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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Jun 12. 2023

요란한 토요일 오후


우리는 그날.  토요일 오후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 나는 13살,  은이는 10살이었다. 토요일이니 만큼 이제 곧  3교시 수업을 마치고 전교생이 교문밖으로 쏟아져 나올 테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각 학년별로 1반과 2반. 이렇게 두 반씩 , 한 반에는 대략 27명. 그러니 전체 학생수는 300명 남짓일터.


 나보다 대체로 일찍 수업이 끝났던 3학년 은이는 여느 날과 같이 오늘도 목을 기다랗게 뺀 채 기다린다. 2층 끄트머리에 있는  6학년 우리 교실 앞 복도에서 오도카니. 언니네 반 수업이 얼른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은이가 서있는 복도기름칠을 해서 반질반질하게 윤이나는 고동색 무가 깔린 바닥이었다. 그 당시 복도에 서있을 때면 나는 괜스레 콧구멍이 벌렁거리곤  했다.

흡사 윤기 나는 진한 초콜릿색 같아 보였던  마루에서는 언제나 고소한 냄새가 났다. 틈틈이 기름칠을 듯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강 짐작만 할 뿐 그것이 정확히 어떤 기름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러는 사이  간간히  복도 끝 창문너머로 은이의 땋은 머리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한다. 그럴 때면 괜히 마음 근질근질하다. 분명 은이는 언니가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들었다 놨다 까치발을 세워 건네 보고 있을 테니까.


 "언니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언니 나올 때만 엄청 많이 기다렸어."

은이는  나를 며칠이나 못 봤던 것이라도 되는냥 쫑알댄다.

"그래. 지금 가면 우리 긴급출동 911 볼 수 있겠다. 그치?언니가 자전거로 빨리 달려서 집에 갈게."


우린 학교 뒤편 수돗가 근처 큰 기둥에 덩그러니 세워 놨던 자전거를 향해 걸었다.

굵은 쇠사슬로 칭칭 감아둔 자전거 바퀴사이. 금색빛이 나는 자물쇠 끼손가락 보다 작열쇠를 돌려 풀었다.

"으 , 냄새." 예나 지금이나  은근히 깔끔을 떠는 편이 굵은 쇠사슬에서 어쩔 수 없 나는 쇠붙이 냄새가 늘 꺼림칙하기만 했다.

 그렇대도 미화(엄마)한테 새로 사달라고 하기엔 미안하다. 나도 친구들처럼 튜브로 덧씌워진  자물쇠세트가 조금 가지고 싶긴 했지만.


별수 없이 손을 탈탈 허공에 털어내고 , 자전거에 탔다.  엉덩이를 최대한 안장 앞쪽으로 당겨 앉는다. 그리고는 은이를 끄트머리에  태웠다. 분명 미화가 2인용이라고는 했지만 어쩐지 안장은 하나다.

다행히 우리의 체구 작았고 그에 비해 안장의 길이 제법 긴 형태였기에 함께 탈 수 있었다.


아무튼, 자전거 페달을 힘껏 저어서

교문밖을 향한다. 어쩐일인지 오늘은 교문바로 앞에 아이들이 모여있다. 그것도 꽤나 여러 명.

자전거를 천천히 멈추고 가까이 다가섰다. 네모난 박스 안에 노랗고 보송보송한 병아리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마치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듯. 그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한눈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얼른 은이와 내 가방 주머니 깊숙이 있던 동전을 헤아려 봤다. 참말 다행이다. 병아리를 데려갈 수 있을 만큼의 동전이 있다. 병아리를 팔고 있는 할아버지께 500원을 드리고 유난히도 머리가 노란 아이 두 마리를 콕 집어 꺼내 달라고 했다.

작디 작아 연약해보이기만 하는 예쁜 아이들 사이. 할아버지는 박스안을 투박한 손으로 휘 휘젓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병아리를 움켜잡아 내게 보인다. "이거 맞지?"


머리가 유난히 노란 아이는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낸다. 분명 병아리는 삐약이라고 울텐데 말이다.

"할아버지, 살살 꺼내 주세요. 아파하잖아요."

그런데도 내 목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한 거였을까, 할아버지는 까만 비닐봉지를 어딘가에서 꺼내어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병아리를 담았다. 우리가 데려갈 병아리 두 마리 모두를.

겁이 났지만 , 그때 난 할아버지 힘껏 쏘아봤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순식간에 ,


비닐봉지는 무척이나 따뜻했다."이제 우리 집에 가자. 우리 엄마도 너네 좋아할 거야. 내가 잘 보살펴줄게."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는 자전거를 운전해야 한다.그러니 어쩔수 없이 은이더러 병아리들이 다치지 않게 잘 들고 있으라는 당부를 하고 다시 힘차게 페달을 저었다. 소나무 숲사이를 가로질러 집을 향해 달린다. 이상하리만치 어느 때보다 가볍다.

아는지 모르는지 은이 손에 들린 병아리 두 마리. 여전히 요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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