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혜 Jun 05. 2023

여름밤  시원한 바람처럼


 매달 첫 번째 주 월요일.  

 학교를 마치고 난 후, 승이는 숲체험 놀이  참여하고 있다.  마침 재량휴일인 오늘은 숲놀이  일정을 오전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둘째 승이를 보내고 난 뒤, 첫째 석이와 무얼 먹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 마라탕 먹을까? 엄마가 면두부도 사놨어." 승이와 용은(남편) 마라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따금씩 석이와 나만 먹고는 하는데, 마침 둘 뿐이니 잘됐다 싶었다.


아이의 좋다는 대답을 듣고 마트에서 사두었던 사천마라탕면 봉지를 뜯어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넓은 면두부 한팩과 소시지, 배추를 꺼내어  먹기 좋을 만큼 적당히 손질해 준비해 둔다. 물론 납작 당면도 잊지 않고 꺼내어 물에 잠시 불려둘 참이다.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마라탕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석아, 먹고 나서 우리 버스 타고 멀리 가볼까?"

"아니 , 귀찮아. 싫어."나의 물음에 석이는 잠시의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답을 한다.


"너 어렸을 때 버스 좋아해서 엄마랑 차고지까지 다녀오고 했었잖아. 기억 안 나? 버스 타는 방법도 배울 겸 나가자."

아이는 답하기도 성가시다는 듯 , 납작 당면을 한점 들어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가며 고개만 휘젓는다.


"그러지 말고 너 애기 때처럼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보자. 근처 예쁜 커피숍에 가서 빙수도 사 먹고 놀다 오자. 어때?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지치지도 않고 물어보는 나에게 아이는 다시 한번 대답한다.

"싫어. 나 이거 먹고 수학 공부할 거야. 그러고 나서  자전거 타러 나갈 거고. 난 이제 버스 타는 거엔 관심 없어."


잠시 생각해 보니, 내 앞에 앉아 얼큰한 마라탕을 맛있다며 같이 먹고 있는 열세 살 남자아이.   그는 이제 꼬마버스 타요를 좋아하는 아기가 아니다. 꼬마버스 이야기를 하루종일  쫑알대면서 엄마만 졸졸 따라다니던 아기가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만한 사실일 테다.


그런데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도 없이 큰아이와 하루를 보낼 생각에 그 시절이 문득 떠올랐던 듯하다.

고향을 떠나  살러왔던 도시.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다. 아는 사람 없이  낯설기만 하고 그래서 조금 외로웠던 .

함께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아기 석이에게 어쩌면 난. 그 시절 온기를 느끼며 위로받았던 건 아닐까 ,


석이의 수학공부가 끝나고 , 우린 여느 날과 같이 각자의 할 일을 한다. 버스를 함께 타고 차고지까지 여행을 다녔던 그날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그저 즐거웠던 많은 날들.


훌쩍 커버리고 조금은 무심해진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섭섭한 마음 감출길 없다.

그런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꾸만 질척대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웃음이 난다.


들은 너와 나의 인생에서  려져 가물가물해지는 에 지나지 않겠지.

하지만 그 기억들은 인생에서  어느 날,  우리 곁으로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의외로 무척 생생하게.

 그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속 흔들는지도. 

 여름밤 시원한 바람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흔해 빠진 이름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