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의 서곡1

by 은서의 숨겨진 책

1장의 흐름을 조금 손보았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다시 발행해요.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금빛 샹들리에 아래, 모두가 부러워한 그녀의 삶에 첫 번째 균열이 스며든다.

완벽한 남편과의 결혼, 화려한 무도회, 그리고 낯선 시선.

『균열의 서곡』 1장 ― 균열은 언제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시작된다.”


모두가 그녀를 부러워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곁에 놓인 완벽의 윤곽을. 이름을 부르면 대답이 돌아오는, 성과와 태도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실수와 지연이란 말을 사전에 두지 않는 남자. 어느 자리에서든 그와 함께 서는 순간, 수연은 마치 화폭 한가운데에 고정된 초상화가 되었다. 조명이 어디로 향하든, 박수의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든, 그 중심에 그가 있었고, 그녀는 그 옆에서 빛의 반사율로만 존재했다. 사람들은 웃으며 축복을 건넸다. 축복은 정중했고, 정중함은 언제나 조금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피부에 남아 밤까지 마르지 않곤 했다.

호텔의 문이 열리자, 로비는 이미 황금빛 저녁의 안쪽이 되어 있었다. 마치 밤이 먼저 도착해 불을 켜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대리석 바닥은 얇은 물막처럼 매끄러웠고, 조화로 만든 흰 장미들이 계단의 곁을 따라 흐르는 강처럼 늘어서 있었다. 샹들리에는 별들을 허리까지 끌어내린 모양으로 매달려 있었고, 그 빛이 떨어진 자리에 사람들이 모였다. 시계는 제 시간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을 사실로 알려주었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늦게 도착했고, 그 늦음이야말로 그녀가 자기 자신이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행사장은 건반과 현의 오래된 평화로 가득 차 있었다. 바이올린의 활이 머리카락을 스치듯 공기를 가르면, 축배를 드는 팔의 근육이 동시에 흔들렸다. 테이블 위의 글라스들은 얇은 목을 흔들어 서로의 소리를 확인했다. 누군가의 웃음이 반사되어 돌아올 때, 수연은 어김없이 웃어야 했다. 그녀는 웃을 줄 알았다. 웃음의 정확한 온도, 눈가에 들어갈 미세한 힘의 정도, 입술선을 부드럽게 휘게 하는 각도, 그리고 그 모든 걸 버티는 얼굴의 근육.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생활력처럼 몸에 배어 있었다.

그의 손이 허리에 올랐다. 손은 단정했고, 단정함은 어쩐지 무게가 가벼웠다. 그가 누구와 악수하든, 어떤 농담을 건네든, 어떤 약속을 받아 적든, 그녀의 역할은 그 옆에서 휘도의 균형을 잡는 일이었다. “오늘도 빛나십니다.” “두 분은 정말 한 편의 그림 같네요.” 사람들은 빈틈 없이 말을 건넸다. 빈틈이 없다는 것은 매끄럽다는 뜻이고, 매끄럽다는 것은 손이 걸릴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건너편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한 번 터졌다. 하얀 섬광이 번개처럼 방 전체를 스쳤다. 그 순간, 빛이 완전히 꺼지는 듯한 검은 여백이 찰나로 생겼다가 사라졌다. 수연은 알지 못했다. 인간의 눈은 밝음보다 어둠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을. 빛이 쏟아지는 찰나가 아니라, 빛이 걷히는 사이사이에 숨은 고요가 우리를 흔든다는 사실을.

그 고요가 그녀를 흔들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마치 어둠이 잠깐 드러낸 바닥을 집어 들 듯, 정확히 그녀의 자리를 들어 올렸다. 우연히 잡힌 시선이라고 하기엔 정밀했고, 의도된 응시라고 하기엔 불안했다. 건너편 구석, 눈에 띄지 않게 놓인 기둥과 기둥 사이, 그림자가 다닥다닥 붙어 사는 곳에서 그 시선이 왔다.

눈은 멀리 있었고, 정장은 어딘가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울리지 않음이, 이 행사장의 모든 잘 맞음을 무너뜨릴 만큼 정직했다. 이름도 직함도 없어야 가능한 정직. 수연은 놀랐다. 놀라움은 두려움과 다르지 않았다. 두려움은 심장을 움켜쥐고 도망치라 말하지만, 놀라움은 같은 손으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도망치지 말고 보라고.

