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김사월쇼

by 버들핑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연을 보는 방식이 좀 달라졌다. 20대 때는 값이 싼 공연을 많이 갔다. 거의 소규모 공연들이었고, 대부분 작은 공간에서 진행되었고 공간이 혹여 크더라도 관객이 적다는 점은 같았다. 아티스트와의 거리는 대개 아주 가까웠다. 그리고 이 공연들은 주로 서울에서, 평일 저녁에 열렸다. 지방인에게 악조건인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그때는 자체휴강을 하던지 하면 시간을 널널하게 쓸 수 있었던 반면 지금은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반차는 내 맘대로 쓸 형편이 아니고 아까우며 운전해서 쏘기엔 가는데만 3시간 이상이 걸린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룰루랄라나, 역시 지금은 없어졌지만 초원서점, 지금도 있는 재미공작소, 제비다방, 복합문화 공간 에무 등. 평일 공연이 열리면 버스를 타고 보러 갔었다. (작년엔가 에무에서 청음 공연이 열렸을 때 어찌나 아쉽던지...) 락페는 지산 락페, 난지도 렛츠락페 두 어번 간 게 전부였던가? 용돈생활하는 대학생 돈으로는 엄청나게 큰 지출이 요구되고, 숙박 업소를 잡지 않는 정신나간 일정으로 다녔으므로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지금은 많은 공연을 가지는 않지만 뭉텅이 돈 나갈 공연들은 쉽게 다닌다. 숙박업소 20만원씩 주고 잡고, 티켓 둘 값 30,40만원씩 잡고, 운전해서 내려가고 올라가고. (평일 공연은 절대 못 가지만.) 그땐 티켓 경쟁을 다 이겼지만 이젠 다 진다.

가난하고 시간 많던 그때나 여유롭고 시간 없는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 있따면, 김사월쇼 하나만은 개근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올라갔다. KTX를 좀 늦게 예매해서 가는 길에 따로 앉아서 갔다. 일찍 집에서 나온 탓에 열차에선 둘 다 좀 잤다. 내리기 전에 KTX 매거진에 김사월 씨 있다고 하여 보니 차분히 듣기 좋은 음악 소개 같은 나가는 글이 있었다.

내려서는 동묘 쪽으로 갔다. 공연장 가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쪽으로 일정을 잡았었다. 처음 들른 곳은 쌍둥이 레트로샵이었다. 신기한 옛날 물건이 엄청나게 많았다. 우리보다 한 5년쯤 젊은 사람들부터는 용도를 알 수 없을 테이프도 가득했고, 아주 오래된 잡지, 책 따위가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오만 공략이 올라오던 시대가 아니었던 90년대말, 00년대 초의 게임 공략집 같은 것들도 한 꼭지 있길래 바람의나라 공략집(구하기 힘듦)이 있나 보았는데 그건 없었다. 애인은 70년대 여성잡지를 하나 고르고 나는 예전에 잃어버린 박노해 시집 구판을 골랐는데 좀 비쌌다. 3만원을 건네드렸는데 마침 그 타이밍에 아랫집 사장님인지 올라와서 여기 사장님께 빌린돈 3만원을 달라고 하셨다. 하필이면 내가 돈을 현금으로 건네드리자마자 그래서 좀 씁쓸했다.

레트로샵 가기 전에 고사리 익스프레스 앞을 보고 갔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거길 갔다 돌아오니 가게는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대기가 30분 이상 걸리는지라 어쩌지 했지만 또 올 기회 많지 않은 곳이라 여겨 다소 지루하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문앞에 있는 남성 둘이 김초엽의 문학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은 게이였을까?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애인은 김초엽의 bigbig 팬이므로 그들의 대화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성격상 그런 게 가능하지 않으므로 행하지는 아니했다. 그런 대화들을 듣고 있자니 정말 서울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비건식당이라는 장소적 특수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대화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대기표를 받으면 앞의 카페(커피엣마켓)에서 커피 할인을 해준다기에 거기서 웨이팅했다. 비도 오고, 기다리는 행위 자체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일행이었으므로 별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휴대폰 보면 뭐라고 하니 책을 좀 읽고. 그때 뭘 읽었더라? 딕테? 김사월 이훤의 에세이는 아니었다. 『설자은』이었나? 김홍중의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를 가지고 왔었는데, 기억엘 없으니 아마 읽지는 않았나보다. 꺼내어보니 책갈피가 들어가 있다. 집중도가 좋지 않았던듯.

