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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Feb 13. 2023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길고 탐스러운 생머리를 곱게 매만지며 날씬하게 쭉뻗은 옷매무새로 서있다. 

"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나에게 푹 빠진 채 엘리베이터에서 온갖 예쁜 척을 하며, 울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다.


하얀 블라우스에 체크무늬 조끼와 동일한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가느다란 목에는 자줏빛의 리본이 곱게 메어져 있다. 등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있는데 , 틈림없는 18세 청순한 여고생의 모습이다. ( 확인 할길 없지만 분명 많이 들었던 수식어다)


그런데 어쩐지 아까부터 저기 꼬맹이가 나를 보 킥킥대며 웃는 거 같다. 기분이 왠지 언짢았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왜 이토록 느리게 올라가는 거 같은지,

"아줌마. 아줌마?"


엘리베이터에는  꼬맹이와 청순한 여고생인  나뿐이다.

절대 쳐다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 꼬맹이가 내교복 블라우스 옷깃을 잡고 흔들며 되묻는다.

"아줌마 10층 살아요? 내 친구도 10층 사는데."

 정말 끝까지 모른 척 이를 악물고 참았다. 청순한 여학생은 이까짓 일로 본성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휴,10층이다. 빛의 속도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내 등뒤로 꼬맹이 비수를 다시 한번 날린다.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미화(나의 엄마)에게 방금 전의 받은 모욕을 쏟아낸다.

그러나 미화는 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마냥 그 꼬맹이가 귀여운 듯 웃다.

"아 , 진짜 엄마. 나 지금 엄청 화났다고! 웃지 마. 엄마는 일부러 그 꼬맹이가 그러는데 , 그게 귀여울 일이야? 대체 누구 편이야 엄마!"

괜히 미화에게 뾰족하게 화살을 아보지만 , 이 상황이 재밌다며 연신 웃는다.


"저 짜식은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 모양이야? 부모님이 어떤 사람이길래 애를 저렇게 키운 거야."

미화는 조금 전과는 사뭇 다르게 진지해지는 얼굴이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초등학생 꼬마가 장난 좀 친 거로 그렇게 까지 말하면 되겠냐, 또 그애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는 거고 남의 이야기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미화랑 더 이상 말하고 싶지가 않아서 퉁퉁 거리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키우다 보니  어느새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의 부모가 되었다.

그런데 자식을 키우는 것이 그야말로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물론 그 꼬맹이의 부모님들이 누구지도 모르고 , 그날 이후 가정교육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부모가 되어 그때를 돌이켜보면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남의 잘못을 드러내 말하는 것은  이렇게 쉽다.

역시 남의 말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니까,

남의 말을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쪽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아이를 키워가면서 조금 더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거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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