그녀는 보았다. 아주 잠깐, 초상화가 화폭 바깥의 풍경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사람들이 지나가며 가로막을 때마다 그 시선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는데, 사라짐과 나타남의 간격이 이상하게 맥박과 맞았다. 음악이 한 음절씩 흘러갈 때마다 그와 그녀 사이의 거리도 한 음절씩 좁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완벽함은 늘 정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소개가 이어졌다. 직함이 높을수록 손의 움직임은 천천히, 목소리는 낮게, 어깨선은 더 뒤로 젖혀졌다. 수연은 그 모든 질서를 배웠고, 지켰다. 규칙을 지키는 일은 살기 위해 배운 첫 언어와도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언어가 낯설게 들렸다. 누군가의 이름이 연달아 소개되고, 성취와 계획과 비전이 영수증처럼 길게 늘어질수록, 그녀의 귀에는 설명되지 않는 한 문장이 자꾸만 겹쳐졌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 이 문장은 일생 단 한 번도 증명할 수 없지만,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무감정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감정이 종착지에 도착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가까웠다. 마음이 발원지를 지나 목적지에서 진정될 때 생기는 고요. 그 고요는 그녀의 등을 밀었다. 바로 그때, 또 한 번 플래시가 터졌다. 이번엔 더 가까웠다. 플래시의 잔광이 샹들리에의 금빛과 섞여 미세한 빛의 부스러기들이 허공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었고, 사진은 사람을 가두었다. 가두어진 얼굴들은 각자의 웃음을 택해 정지했다. 정지한 미소들 사이에서, 수연은 자신이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시선은 움직였다. 시선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방향을 바꾸는 몸의 일부였다.

아페리티프가 돌았다. 투명한 액체에 작게 떨어뜨린 라임이 표면을 매끈하게 미끄러졌다. 접객 요원의 장갑 낀 손이 그녀의 글라스를 맞잡을 때, 그 장갑의 표면이 차갑다는 걸 뒤늦게 느꼈다. 감각은 언제나 뒤늦게 도착했다. 한 모금 삼키자, 혀끝에 올라온 쌉싸래함이 목을 지나면서 조금 달게 변했다. 입천장에 남는 여운이 희미하게 떨렸다. 떨림을 품은 채로 시선은 다시 돌아갔다. 돌아가서, 그곳에, 아직도, 변함없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축사를 위한 마이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 다녔다. 연설은 명료했고, 명료함은 안전했다. 수연은 환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아주 작은 검은 방 하나를 조용히 열었다. 그 방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크기의 방이었고, 그 방의 창은 행사장의 반대편을 향해 있었다. 창밖에는 이름을 모르는 시선이 앉아 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들은 대개 더 오래 남는다. 이름은 부르면 닳고, 닳으면 낡는다. 그러나 부르지 못하는 것들은 닳지 않는다. 닳지 않는 것들은 무음으로 자란다.

악장이 바뀌고, 연주자들이 동시에 숨을 들이켰다. 현의 떨림이 피곤한 새의 날개짓처럼 잔잔하게 시작되었다. 그때마다 샹들리에의 유리 목걸이들이 위태롭고 아름답게 서로를 건드렸다. 마치 떨어지려는 순간에만 소리를 상기하는 물건처럼. 사람들의 대화는 작은 파도처럼 들렸다. 파도는 밀려오고, 밀려오면서 실패했다. 항상 모서리에서 무너졌다. 그 무너짐을 지켜보는 일만이 유일한 낙인 사람들처럼.

그의 시선이, 마침내, 그녀의 손에 닿았다. 손에 닿는다는 건 은유였다. 멀리 있었으니 손은 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닿음은 거리를 필요로 한다. 너무 가까우면 오히려 닿지 못한다.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대면 바깥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멀리서 보는 시선이야말로 표면을 건너 밑바닥까지 도달한다. 그 시선이 그녀의 손등 위—아직 손잡이를 잡지 않은 채 떠 있던 그녀의 손 위에—머물렀다. 그 손은 오늘 내내 비어 있었고, 비어 있음은 언제나 무게를 갖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 무게를 느꼈다. 손이, 가벼워서 무거웠다.

테이블 중앙의 꽃꽂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행사장은 닫힌 공간이었지만, 닫힌 공간에도 길이 하나쯤은 있었다. 보이지 않는 틈새, 천장의 환기구, 문과 문 사이의 얇은 선. 그 선을 따라 들어온 바람이 냅킨의 가장자리를 들었다. 그 들림이 우연히 만든 주름이 문장처럼 보였다. 읽을 수 없는데 읽은 것 같은 기분. 그녀는 그 문장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오늘은 표면이 아니다.’

