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우리
"야 대발아!!"
90년대 초 방영했던 김수현 작가 원작, 박철 PD 연출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대사이다. 이순재 선생님이 연기한 대발이 아버지가 자식인 대발이(최민수)를 부를 때 저리 부른다. 국민드라마라 불릴 만큼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 시절 우리네 가정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중국에 수출된 최초의 한국 드라마라 하니, 가족을 향한 관점과 시대적 감성은 국적 불문 공통분모가 있나 보다. 드라마의 OST '타타타'는 당시 무명이었던 김국환 선생님에게 가요톱텐 골든컵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 시절 이순재 선생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여세를 몰아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너무 드라마에 몰입한 나머지 "자꾸 대발이 엄마(김혜자 선생님)를 구박하면 안 찍겠다."는 유권자들의 귀여운 협박(?)이 신문에 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명성 그대로, '대발이 아버지'는 드라마 초중반에는 거의 폭군에 가깝다. 극 중 아내인 김혜자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차우셰스쿠와 무솔리니에 진시황, 히틀러를 합친 독재자'이다. 그리고 김혜자 선생님은 한없이 당하기만 하는 그 시절 우리네 엄마의 모습을 투영한다. 이 이미지는 너무도 강렬해서 또 하나의 인기 드라마였던 "엄마가 뿔났다(2008)"로 이어진다. 드라마다 보니 극의 재미를 위해 작위적으로 캐릭터를 설정한 면은 어쩔 수 없는 어른의 사정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욕도 하며 재밌게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왕이 되거나 신이 되려고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드라마는 실감 나게 표현한다. 언어 및 육체 폭력, 인격 모독, 지배와 종속, 대놓고 하는 복수와 소심한 복수, 앞에서는 따르는 척 하지만 뒤에서는 비웃고 조롱하는 모습 등. 꼭 대발이 아버지가 아니라도 누군가 가족 중 지배자가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지배자는 자기의 권력욕을 성취하고 경제력으로 그것을 공고히 한다. 나머지 가족들은 정서적으로 그에게 종속되어버린다. 어쩌다 보니 이 글에서는 대발이 아버지가 십자가를 지셨지만,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 자녀 중 누구도 그런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대체로 위아래로 정리된 관계를 편하게 여겼고, 할 만큼만 하면 되는 사랑은 어떤 면에서는 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깨어지고 망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라는 말로 퉁치며 살아왔다.
대발이 아버지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산다. 자기 인생에 이룬 업적과 가족에게 바친 자기의 희생 등이 그의 의로움의 기반이다. 그런데 아마 그 시절 그 드라마를 보며 '대발이 아버지 참 멋지게 산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잠시 잠깐씩 행복할 수는 있지만, 그런 지배자는 언제나 외롭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희생을 하며 가족을 위해 분투하는 엄마들, 아빠들이 있다. 그러다 쌓인 억울함과 한이 우리를 '대발이 아버지'처럼 만들어 가는 것 같아서 슬프다. 어느새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늘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외로이 혼자 우는 시간들이 점점 쌓여 간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대발이 아버지가 밥을 하려고(!) 난닝구 바람에 몰래 수돗가에서 쌀을 씻다가 '뭐해요?'하고 나오는 아내를 보고 기겁해서 물이 가득 담긴 쌀 바가지를 자기 몸에 엎어버리면서 끝이 난다. 나는 그게 좋아 보였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한다. 누가 밥을 몇 번 하는지, 청소를 얼마나 하는지, 정해진 규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따지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길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여러 상처로 폭군 기질이 기본 장착되어버린 우리가 지배하고 통제하기를 조금씩 포기하고 따뜻한 밥을 서로에게 지어주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나는 그냥 그게 더 좋아 보인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7시 30분, 지금 쌀을 안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