고사리 익스프레스의 식사는 퍽 만족스러웠으나 너무 많이 시켰기 때문에 다 먹지는 못했다. 고사리 들깨비빔면, 고사리클래식, 완탕스프를 시켰다. 서술한 순서대로 맛있었다. 식당 이름에 고사리를 달고 있어서 그런지 고사리 맛이 아주 훌륭했다. 술은 계절 막걸리인데... 봄여름가을겨울인지 추천해주시기에 겨울?을 먹었었다. 혼자만 술을 시켰다고 혼났다. 그러나 내가 술이 더 약하므로 막거리를 싫어하는 애인이 다 먹게 됐다. 기왕 시킨 것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직원분들 모두 친절하셨는데, 접수 받는 분이 내가 입고 있는 세이수미 티셔츠를 알아보셨다. 어, 세이수미네요. 저도 좋아합니다. 라고 하셨나? 그러나 당황하여 어 감사합니다 ㅎㅎ 했다. 내가 왜 감사인사를 했지? 내가 최수미님인가? 그분도 더 할 말은 없으셨을테니 우리도 식사를 기다렸다. 뭐라고 되물었으면 좋았을까? 길어질 만하지 않으면서 대응할 만한...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앉은 자리에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기능이 출중하지는 않다. 지금도 그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무슨 노래를 좋아하시나요? 하하 저도 좋아합니다. 정도였으면 적당했을지도. 애인은 여기 음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쓱을 통해서 밀키트를 시켰다. 들깨비빔면과 누들떡볶이. 들깨비빔면은 시켜다 먹어도 맛있었다고.

이 다음에는 거리를 조금 돌았다. 고사리 익스프레스에서 쌍둥이 레트로샵으로 가는 길 골목은 낡은 수산시장, 골목시장, 물기가 흘러나오고 초췌한 표정의 상인들이 아무런 호객행위를 하지 않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쳐다보는, 좁고 축축하고 빛이 들지 않는 거리였는데, 메일박스 가는 길 왼편으로는 대로변으로 사람도 많고 빛도 들고 얼음이 생생하게 얼어 있고 그 위에 값을 크게 받을 것 같은 게장 따위가 나름 정제된 형태로 진열된 시장이었다. 우리는 비를 피해 메일박스에 들어갔다. 가게는 5층짜리 길쭉한 건물이었는데, 옛 우체국 자리를 썼다고 어딘가에 적혀있었다. 주문을 하면, 기능하지는 않지만 열쇠를 주었고, 열쇠 대신 벨이 울리면 메일박스에 열쇠와 벨을 집어넣고 음료를 받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사람과 새를 쳐다보고 책을 조금 조금 읽고 이야기를 조금 조금 나누고 건물을 탐방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이슬아 님의 강연을 얼마 전 들었는데(나는 이설아님이 오는 줄로 알고 기대했었다.) 작가됨의 왕도란 관찰에 있다고 했었다. 거기서 생각을 얼마나 잘 파생하고 깊게 관찰하느냐가... 사실 여러 작법서에서 읽어왔던 내용이지만- 아무튼. 뒷자리 남여가 소개팅 자리였는지 서로를 떠보는 이런저런 대화들을 하고 있어서 둘 모두 그것을 유심히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 인간의 성격에서 어떤 점을 경계하고 수용하는지 따위 대화가 이어지다가 몇 번의 침묵을 거치다가,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서로의 문화적 취향을 조금씩 이야기하다가-우리는 그때 곧 보게 될 김사월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대화 속에 들어 있는 두 사람의 계급적 동질감을 느끼며 우리는 그들과 몰래 불화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시되는 대화를 흘려듣지 않으며 즐겼다. 비가 좀 잦아들며 4시께 넘어갈 때쯤인가,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던지 아니면 나가던지 할까 하다가 신기한 케잌? 뭐였는지... 먹었다. 커피랑.

