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바다가 보기 좋은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때 한참을 옆자리에 계시던 여자분이 나와 행복이를 번갈아 보시며 말을 걸어온다.
강아지 행복이와 함께 목포에서 출발하는 제주행 배에 올랐다. 혹 여행의 설렘 때문일까, 망망대해에 큰 배를 타고 나가게 된 것 때문일까.
우리 가족은 누구랄 것도 없이 들뜬마음을 감출 수 없다.
실은 나는 여행을 크게 즐기는 편이 아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도 물론이거니와 ,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캐리어에 가득한 짐을 정리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몹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두 아이들과 강아지가 있기 때문에 대체로 꾸려지는 짐의 양은 상상이상일테다.
그렇지만 이번여행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사뭇 다르다. 6학년이 된 큰아들 석이의 초등학교 졸업 전, 그에게 가족의 응원과 축하를 전하고자 장기간의 여행을 계획한 터.
용(남편)과 아이들은 배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를 하고 오겠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 여객터미널에서 아이들과 행복이에게 멀미약을 먹여 두었다. 그래도 평소에 멀미가 심한 편인 둘째 승이가 내심 걱정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일전에 차에서 구토를 심하게 한적 있는 둘째 덕에 멀미봉투는 가방에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
아무튼 제주까지 이동하는데 비행기 말고 차를 선적하여 여객선을 타고 가기를 선택한 건 행복이 덕이었다. 감각이 예민한 강아지가 장기간 여행을 하는데 우리 차로 움직이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었다. 그건 멀미를 하는 둘째 승이에게도 마찬가지 일테지,
조금 전보다 여객선의 엔진소리가 거세지고 움직임이 커지는 듯하다. 큰 배라서 그런지 몇 번 타보았던 유람선이나 어선과는 다르게 퍽 안정적인 느낌이다.
선내에는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초록병의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간단히 컵라면을 먹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출렁거리는 여객선 내에서 그 냄새를 줄기차게 맡고 있자니 어쩐지 점점 속이 메스꺼워지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멀미를 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거제도에서 외도로 들어갈 때 유람선도 타보았고 어릴 적 다이빙을 즐기는 아버지를 따라 어선도 몇 번 타본기억이 있다. 때마다 멀미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염려하지 않았다. 게다가 큰 여객선이니만큼 흔들림이 덜할 테니 내게 멀미 따윈 없을 거라고 자부했다.
하나 울렁거리는 속에 조금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몇 시간이지났을까,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제주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어 선체의 흔들림이 세질 수 있으니 갑판에 나간다거나 하는 움직임에 주의해 달라는 당부였다. 선내방송을 듣고 늦은 감이 있지만 상비약으로 준비해 두었던 아이들용 멀미약을 한봉 먹어본다. 성인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겠지만 그거라도 먹어둬야겠다 싶다.
풍랑주의보라더니 아니나 다를까 큰 배가 이내 요란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흡사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아찔한 기분이 든다. 쉼 없이 밀려오는 갖가지 음식냄새와 더불어 속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용은 멀미약을 살 수 있는지 알아보겠단다. 잠시뒤 안타깝게도 그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지그시 감아 본다. 그러면서 아까 먹었던 아이들용 멀미약 시럽봉지를 다시 힘껏 짜내어 남은 한 방울이라도 더 삼켜볼 작정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내 잠이 들어있으니 다행이다. 이동가방 안에 엎드려있는 행복이 또한 편안해 보인다. 강아지 입가를 만져 보아도 침 한 방울 없이 뽀송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다행이다 라며 애써 생각한다. 내심 불안한 마음에 애먼 멀미봉투만 움켜쥔 채 요동치는 속을 다독여 볼뿐이다.
긴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때.우리는 어떤 기억을 간직하게 될까, 거세지는파도에 요란하게 출렁였던 여객선에서처럼 반가운 일들만 가득하진 않을 테다. 더군다나 차와 배로 제주까지 이동거리만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를 두고 13살 큰아들 석이가 했던 말을 빌려보자면 이 또한 여행의 일환이라고 했다.
여행 중예상치 못한 일일지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그뿐이라고 초등학생 아이가 이야기한다.
답지 않게 출발 전부터 한껏 기대를 하며 설레었던 탓이었을까 , 뜻밖에 낯선 떨림을 느끼며여행은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