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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Apr 28. 2023

미안함에 대한 나의 천성

  활꽃게의 계절


찬바람이 불어올 즈음이었던가 , 이맘때였던가  , 활꽃게 광고를 담은 마트전단지를 보게 됐다. 꽃게가 제철이긴 했나 보다. 티브이에서도 옆집, 앞집에서도 꽃게찜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다.

몇 마리쯤이면 되려나, 승이가 게를 좋아하니까 좀 넉넉히 담아볼까 ,


"딩동. 현관 앞에 두고 갑니다."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 배달된 박스만  얼른 집어 들였다. 뒤이어 피식 웃음이 났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내 집 현관문 여는 것도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 있는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솥은 미리 준비해 뒀다. 꽃게의 크기가 얼만큼일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되도록 큰솥을 꺼내뒀던 터.

그러는 동안 잊지 않고 박스를 노려봤다.

나는 활꽃게를 시키지 않았던가, 혹시 박스를 열었을 때 꽃게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어쩔 텐가. 양눈을 부라리며 매섭게 쏘아보기라도 한다면 ,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키워가다 보니 어느새 두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어쨌든 해보자. 설마 할 수 있겠지, 괜히 박스끄트머리를  살짝 잡았다 놨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 정도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최면을 걸어본다.


그래도 어쩐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  좀처럼 끼지 않 시뻘건 고무장갑을 꺼내 들어 끼었다.

오른손으로는 실리콘 집게를 꼭 잡고 있고,  왼손으로 박스 한쪽을 슬쩍 젖혀본다.

기절들을 한 건지 별다른 미동이 없다. 조용히 있어 주니 눈물 나게 다행이다. 꽃게 위로는 소복하게 톱밥이 깔려있다.  그것들을 씻어내야겠다는 생각뿐, 일단 한 마리 한 마리 집게로 잡아 들어 싱크대 개수대 안으로  넣을 참이다.


 겁이 나서  잡히는 대로 꽃게들을 집어던지듯 개수대로 넣어버렸다. 그런데도 이미  죽은 건지 움직임이 없다.  움직임 없는 게 들이 반복되자 슬슬 안심이 되기도 했다.


자는 이미 열어졌고 , 난 톱밥 범벅이 된 꽃게들을 기어코 씻어야만 한다. 씻어진 꽃게들은 개수대 선반에 아무렇게 걸쳐둔다.

 앗,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모를 꽃게들 틈에 용케도 다리를 세차게 퍼덕이며 살아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게가 있다.


하나  번의 반복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 숨을 들이쉬며 실리콘집게로 한쪽 게다리를 힘껏 잡아 올린다. 퍼덕이는 몸부림이 집게 끝을 통해  손가락으로 그리고  팔로 전해져 온다. 심장이 저릿했다.

눈을 질끈 감고 미안해, 미안해 를 외쳐가며 씻어낸다.



대충 개수대선반에 걸쳐두고 이번에는 한 마리씩 수증기가 자욱한 찜통으로 옮겨간다. 거의 마지막쯤 아직 살아있는 게를 옮기기 위해 들어 올린다. 순간 큰 집게발로 선반을 잡아 놓질 않고 버티고 있다. 이번엔 가슴이 더 많이 저릿하다. 이렇게 까지 해서 내가 꼭 꽃게를 먹어야 하는 것일까  우울해진다.


차를 타고 가까운 서해바다를 간다면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 걸릴 텐데 , 데려다가 놓아준다면 이전처럼 게는 살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을 듯했다.

순식간에 알 수 없이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렸다.

미안해 , 꽃게더러 들으라는 건지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끝내 찜통 안으로 넣어버렸다.


찜기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뚜껑을 열으라는 듯 타닥타닥 집게발 치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멈췄다. 그러는 동안 미리 집어넣은 게 들은  보기 좋게 주황색빛이  돼있었다.

참말 눈물이 찔끔 났다. 심장의 저릿함은 꽤나 오래갔다. 아이들에게 잘 쪄진 꽃게찜을 큰 쟁반에 담아내어 주었다. 게다리를 손으로 척척 뜯어내어 살을 발라 먹인다. 조금 전 내 팔로 전해졌던 게의 몸부림이 이젠  심장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끝내 나는 게를 한 점도 입에 대질 못했다.


먹는 것을 즐기는 내가 한 점도 대질 못하다니 ,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천성이 그랬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동네아이들과 놀다가 크게 우는소리가 나서 뛰어나가보면 아니나 다를까 내가 혼자 울고 있었다고 했다.

왜 우냐고 물어보면 친구가 때렸다거나 꼬집었다고 했단다.

답답하고 속이 타는 마음에 미화는(엄마)

" 울지 말고 다음번에는 같이 때려주고 꼬집어줘." 이렇게 일 주었다는 터였다.

 "그럼 친구가 아파하잖아.  그건 싫어. "라는 답을 하며 속을 타들어 가게 했다는 이야기.   미화가 그 이야기를 꺼낼 때면 지금도 천불이 나는지 어떤 건지 혀를  차곤 한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 꽃게찜을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꽃게가 톱밥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지금도 어쩐지 가슴이 저릿해진다.

글을 쓰며 지금도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하면  그 누군가는 실소를 하려나, 쓴웃음과 비웃음이 지어 진대도 내 천성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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