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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Apr 08. 2021

"아빠, 엄마랑 언제 이혼할 거야?"

우리는 객관적이고 싶어 하지만 객관적이지 않다.

  "아빠, 엄마랑 언제 이혼할 거야?"


  큰 아이 1학년 때, 학교 마치고 차로 픽업하던 중 뒷자리에서 딸이 무심코 툭 던진 질문이다.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왜? 아빠랑 엄마랑 이혼할 것 같아?"하고 반문했다. "응. 그렇게 싸우다가 이혼하는 거라던데."


  결혼이 두 사람만의 만남이 아니듯, 이혼도 그러하다. 가족은 이혼의 원인도, 과정도, 결과도 모두 함께 겪는다. 구조적 복잡성을 가진 이 문제는 얽히고설킨 거미줄 같아서 실 한가닥을 푸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렵다.




  어떤 부부는 이혼을 자기 인생의 실패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만큼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혼은 엄밀히 표현하면 '관계의 실수 내지는 실패'다. 물론 무게감이 좀 더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관계의 실수와 실패를 겪는가? 그러니까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 잘 살고 있던 내 인생에 끼어들어 와서 다 망치고 있는 너'를 죽도록 증오할 필요가 없다. 우리 인생은 아직 망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혼의 원인은 단순히 부부 서로에게 있지만도 않다. 시댁이나 처가와의 관계 문제, 거기에 돈 문제까지 결부되면 좀 더 어렵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구조적인 고통, 그 과정에서 아직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부부 서로의 미성숙하고 불공평한 언어, 그로 인한 상처 등. 이혼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의 유무에만 좌우되지 않는다.


  일단 죄책감이라도 좀 덜어내 보자. 이렇게 보면, 사실 꼭 그 사람 잘못만도 아니고, 내 잘못만도 아니다. 도망가는 것 같지만, 도망이라도 가면서 나를 지켜야 산다. 사실 그 정도 관계까지 되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는 말도 못 한다. 부루마불을 하다가 돈이 탈탈 털려 힘들 때는 무인도가 반갑다. 그런데 그럴 때 꼭 따블이 나오지. 좀 쉴 수 있으면 나을 텐데, 죽을 만큼 힘들어도 직장생활이나 살림, 육아는 멈출 수 없기에 부부의 고통은 가중된다. 힘들어서 더 힘들다.


  그럴 때 때린 사람은 없는데 맞은 사람은 많다. 서로 합리화는 할 만큼 했다. 그리고 아무리 숨겨도 주변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느낄만한 사람은 다 느낀다. 그럴 때 보면 애들도 자기 살 길이 먼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이 문제는 나와 너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가족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부부 말고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말을 통해 실상이 드러난다. "아빠, 엄마랑 언제 이혼할 거야?"라고 물었던 딸에게 배웠다. 우리는 객관적이지 않다. 이성을 잃었다.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상처가 많아서 시야가 좁아졌다. 쿨하고 싶어 하는데 사실 치졸하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에서 서로 멱살을 잡았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마음이 약해서 때리지는 못하고 먼 산을 보다가 상대방을 보다가 하며 '맞으면 아플까?' '때리면 어떻게 될까?' 시뮬레이션만 겁나게 돌리 듯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면, 그냥 또 같이 놀이터에서 얼음땡하고 놀았다.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면 기억도 안 나는 일인데도 그 시절에는 참 많이도 억울했고, 많이도 싸웠다.


  다른 가족들 때문에 참고 살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참아질 것 같으면 그 정도까지 가지도 않는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를 가끔 봤는데, 이혼한 부부들이 만나서 '우리 왜 이혼했지?' '몰라.' 이런 느낌의 대화를 많이 하더라. 그렇게 힘들 때 우리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10년 전의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을까 싶어서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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