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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Sep 01. 2022

우리는 왜 서로에게 이토록 가혹한가

한국, 그리고 스웨덴 사회의 외모에 대한 생각


스웨덴 사람들은 외모가 수려하고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하다. 확실히 스톡홀름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깔끔한 정장을 입거나 스포츠 웨어를 입은 멋진 몸매를 소유한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목구비에 관해서는 개인 취향이 갈릴 수 있으니 스웨덴 사람들이 잘생겼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하기 어렵겠지만, 확실히 외모와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남자들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헤어 스타일과 수염을 가꾸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번 갈때마다 4-5만원에 육박하는 헤어샵에 한두 달마다 꼭 가서 지명 디자이너에게 머리를 자르는 것도 일반적이다. 


반면, 스웨덴 사회는 타인의 외모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살이 찌거나 빠졌든, 얼굴에 뾰루지가 났든, 새로 자른 머리 스타일이 별로든, 웬만해서는 외양에 관한 언급 자체를 삼간다. 특히 부정적인 내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외모에 관해 언급할 때에도 입은 옷이나 장신구 등에 관한 간접적인 표현은 괜찮지만 신체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야 한다.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스스로의 신체에 관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가 흔히 하는 나는 코가 낮아서, 내가 턱살이 많아서, 같은 자신의 외모에 관한 -특히 부정적인- 이야기는 스웨덴에서 그다지 흔한 대화 주제가 아니다. 


물론 스웨덴 사람들도 사람이기에 언제나 그렇게 '옳기만' 할 수는 없다. 그들도 여느 사람 사는 세상에서처럼 나름의 미의 기준이 있고, 그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티비를 틀면 키가 훤칠하고 잘 태닝된 피부를 가진 멋진 연예인들이 명품 옷을 입고 나와서 각기 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매에 조화로운 이목구비를 싫어할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특히 연애 관계에서 상대의 외모를 따지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외모에 중점을 두는 사회와 차이가 있다면, 외모에 관한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면, 많은 이들이 키가 크고 외모가 뛰어난 이를 연애 대상으로 선호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이들도 파트너를 만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파티나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날 때야 외모를 따지지만, 학교 혹은 회사 등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사이에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이를 느낄 수 있었던 사례 중 하나가, 친구가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고 했을 때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었다. 혹은 예쁜지 잘생겼는지를 물어보는 경우 또한 없다. 그러한 질문 자체가 매우 큰 실례이고, 애초에 타인이 만나는 사람의 외모가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남미 국가에서 살다가 유럽까지 어찌어찌 흘러들어 와 살다 보니 여러 문화권의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글로벌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서로와 더 다르다. 최근 오랜만에 한국 음악 방송을 짧은 클립으로 볼 일이 있었다. 인형같이 예쁘고 노래까지 잘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가녀린 몸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다. 한 클립을 보니 줄줄이 사탕처럼 비슷한 영상들이 추천에 떴다. 30대인데도 20대처럼 보이는 이들과 10대인데도 20대처럼 보이는 이들이 차례로 나와 토크쇼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무대를 선보였다. 데뷔 혹은 컴백을 준비하며 극단적인 절식 다이어트를 해서 '무대용 몸매'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언급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제는 더이상 그런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다며 손사레를 치는 이의 팔은 여전히 앙상했다. 


여자 연예인의 몸무게가 50킬로를 넘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구글링을 해보았더니 한국 통계청에 의하면 한국 여성의 키와 몸무게 평균은 대략 163cm,  58kg 근처인 것 같았다. 이 몸무게가 '생각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미디어에서 168cm에 48kg, 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스웨덴 여성의 평균은 대략적으로 신장 167cm에 68kg이라고 한다. 키가 크니 몸무게가 한국 평균보다 많이 나가는 것도 당연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아무도 이 몸무게가 '무겁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애시당초 다른 사람을 업고 다닐 것도 아닌데 타인의 몸무게가, 나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이 글을 쓰기 위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다이어트, 몸매, 외모 등에 관해 몇 가지의 언어로 구글링을 해봤다. 스웨덴 구글에서 diet를 치면 가장 먼저 이미지에 뜨는 내용은 모두 건강한 식단에 관한 정보다. 과일을 많이 먹고,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고 물을 많이 마셔라, 와 같은 내용이 뜬다. '체중 감량' 이라는 단어를 스웨덴어로 검색해도 비슷하다. 가장 먼저 '체중을 지나치게 급하게 감량하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페이지가 뜬다. 그런데 한국어로 '다이어트'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뜨는 이미지가 바로 체중계와 허리를 감싼 줄자이다. 놀랍지 않다. 왜냐면 내가 찾던 이미지가 바로 그 이미지였고, 한국인인 내 머릿속 알고리즘은 다이어트 = (어쩌면 극단적으로) 날씬한 몸매 두 단어를 연결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국가 설정은 스웨덴, 언어 설정은 영어로 동일한 상황인 경우인데도 그렇다.)  '예신 다이어트'라는 단어 역시 추천 검색어에 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서 찾아보니 웨딩 사진 및 결혼식 당일을 위해 하는 다이어트인 모양이었다. 일생에 한번뿐인 (혹은 몇번 안되는) 이벤트이니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왜 예비 신랑 다이어트는 흔치 않은 것일까. 



서로 다른 사회에는 서로 다른 관념과 인식이 존재한다. 외모, 능력, 재산, 행복과 실패 등 모든 개념은 그 사회가 만들어지고 변해오면서 함께 겪어온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반영한다. 스웨덴 사회는 외모라는 어찌 보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요소에 대해 사회적인 브레이크를 걸었다. 최소한 사람을 외모로 평가해서는 안되고, 타인의 외모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규범이다. 이렇나 규범과 가치관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 그리고 이력서에 사진 혹은 신체 정보에 관한 내용이 불필요하거나 혹은 금지되는 등의 사회적 표현을 통해 드러난다.  '타인의 신체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지자' 라는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우리는 타인의 신체에 관해 관대해질 필요가 없다. 관대함은 타인의 실수 혹은 단점에 보여야 할 아량이다. 타인의 신체는 우리에게 아량을 요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남의 뱃살이 조금 나왔든 말든,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있든 말든, 휴가 기간 동안 살이 쪘거나 빠졌든 신경쓰지 말자. 자기 자신의 신체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남들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살이 쪘는지, 뱃살이 나왔는지, 뾰루지가 났는지 이미 알고 있다. 굳이 콕 찝어서 언급해주지 않아도 된다. (절대로 내가 지난주에 눈썹 근처에 난 뾰루지 때문에 화가 나서 쓴 문장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외모 말고도 아주 건설적인 대화 주제가 많다. 아무렴 내 몸무게보다야 장바구니 물가가 우리 모두에게 더 중요한 주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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