파우더 룸 앞의 긴 거울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거울은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의 얼굴로 채우며 살았다. 그러나 그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은 오직 그녀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잠깐, 아주 잠깐, 자기 얼굴을 낯설게 보았다. 얼굴의 곡선, 눈과 눈 사이의 좁은 골, 콧대의 그림자가 내려앉는 방향, 귀의 각도. 그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화장을 고치는 척 붓을 들어 눈꼬리를 정리하면서도, 마음의 손은 다른 곳을 만지고 있었다. 다른 곳, 다른 얼굴, 다른 방향. 붓 끝이 떨렸다. 떨림은 두려움의 흔적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 침묵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 침묵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어쩐지 이름처럼 들렸다. 이름이 없는 발자국. 발자국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서지 않았다. 돌아서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한 때가 있다. 확인은 결말의 태도고, 오늘의 그녀는 결말에 관심이 없었다. 시작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시작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녀는 손을 씻었다. 물은 맑았고, 맑음은 공포를 낳았다. 맑으면 무엇이든 보인다. 보이는 것은 대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물기를 털어내며, 손끝에 남은 차가움이 곧 열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체온은 언제나 물을 데운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생각도 데워졌다.

다시 홀.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역할을 흘리고 있었고, 역할들은 서로를 밀치지도 끌어안지도 않은 채 규격대로 흘렀다. 그녀는 제자리로 돌아가기 전, 샹들리에 바로 아래 멈춰 섰다. 빛의 낙수가 이곳에서 가장 폭포처럼 떨어졌다. 폭포는 가루였다. 가루는 가볍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쌓이면 무겁다. 빛은 소리 없이 무거웠다. 그 무게가 머리와 어깨를 천천히 눌렀다. 눌림 속에서, 그녀는 어쩐지 가벼워졌다. 몸의 중심이 발목에서 발가락 쪽으로 아주 약간 이동했다. 그 미세한 이동이 한 사람의 방향을 바꾸기에 충분할 때가 있다.

그와 시선이 다시 만난 건, 아무 의식도 없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호명되고, 누군가가 사진을 찍고, 누군가가 칭찬을 흘리는, 이 행사의 수만 가지 ‘누군가’들 사이에서, 그 ‘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어떤 기대도, 어떤 요구도 없이, 그저 자리를 지키듯.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오래 서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매우 천천히 흔들리는 법을 배우는 일. 그의 미세한 흔들림이 있었다. 그 흔들림은 멀리서도 보였다. 흔들리는 것은 표면이었고, 그 밑의 결은 굳건했다.

그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녀도 다가가지 않았다. 다가가지 않음으로 만들어지는 좁은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가늘었고, 가늘어서 반짝였다.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끊어질 듯한 통로.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가장 오래 남을 수 있는 통로. 사람들은 종종 손으로 만든 길만 길이라고 믿지만, 시선으로 만든 길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길은 끝을 알지 못한 채 길인 경우가 많았다.

그의 어깨를 지나, 사진사 하나가 각도를 바꿨다. 그 순간, 카메라의 플래시가 다시 터졌다. 섬광 속에서, 그녀는 그가 아니라 ‘그의 주변’을 보았다. 잘 맞지 않는 정장, 손목의 셔츠가 소매 밖으로 조금 더 나와 있는 모양, 타이의 매듭이 단정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점, 광택이 다 닳아 반들거리는 구두의 앞코. 그 모든 ‘근사하지 않은 것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마음은 완벽의 매끄러움 위에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사람은 걸리적거리는 것에 기대 잠을 청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녀가 오늘 밤, 잠을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이미 기대고 있었다. 기대는 방향이었다.

연설이 끝나고, 음악이 조금 더 커졌다. 누군가 춤을 청했고, 누군가는 예의 바르게 사양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몸은 규격을 지키느라 바빴다. 각도와 거리, 손의 위치와 발의 회전. 그 모든 것이 전통과 예의, 상호존중의 이름으로 재현됐다. 그녀에게도 손이 내밀어졌다. 익숙한 손이었다. 익숙함은 안전했고, 안전은 대개 따뜻해야 했지만, 그 온도가 오늘 밤만큼은 유리컵 표면처럼 미끄러웠다. 그녀는 미소로 대답했고, 미소는 허락의 모양을 닮았다. 그러나 발은 한 박 늦게 움직였다. 늦음은 작은 진실이었다.

