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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Jan 14. 2023

이중 보온 스텐 밥그릇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준비하신 설날 차례음식을 용(남편)과 함께 상에 올리고 있었다.

용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시할아버지,

25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께 올리는 상차림이다.


대추. 감. 사과. 강정. 포. 나물. 전. 떡. 생선찜 순조롭게 상차림이 끝나는가 보다. 강릉지역에서는 생선종류를 통째 쪄서 쌓아 올리기도 한.



시할머니께서 금테가 둘러져 보기에 예스러운 사기그릇에 밥을 담아 주시길래,

쟁반에 받쳐 들고 거의 다 차려진 상에

밥그릇을 들어 내려놓다.


순간 ". 뜨거워. "

와장창 창. 쨍그랑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고풍스러움을 가만히 뽐냈던 사기밥그릇은 그렇게 두 동강이 났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밥그릇의 사기 뚜껑이 반으로 나눠져 버린 .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시댁식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이다.

"괜찮아? 봐봐, 내가 할게."  용이 가까이 다가와 본인이 뒷일을 감당하겠다고 이야기한다.


너무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를 아끼고 예뻐해 주시는 든든한 시할머니와 시어머니이시기에 더욱 죄송했다.


더군다나 내가 내려놓으면서 깨트려 버린 그 밥그릇은 

형님이 결혼하면서 준비했 예단그릇이었으니까,


조심스럽지 못하고 덜렁거리는 며느리는 얼굴도 뵙지 못한 시아버지의 밥그릇 뚜껑을 그렇게 설날아침 경솔하게 깨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모로 면목이 없다.

시할머니는 말씀이 없으셨고 ,시어머니는 "괜찮다. 네가 안 다쳤으면 됐다."말씀하신다.


 명절제사 끝난 후, 응열(나의 아버지)과 미화(나의 엄마)가 있는 으로 다.

"아버지, 아까 차례상 차리는데 밥그릇 옮기다가 너무 뜨거워 떨어뜨려서 깨트렸어."


순간 응열도 시할머니처럼  말이 없지는데,

단지 그의 주름진 이마에 가만히 손등을 짚어 가져다 대고 있을  (응열의 이런 모습은 몹시 고민이 깊어 상심했을 때 나오는 행 ).


 이후 아마 9년째일 테다.

시댁의 차례상은 이중보온 대단히 두툼한 스텐 밥그릇으로  차려지고 있다.


어느덧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시할머니는 올해로 96세가 되다.


여전히 조심성이 없는 손주며느리, 

그저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이야기 들어드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릴 뿐다.

오늘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본다.

"할머니, 영혜예요. 만나서 재밌는 이야기 많이 요.

삼척 드라이브 모시고 갈게요. 그리고  맛있는 거 많이 먹으러 가요. 내려가서 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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