11

시간이 되어 백암아트홀 갔다. 걸어가는 길이 익숙했고, 도착한 공연장도 익숙했다. 그때도 김사월 공연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였나? 23년 엉엉콘이었다. 공연장에서 CD를 샀다. 애인은 이것이 재테크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삿된 마음을 약간 품고서 산 것 같았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잘 모르겠지만.


<셋리>

수잔-아름다워-콧바람-접속-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향기-젊은여자

오지은 님 멘트

작은 자유

악취-새-존-멘트-머리맡-프라하-키스-디폴트


<수잔>의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으므로 <수잔> 수록곡들로 채워진 공연이었다. 10년 전 수잔을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이 음반은 나오자마자 들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어쩌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오전과오후>라는 곡을 들었던 게 2011년인지 12년인지. 그 다음에 김X김으로 커리어 시작하시고, 그 다음에 수잔이 나왔으니 늦게 접하지는 않았으리라. 그 후로 계속 들어왔다. 지금은 그의 다른 음반들도 나오고 느끼는 감정도 달라졌으니 덜 듣게되었다 하여도, 안 듣게 된 음악에 분류되지 않는다. (깊게 침윤되었던 어떤 호주 음악인의 음반은 다시 찾아듣지 않은지 오래이다.) 가장 처음에는 「수잔」을 좋아했다. 그 다음에는 「접속」과 「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 그 다음은 「접속」, 그리고 「새」와「악취」였다. 새가 가장 오래 갔다. 그때는 가사의 특정한 구절에 내 상황과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즐겼다. "우린 서로를 참을 수 없어 여기까지 외면했지" 하는 가사는 짝사랑 착각을 확대재생산하는 데에 소모되었던가? 혹은 외로움 되새김질 도구였다. 원하는 마음과 도망치는 마음의 영원한 반복이 모든 노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영원히 확정될 수 없는 그 마음들을 사랑했다. 공연에서 새를 거의 부르지 않으시는데, 부끄러워서 그런 거였다고 하시더라. 새를 무서워하셨다는 비하인드도 들었다. 찾아듣지 않은지도 좀 되었고, 공연장에서 아주 오랜만에 그 노래를 들으니 좋았다.


오지은님은 공연장에서 처음 뵀던 것 같다. 노래는 많이 들었는데 공연장 가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만담 실력이 출중하셨다. 그래서 책을 많이 내시는걸까? 노래는 작은 자유를 불러주셨다. 먼 곳의 끔찍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작은 자유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곡인데 이 나라에서도 가져 붙여도 어색할 일 없는 노래가 되어있더라는 촌평을 남기셨다.


수잔의 생각과 마음들을 지켜보던 우리는 그의 머리맡을 떠나 앵콜을 외쳤다. 말씀들이 꼭 수잔이 영영 떠나갈 듯하여 슬펐다. 김사월에게서 룰루랄라가 사라졌듯 우리에게도 수잔이 멀리 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슬 퍼 하였다 고. (쑤잔이 떠나지 않기 빠라며 못뙫 말을 남긴다.)


수잔으로 당신 곁에 머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수잔은 영영 수잔일 수 없으리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퇴행하든 발전하든 관계없이 변화의 합이 곧 미래가 된다. 그때 그 순간이 아름다웠다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때와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걱정하거나 혹여 후회할 필요는 없다. 혼란스러운 한 시절을 떼어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박제할 수 있음에 음악가의 삶을 아름답다 할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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