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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Mar 29. 2023

눈이 부시게 빛나던 그  여름


쏟아지는 햇살이 눈이 부시게 빛던 여름, 첫 번째 방학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으니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하한껏 부푼 생각으로 어느 리조트 한식당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을 터였다.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면 왕복으로 세 시간 거리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직원기숙사에서 지내기로 한다. 처음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니 긴장이 되어 떨리기도 했고, 어떠  자유로움에 기대되어 즐겁기도 했다.


첫 출근 날. 일단 테이블 번호를 익히는 것과 냅킨을 접는 법.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 방법과 또한 음식을 서빙하는 법을 최대한 익혀 보려 애를 써본다.

첫 주문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어쩐지 기억이 나지 않아 조금 유감스럽다.


하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일이 있다.

주문을 척척 받고 준비된 음식을 안정감 있게 손님상으로 서빙하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쯤.


어느 손님 한분이 식사를 하고 가신 테이블을 동갑내기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정리한다.

그런데 그분은 식사를 거의 하지 않으셨고, 차려진 반찬 또한 드시지 않은 듯했다.

"어 이건 무슨 반찬일까? 맛있을 거 같아. 그렇지?"

마침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때라 식당 내에는 손님이 없었고, 지배인과 주임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궁금하니까 먹어보자."


지금 생각하면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먹다간 자리에 남겨진 반찬을 집어 먹는다는 것.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모하고 끔찍한 일이다.

어쨌든 한 젓가락씩 맛을 본 게 시작이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수군거림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너희 둘. 낮에 손님상에 있던 반찬 집어 먹었다면서! 그걸 왜 먹고 있냐. 창피하지도 않아? 거지들처럼. 니들이 거지냐?"

지배인의 지나친 나무람에 모멸감을 느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끝내 지배인을 탓하며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는 참이다.


데 시끄러워진 소리가 주방에 까지 들렸나 보다.

 나를 예뻐해 주시는 총주방장께서 어쩐 일로 식당 안까지 발길을 하신다.

"지배인, 그만하시죠. 애들이 아직 어리고 그럴 수도 있을 때지요. 그쯤 하시면 되셨습니다."

지배인은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듯한 얼굴로 다시 한번 주의를 주고 이내 자리를 떠났다.



총주방장께서는 풀이 죽어 있는 나와 남자아르바이트생을 주방으로 불러들이신다.

" 얘들아, 그게 그렇게 맛있었어? 그건 탕평채라는 거야. 앞으로는 먹고 싶으면 말해. 그리고 아직 저녁 못 먹었지? 곱창전골 끓여 줄게. 이따 먹고 퇴근해라. 괜찮아."

총 주방장님의 곱창전골은 더없이 따뜻했다.


어느덧 여름방학이 끝났고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생활도 마무리되었다.

그때 총 주방장님은 나에게 별명을 붙여주셨는데, 하얀 보름달.

내가 주방으로 들어서면 그렇게 하얀 보름달이 뜬 거 같다며 웃으셨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더 많이 줄 수 있어 행복한 어른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한 환한 보름달같은 마음으로  차가운 세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한 영향을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과연 나는 그럴만한 어른이 되었을까,

눈이 부시던 그 여름. 그곳엔 스무 살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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