원을 그리며 돌다가, 그녀의 시야가 다시 그 자리를 스쳤다. 그가 사라진 듯 보였다가, 기둥의 그림자 너머에서 다시 나타났다. 돌 때마다, 나타남과 사라짐이 박자를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호흡이 그 박자에 길들여지는 것을 느꼈다. 음악이 끝나자, 모든 것들이 멈췄다. 박수. 박수. 박수. 박수가 사람의 피부에 닿는 소리. 그 소리 사이로, 아주 얇게, 이름 없는 침묵이 한 겹 끼어들었다. 그 얇은 침묵이 그녀의 심장을 두드렸다. 두드림은 문이 있다는 뜻이었다.

와인 글라스의 목을 잡고 있는 손이 아주 조금 미끄러졌다. 미끄러짐은 실수처럼 보였지만, 실수는 의지를 가리키기도 했다. 그녀는 글라스를 내려놓고, 홀의 바깥쪽, 창가로 걸었다. 창은 강물처럼 검었다. 검은 강 위로 도시의 등불이 흘러가고 있었다. 빛이 흐른다는 것은, 빛의 주인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모든 빛은 자기 몸을 잊은 채 흘렀다. 그녀는 그 강을 오래 보았다. 오래 보는 일이야말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누군가가 옆을 지나갔다. 향수 냄새가 남았다 사라졌다. 그 냄새가 사라질 때, 다른 냄새가 아주 옅게 들어왔다. 비누와 바람과 종이의 냄새. 그 냄새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알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마음의 오래된 자리에서 올라온다. 오래된 자리는 낡았지만 튼튼했다. 튼튼해서, 누군가가 앉을 수 있었다. 앉는 일이 곧 시작이었다.

“사진 한 장 더 모실게요.” 멀리서 사진사가 외쳤다.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모여서 틀을 만들었다. 틀은 친절했다. 틀은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틀 안에 들어가면, 누구나 준비된 사람이 된다. 그녀는 틀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시선이—그 시선이—마지막으로 그녀를 잡았다. 잡는다는 건 거칠었다. 그러나 오늘의 잡힘은 부드러웠다. 손목에 얇은 실이 감기는 것처럼. 실은 보이지 않았고, 보이지 않아서 더 단단했다.

플래시. 섬광. 여백. 그리고, 아주 얇은 잔광. 잔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자기 입술의 모양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꼈고, 허리의 굴곡이 너무 반듯하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고, 손가락 사이에 미세한 진땀이 맺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땀은 작았다. 작아서 증거였다. 큰 증거는 쉽게 부서지고, 작은 증거는 잘 숨는다. 숨은 증거가 오래 간다.

행사는 계속되었다. 계속된다는 말은 변명이었다. 모든 계속은 변장한 변화를 품고 있다. 수연은 이해했다. 이해함이 곧 결심은 아니었다. 오늘의 이해는 내일의 결심으로 건너갈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상으로 흩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얇은 선 하나가 그려졌다는 사실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선은 색이 없었다. 색이 없어서 더 또렷했다. 사람들은 색으로 기억하고, 마음은 선으로 기억한다. 선은 방향이었고, 방향은, 아직 이름이 없었다.

마지막 축배가 울리고, 사람들이 조금씩 흩어졌다. 드레스의 자락이 계단을 지나갈 때 바람이 생겼다. 바람은 모양이 없어서 어느 틈으로든 들어왔다. 그녀는 코트를 걸치지 않았다. 어깨 위로 떨어진 실내의 공기가 피부를 지나갈 때, 낮과 밤의 경계가 몸 안쪽으로 옮겨 앉는 느낌이 들었다. 경계는 아프지 않았다. 다만 예민했다. 예민함은 생동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녀는 홀의 한가운데, 샹들리에의 정중앙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유리의 방울마다 작은 우주가 들어 있었다. 그 우주들은 인간의 손이 닿은 적이 없는 별처럼 먼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쪽의 조그마한 자신을 보았다.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아서, 오히려 큰 자신. 그 자신이 아주 천천히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았다. 깜박임은 신호였다. 살아 있으니, 보라고.

그녀는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걸었다. 걸으면서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봄은 욕망의 습관이었고, 오늘 그녀는 습관을 유예하는 법을 배웠다. 유예는 연기와 달랐다. 연기는 거짓말이고, 유예는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이 있는 곳에 시간은 고요를 만든다. 고요는 흔들림의 안쪽에서 성장했다. 흔들림이 없던 사람에게 고요는 없다.

문 앞에서 주최 측의 인사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정중하게 답했다. 정중함은 하루를 접는 방식이었다. 접힌 하루는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접힌 선을 따라 내일이 펴진다. 그녀의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이 조용히 진동했다. 화면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음으로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녀는 큰 유리문을 밀었다. 문은 가볍게 열렸다. 가벼움은 준비의 결과였다.

