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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리 May 17. 2024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세상이 날 억까한다

* 이전글의 세 번째 사고 상세내용입니다.


미칠 것 같았다.

2022년 3월 30일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2022년 3월 31일 남편은 사고를 쳤다.

이번엔 8천만 원이란다.


그리고

2022년 4월 1일 만우절,

심란한 마음으로 출근해서 겨우 책상에 앉아있는데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집주인이었다.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처음 집을 계약할 때 이 집에 다시 들어올 생각이 없으니 오래오래 살라고 했던 집주인은 2년 만에 말을 바꿨다. 양도소득세 절세를 위한 의무거주기간을 채워야 한다고.

결혼하고 두 번째 집이었던 그 집에 오래 살 줄 알고 이사하며 투자도 꽤 많이 했었는데..

아기도 낳아야 하는데..

갑자기 빚도 8천이 생겼는데...

심지어 이번 돈은 미친놈이 우리 엄마아빠한테서 꿔갔다.


세상이 날 억까한다..

이게 뭐야? 지금 이거 신이 나한테 만우절이라고 구라 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몰아쳤다. 눈앞이 캄캄했다.


왜 그가 변했다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안그럴꺼라 생각하고 안일하게 굴었을까.

왜 나를 보며 울먹이는 그가 변했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를 믿었을까.

사실을 직시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그와의 관계를 끊어냈어야 했는데

왜 난 그를 떠나지 못하고 눈을 감았나.


계속되는 취업 실패에 도망치듯 결혼을 택했던 지난날의 내가 저주스러웠다.

결혼을 도피처로 삼았다는 것이 이런 일을 겪어야 될 만큼 큰 잘못이었나.

억울했다. 속상했다. 절망했다.


그리고 너무너무 혼란스러웠다.

아이는 어쩌지? 돈은 어쩌지? 어떻게 살아야하지?

쟤가 이런식으로 계속 돈을 날리면, 내가 취업을 한것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뿐인데.. 내가 아무리 저축해도 소용없을텐데..


그는 무릎을 꿇었다.

몇 달만 기다리면 된다고 그러면 그땐 회사에서 대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실제로 8천만원 중 일부는 돌려받긴했다 나중에..역시 진실이 섞여있는 구라는 당하기가 너무 쉽다ㅠ 진짜 모두가 속았음ㅠ)


용서가 안 됐다.

임신을 안 했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기를 보내줘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게 아기에게도 좋은 일 같지는 않았다. 저런 사람을 아빠로 둔 아기는 얼마나 인생이 고달프겠는가.

나는 이제 저 사람을 믿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낳지 않는 게 모성 아닌가

아기를 낳는 게 너무 내 욕심 아닐까

매일 울면서 고민했다


난 결국 그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내 남편으로 사는 삶 중 양자택일을 하라고.

한 달 안에 사직서를 내지 않으면 난 우리에게 찾아온 아기천사를 보내주고 너랑 이혼하겠다고.


그는 당장 이직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연봉이 더 높은 직장으로 이직을 성공했고, 이사도 잘 끝마쳤으며

우리에게 찾아온 아기 천사 튼튼이는 태명만큼 튼튼한 우량아로 태어났다.

그가 날린 8천만원 중 일부는 이전 회사에서 정산해주었고, 일부는 시부모님이 부담하셨다.


빚이 좀 늘었지만 그래도 모든 게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임신한 나를 유난스럽게 챙기고, 이직한 직장에서 받아온 월급을 나에게 모두 이체한 후 용돈을 타가는 그를 보면서, 아이가 생겨서 그가 개과천선 한 줄 알았다.

우리에게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도 드디어 보답받는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열심히 모으고 살다보면 늘어난 빚도 갚고, 풍족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건 내 착각이었다.

그의 거짓말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대담해지고 있었다.


내가 속았고, 나의 부모님이 속았고, 나의 친척, 그의 부모님까지 모두 속았다.


그는 내가 피눈물을 흘리며 준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쓰고도 여전히 날 배신한 배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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