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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Feb 12. 2023

그 여름의 쪽파숙회


어릴 때 미화(나의 엄마)는 집 앞의  마당에 아주 작게  텃밭을 일구어 갖가지 씨앗을 뿌리거나 어떨 때는 채소모종들을 심었다.

그 종류들을 떠올려 보자면 ,

강낭콩, 애호박, 청양고추, 깻잎, 상추, 가지, 쪽파, 대파 이랬던 것으로 기억난다.


작은 초등학생 어린이의 눈에 보아도   몇 평 채 되지 않을 공간이었음은 틀림이 없는데 ,

어쩌면 이렇게 갖가지 채소들을 키워 냈는지 새삼 미화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좋 싫든 우리 자매는 채소가 풍성해지는 계절이 되면 마음껏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

다행히 우리는 편식을 거의 하지 않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도에 시골에서 자라으니 만큼.  음식을 따져가며 입맛대로 먹을 수 모양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름이면 풋내 나는 애호박이 듬뿍 들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으레 칼칼한 청양고추를 얇게 송송 썰어 은근한 불에서  보글보글  끓여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쪽파숙회를 자주 만들어 줬었는데 , 미화의 쪽파숙회에는 레시피가 있다.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에 몽당한 길이로 손질한 햄과 게맛살이 추가된다는 것.

보통의 쪽파숙회가 그러하듯 , 우리 초고추장에 새콤하게 찍어서 먹는 것을 꽤나 좋아했었다.


"얘들아 저녁 먹자."

골목어귀까지 우리를 부르는 미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면 비석 치기를 하던 판판하고 얇으면서 좀 넓은 돌멩이를 미련 없이 땅바닥에 내던지고 냉큼 집으로 뛰어 들어갔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편식을 하지 않아 반찬투정이라는 것은 해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물론 건 미화의 말도 들어봐야 하는 거겠지만, 아무래도 번거로워지기 전에 이쯤에서 얼른 그만두기로 해야겠다.

어쨌든 별 다를 것 없이 비슷한 밥상이었으나 무척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음, 아무래도 쪽파숙회이다.

얼마 전에도 쪽파를 사다가 해 먹어야지 생각만 하면서 늦장을 부렸었다. 결국 그러다 끝이 시들해지고 누렇게 뜨기 시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더 늦기 전에 숙회를 만들기로 했다.


쪽파를 손질한 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그리고 냄비에 보글보글 물이 끓으면 하얀 머리 부분부터 넣어 데쳐준다. 잠시뒤에 데친 쪽파를 찬물에 한번 식혀 물기를 꼭 짜준다.

그리고 마무리는 미화의 레시피대로 따라 하기. 몽당썰은 햄과 역시 몽당한 게맛살에 쪽파의 하얀 머리 부분을 잡고 돌돌돌 말아 주면 끝이다. 이제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열 살 둘째 승이가 특별히 주문한다.

"엄마, 나도 그거 먹어볼래. 내 거는  시금치처럼 깨랑 소금을 넣고 고소하게 만들어줘."


입맛 까다롭고 예민한 큰아들을 키우느라 단련이 된 나는  굳이 먹기 싫다는 음식을 강요하는 데에 힘을 빼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한번 먹어볼래?

물음 끝에 싫다면 그걸로 끝내고 여간해서는 다시 권하지 않는데,


꼬맹이의 특별주문에 신이 났다.

하지만 이미 모든 쪽파를 돌돌돌 말아버렸다. 그러니 어쩔 수 없 다시 풀 시금치처럼 말아야 되나 싶었다. 그렇지만 이내 기발하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  그리고 소금참기름을 위에다가 조금씩 발라주면 되겠는걸,

(애써 같은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굳이 피곤해지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득 궁금해다.

내 아이들에게 가끔씩 생각날 음식은 뭐가 될는지, 뭐 별거 없데도 어쩔 수 지만 말이다.

우리가 함께 먹은 끼니가 매번 맛있고 즐거울 수는  없었겠지만 행복한 탁도 있었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  이미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나여름. 미화 씨의 쪽파숙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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