외부의 공기가 폐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는 과거를 잠깐 멈추게 했다. 멈춤은 사진과 닮았다. 그 멈춘 일초 동안, 그녀는 홀의 안쪽—가장 멀고 가장 가까운 자리—를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혹은, 모두 있었다. 인파 속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은, 결국 자신을 찾아내는 일과 닮았다. 그녀는 아직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함이 곧 가능성이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샹들리에의 빛이 문 유리에 길게 갈라져 비쳤다. 갈라진 빛은 하나의 금빛 봉합선처럼 보였다. 봉합선은 상처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증명은 회복의 반대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회복의 일부에 가까웠다. 그녀는 그 봉합선을 한동안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말들은 더 정확해진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걷는 동안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문장이 태어났다. 소리 내지 않아도 들리는 문장. “나는 지금, 표면을 지나고 있다.” 그 문장의 끝에는 마침표가 없었다. 마침표가 없는 문장은 다음 문장을 부른다. 다음 문장은 아직 모양이 없었다. 모양이 없으니,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눈부셨다. 눈부심은 위험했다. 위험은 살아 있다는 또 다른 증거였다.

그날 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다시 묻지 않았고, 그녀도 누구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이름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이름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침묵을 낳았다. 그 침묵이야말로 오늘의 전부였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 아주 조용하게, 아주 작게, 그러나 부서지지 않는 소리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균열은 소리 없이 자랐다. 소리 없이 자라는 것들은 오래간다. 오래가는 것만이 결국 사람을 바꾼다.

문이 닫혔다. 유리 너머의 빛이 다시 제자리로 모였다. 모임과 흩어짐의 끝에서, 그녀는 알았다. 오늘, 누구도 알지 못한 한 장의 사진이 찍혔다는 것을. 그 사진은 카메라에 저장되지 않았다. 눈꺼풀의 안쪽, 심장의 얇은 막, 손등의 미세한 혈관 안쪽 어딘가에. 사진의 중앙에는 이름이 없는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의 주변에 그녀가 있었다. 주변이라는 말은, 중심을 바꿀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로 숨을 들이켰다. 들이쉼은 약속이었다. 내쉼은 용서였다. 그 둘 사이의 아주 짧은 시간, 아무도 보지 못하는 틈. 그 틈이 오늘 밤의 가장 진실한 장소였다. 진실한 장소는 늘 작고, 작아서 아늑했다. 그녀는 그 아늑함을 가슴 어딘가에 접어 넣었다. 접힌 채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천 조각처럼.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발 뒤꿈치가 계단의 모서리를 정확히 찾는 감각이 기분 좋게 이어졌다. 정확함은 사람을 달래는 힘이 있었다. 오늘 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달램이었는지도 모른다. 달래짐은 울음을 미루는 기술이었고, 울음을 미루는 자에게 내일이 찾아온다.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내일이 가장 다정했다.

바깥의 공기는 투명했고, 투명함은 거짓이 없었다. 거짓이 없는 밤이 그녀의 어깨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어깨는 그 무게를 알맞게 받아들였다. 받아들임은 항복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름도, 약속도, 설명도 없이—오직 응시 하나와 플래시의 잔광만으로—시작된 밤. 그 밤이 아주 조용히, 그녀의 결을 바꾸기 시작했다. 표면을 만져서는 알 수 없는 곳에서.

그녀는 알았다. 아무것도 묻히지 않은 손으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손이 내일 어디를 향하든, 오늘의 빛은 오래 갈 거라는 것을. 오래 가서, 마침내 어떤 이름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지금은—지금은, 그 이름을 모르는 편이 좋았다. 모르는 동안만 가능한 종류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이 그녀를, 샹들리에의 아래에서, 유리의 반사 사이에서, 한 사람으로 세워주고 있었다.

그렇게, 첫 장의 마지막 문장은 쓰이지 않은 채로 남았다. 쓰지 않음으로써 더 또렷해진 문장. 그 문장은 입술 끝에 올라왔다가, 다시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스며드는 동안, 밤은 더 깊어졌고, 깊어진 밤의 안쪽에서 그녀는 아주 작은, 그러나 확실한 방향을 가졌다. 방향은 소리 내지 않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무음의 이동이—훗날 누군가 균열이라 부를—오늘의 전부였다.



#균열의서곡 #연재소설 #심리소설 #금빛균열 #사랑과배신

#내면의균열 #상처와빛 #문학적서사 #심리드라마 #고요한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