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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May 22. 2023

이불을 한번 걷어차면 그뿐인 일

 

이불을 한번 걷어차면 그만일까,

이날을 언제까지 기억할는지  궁금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불을 걷어차낼 만큼 무안했던 사건들이 꽤나 있다. 잊히지 않아 두고두고 창피할 것만 같던 날들도  결국 대부분 아득하게 까물까물해 멀어지지만 말이다. 


해가 유난했던 날.

아이들과 용(남편) 마치 바다와 맞닿은 듯 물의 경계가 보이지 않게 만든 호텔 수영장,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인피니티풀을 한껏 즐기고 있다.  바다와 하늘 연결되어 보이기까지 하는  풍경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한참을 빠져있다.


 얼마쯤 지났을까 , 수영장 썬베드에 기대어 준비해 간 이슬아작가 부지런한 사랑을 읽어보려 한다.

어릴 때부터 해수욕장 근처에 살았던 탓일까, 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깔깔 거리며 물놀이를 즐기는 소리에 이내 마음이 혹하긴 하였다.

한데 오늘은 모처럼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어볼 작정에 수영복으로 갈아입지 않았으니 젊잖게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한참을 지났을 테다. 어느덧 해가 기울며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기세를 피해 아이들과 용은 호텔지하의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오겠단다.

"아빠랑 조심해서 잘 씻고 와." 그러라는 대답과 동시에 나는 비치타월을 두 겹이나 감싸 몸에 둘둘 말아 버린다.

그건 서늘한 바람 때문이기도   , 물밀듯 밀려드는 노곤함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 우왔어. 이제  가자."

작은아들 승이가 말했다.

"엄마, 그런데 우리가 씻고 오는 동안 책 안 읽고 여기서 잤어?"

아들의 말에 어쩐지 조금 무안해진다.

 추워서 그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을 뿐이라며 대강 둘러 댄 후,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자 한다.


"엄마, 빨리 와." 비치타월과 읽고 있던 책을 무려 내 몸만큼이나 큰 사이즈의  타포린 가방에 담아 일어섰다. 그걸 어깨에 둘러매고 급히 일어섰던 탓이었을 테다. 

"-푸-!" 하는 묵직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영장 데크에는 강한 진동이 느껴진다. 흡사 부피와 중량이 제법 큰 물체가 철퍼덕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하기도 하다.

"앗, 자기야. 괜찮아?" "헉 , 엄마!"

용과 아이들이  뛰어온다.


"어디 좀 봐. 괜찮겠어? 걸을 수 있겠어? 다리 좀 보자." 용이 말했다.

"나 건들지 말아 봐. 아 , 진짜 너무 아프다. 아흑."

생각해 보니 모처럼 크록스샌들을 신었하필 뒤꿈치 부분이 아무래도 선베드 다리에 걸려 넘어진 듯하다.

마흔한 살 인생을 통틀어 열손가락에 꼽힐 만큼 강렬하게 넘어진 순간이다.

통증이 약간 가신 뒤, 바지를 걷어 무릎을 확인해 보았다. 살짝 살갗이 까진 거 외에는 괜찮은 듯했다.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되어 걸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겠어? 걸을 수 있겠어? 아휴 , 많이 아프지?"아이들과 용의  심심한위로 받으며 객실 쪽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엄마.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엄마 넘어질 때  쳐다보더라? 하긴 그렇게 소리가 크게 났는데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지." 열 살 승이가 작고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다음 이야기를 다정하게 이어 나간다.


"엄마는 어렸을 때도 잘 넘어졌어?"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승이는 뒤이어 이야기한다.

"그럴 리가 없을 거 같은데, 이상하네." 나의 대답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영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벌레라면 사지를 털어내 가며 질급을 하는 열세 살 큰아들 석이가 홍조를 띠며 이야기한다.

" 아, 다들  됐고. 그것보다 아까 수영할 때 내 뒤통수에 벌레가 붙어있던 게 소름이었지. 대체 얼마동안이나  붙어 있었던 거야? 나 괜찮겠지, 엄마?"

 

나는 슬며시 잡았던 아이의 손을 놓 맨뒤에서 걸어가려 한다.

아픈 다리를 괜스레 바닥에 끌어가며 읊조려본다.

  아프냐 , 나는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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