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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Mar 17. 2023

인라인 스케이트에 마음을 담아보려 한다


몇 해 전 해가 유난한 주말이었다.

과연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고,

우리 식구는 놀이터에 보호헬맷을 비롯하여 손바닥, 무릎, 팔꿈치 보호대를 챙겨 나가기로 한다.


아이들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어보는 첫날이기도 하다.

이날을 위하여 얼마 전 유튜브로 초보 인라인스케이트 강습 편과 안전교육영상까지 꼼꼼하게 봐두었다.


 스케이트를 신기부터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는 패기 하나만큼은 넘쳤다.

사뭇 비장한 눈빛으로 아이 둘을 놀이터 의자에서 일으켜 세운 후,

걸음마부터 시작하여 넘어지는 요령까지 야무지게 알려주는 참이다.



한편 옆에서 용(남편)이 눈이 벌게져 그렁그렁해 허리가 반접힌 채로 웃고 있다.

그래 어쩌면 이 상황에서 웃음을 참아내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을 테지 ,


사실 나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어보지도 심지어 스쳐본 적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동신경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타고나길 둔하기 그지없다.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 5등급은 어렵지 않게 척척 받아냈던 학생이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체크를 해주며 속도 있게 체력장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내 옆의 친구는 나를 얼마나 쉽게 보았냐면

"오래 매달리기에서는 영혜가 떨어지면 그땐 나도 내려올 거야. 설마 쟤보다는 1초 정도 더 매달려있을 테니까."

그 말에 나는 그저  영혼 없이  건조한 말로 그러라는 답을 해주었다.



"앗."  친구는 철봉에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철퍼덕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려왔다. 그 순간 친구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음이 느껴진다.

나란 사람은 뭐든 가만 버티고 있는 일.

 그것 하나만큼은  대체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해내는 치명적 기질을 갖고 있다는 점을 그 애는 몰랐을 터. 그러니 럴만했을 테지.


  이렇듯 학창 시절 친하지 않았던 같은 반 친구들까지 나란 사람이 운동에  영 재능이 없는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정도였으니 운동신경에 대해서는 더 보탤 필요 없을듯하다.


때문에 인라인 스케이트 이론을 미리 익혀놨던 것이다.

몸으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가르쳐 줄 수는 없겠지만 , 내 입은 성실하게 스케이트 초보 기술쯤은 전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금 전보다 제법 허리가 꼿꼿이 펴진 용이 우리를 쳐다보는데 , 내 말을 듣고는 또다시 무너지려 하는 참이다.

"아. 얘들아 다리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고 엄마가 이야기했잖아."

"얘들아. 브이자 모양을 만들어야 되는 거야."

"너네  설명해 줬는데 그걸 못하냐? 답답하네."


다행히 큰아들 석이는 금세 스케이트가 몸에 익었는지 놀이터를 한 바퀴, 두 바퀴 여러 번 돌면서 여유롭다.

그 틈에 용은 놀이터 구석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스케이트보드를 집어 들고 왔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부성애 지극한 용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신나게 놀아준다.

이제는 아이들이 조금 창피하다며 그만 놀자고 아빠를 타이르듯 이야기한다. 그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니, 어쩌면 그는  아이들보다 눈높이가 그높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이렇듯 나는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소수의 사람들과 있을 때면 말이 퍽 많아진다.

편안하고 부담 없는 분위기에 제법 오래 어울려 지내는 친구들이나 가족들 곁에서는 유독 힘이 나며 이야기꾼이 되곤 한다.


그런데 말이 많아지다 보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을지 모른다.  과연  누구에게는 무례했던 적이 없었을까, 혹은 내 뜻대로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가 있지는 않았을까, 역시 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만히 해본다.


내가 아닌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의 마음을 담기 위해 오늘도 천천히  글을 적어 내린다.

봄바람이 제법 따뜻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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