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리 May 20. 2024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눈물 젖은 육아와 갑작스러운 공부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 앞에 펼쳐진 지옥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흘러갔고,

그 어떤 것도 멈춰서 움직이지 못하는 날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침, 점심, 저녁시간은 꼬박꼬박 돌아왔고,

나는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식사를 못할지언정 내 아이를 굶길 수는 없었다.


삼시 세끼 아이 밥을 챙기고, 아이 간식을 챙기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절대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아이의 애교에 웃음이 나왔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아이가 엉뚱한 행동을 하면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눈물을 줄줄 쏟으면서도 아이를 보고 웃었다.

두려움과 절망으로 온몸이 떨려도 아이를 안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기는 축복이라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아이가 없었을 때의 나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들을 해나갔다.

아이의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 아이를 의지해 일어섰다.

내 삶의 원동력이고, 이유이고, 행복이고, 모든 것인 내 아이.


아이를 씻길 목욕물을 받다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하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소리 없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아이를 지켜야 하니까, 이를 악물고, 눈물을 닦고, 결의를 다졌다.


별거가 시작된 날은 내 복직이 2달도 채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차분하게 복직 준비를 하면서 앞으로의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제일 먼저 내린 결단은 이혼이었다.

더 이상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이 아이가 더 커서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지옥에서 내 아이와 함께 탈출해야 했다.


이혼을 결심하고 나니 생활의 문제가 남았다.

나의 월급은 나 혼자 살기엔 약간 부족해도 그럭저럭 먹고살 만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엔 많이 부족했다.

나는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제는 전남편이 된) 남편은 시부모님의 노후자금까지 싹싹 긁고, 갖고 있던 재산을 탈탈 털고, 받을 수 있는 모든 대출을 있는 힘껏 받아서 횡령했던 돈을 회사에 돌려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그는 온 가족을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렸다.

(횡령한 금액도 알고 보니 처음 말했던 것보다 더 컸다. 그 와중에도 거짓말을 하다니 진짜 대단하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에 쓰고 남아있던 게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결혼하면서 내가 가져갔던 전세보증금 일부만 가져올 수 있었다.


30대 중반,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약간 늦은 듯한 나이,

홀로 오롯이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다.

변리사 자격증 강의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변리사가 된 친구를 보면서, 같이 일하는 변리사님들을 보면서, 잠깐씩 변리사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아 도전하지 못했었다.


그냥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보려고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난 이 공부를 결국 해야 할 운명이었구나 싶었다.


부모님께도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아이 양육을 좀 더 도와달라고 말씀드렸다.

외고 입시를 실패하고, 수능을 세 번이나 보고, 약대편입시험 준비를 하다 실패했던 딸의 염치없는 부탁을 부모님은 흔쾌히 들어주셨다.


그렇게 2024년 1월 1일, 갑작스럽게 난 공부하는 돌싱 워킹맘이 되었다.




이전 06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