월이다

정자 바로 옆에 수령 560년이라는 느티나무가 있다. 둘레는 4.5m 수고는 12m나 되는 나무다. 화석정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다.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 멀리 물은 잇달아 하늘빛이고

霸楓向日紅(패풍향일홍) / 서리 맞은 단풍은 날로 붉어가네.

정자 바로 아래로 임진강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들어온 강물이 화석정 바로 앞을 지나 왼쪽으로 흘러간다. 당시에도 단풍은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강변을 따라 왕복 4차선 도로가 길게 이어진 것이다. 그 위로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질주한다. 그 풍경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 산은 둥근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었는가.

어린 시절 팔월 추석날이나 정월 대보름날에는 둥근달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폈던 일이 생각난다.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 찧는 토끼 이야기를 들려주신 할머니도 생각난다.

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땀을 식혀주는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이 아니다. 얼굴을 스치는 12월의 찬바람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에는 다소 아쉽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 저물어가는 구름 속에 소리가 끊겼네.

둥근달이 둥실 떠 있는 가을날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기러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때 끼룩끼룩 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몸의 색깔이 온통 까만 새다. 부리가 길고 뾰쪽하며 몸집도 상당히 크다. 커다란 날개를 펴고 정자 주위를 빙 돌더니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변방의 기러기였을까? 나에게는 생소한 새다.


8세의 어린애가 지은 시라 하기에 차원이 다르다. 그저 놀랍기만 하다.


“화석정에 기름칠하라.”

말년의 율곡 선생은 제자들에게 지시한 말이다. 선생의 마음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해졌는지 제자들은 그 지시사항을 곧이곧대로 실천했다. 율곡 선생이 세상을 하직한 1584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했다.

율곡 선생은 왜 이런 일을 지시했을까? 그 이유는 8년이 지난 1592년, 파천한 선조가 임진나루에 도착한 그날에 밤에 밝혀졌다.

선조 일행이 임진나루에 도착했을 때는 음력 5월 초하룻날 밤이다. 임진나루는 칠흑같이 어두운데 선조는 임진강을 건너야 한다. 이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화석정에 불을 지른 것이다. 기름을 칠했기 때문에 불이 쉽게 붙었고, 활활 타오를 수 있었다. 그 불빛은 임진나루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덕분에 선조는 임진강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다. 율곡 선생은 죽어서도 선조에게 충성한 셈이다.


율곡 이이는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며,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군사를 기르는 것은 백성을 기르는 것과 같으니 백성의 삶이 안정되어야 군사도 강해진다.”

이이의 제자인 김장생이 1597년 편찬한 [율곡행장]에 다음의 기록이 있다.

경연에서 청하기를 ‘10만의 군병을 미리 길러 위급한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지나지 않아 장차 토붕와해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선조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화의 시기’라고 변명하며 묵살했다. 그 결과 율곡의 예언대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선은 토붕 와해의 화를 입었다..

국방력 강화는 민생 안정과 직결된다는 애민정신, 나라의 앞날을 예견하는 통찰력과 선견지명(先見之明), 율곡 이이 앞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율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대가(代價)는 혹독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했다. 1910년, 고종은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겨주었고, 애꿎은 백성들만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 기간이 무려 35년이다.


그런데 알았다. 화석정에 와서 알았다.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율곡 이이와 같은 충신들이 있었다는 것을 …….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며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지도자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화석정에 기름을 칠하는 민초들이 다수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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