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할수록약발(?)떨어지는 말에 대하여.
"우리 이혼해."
현실 부부라면 적어도 한두 번쯤은 (생각이라도) 해보는 대사이다. 사실 나는 아예 안 싸운다는 부부들이 측은하다. 인간으로서 그 정도로 완성도 있는 분들이 만났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아니면 그렇게 안 싸우기 위해 거의 암 걸리는 수준의 인격 수양과 인내를 감내하며 누군가 한쪽이(혹은 서로) 참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해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해도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종속이 일어나고 인간성이 희생당한다.
대부분의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라고 한다. 사실 그렇게 차이 나는 사람들끼리 결혼은 어떻게 했나 싶지마는, 이게 실제로 부딪혀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성장 배경, 말하는 방식, 듣는 방식, 경제관념, 타인과의 거리감 등 모든 면에서 다른데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혼사유가 성격 차이라는데 동의한다. 그게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우리 이혼해."는 단순히 화가 나서 하는 말일 경우이다. 혹은 '상대방의 군기를 잡기 위한 협박' 목적으로 엄포를 놓는 말일 경우도 포함한다. 그런데 이 말은 이성적으로 하든 홧김에 무의식적으로 하든 서로에게 반드시 손해가 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미워 죽겠어."라는 말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게 낫지, "우리 이혼해(보통 뒤에는 욕설을 동반함)."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손실이 크다.
"우리 이혼해."라는 말은 '내가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고, 너와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은 사실 뻥이었어.'라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 그게 내 편에서 사실이든 아니든, 듣는 배우자 입장에서는 말이다. 남아 있던 정나미도 다 떨어뜨리고 발로 뻥 차 버리는 그런 말이다. 언어의 온도와 색채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대미지가 크다. 그래서 향후 부부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던지지 말아야 할 카드이다. 아무리 다른 말로 변명을 해도 잘 안 지워지는 말들이 있다. 이 말이 그런 말이다.
또 이 말은 모든 관계의 성격을 전부 손해와 이익 관계로 바꿀 수 있는 말이다. 사람은 전부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방어적이어서, 내 배우자가 아군에서 적군으로 돌변하는 순간 그 이후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뮬레이션되는 존재다. 양재역에 가 보면 웬 예쁜 변호사 언니들이 그렇게 이혼을 도와준다는 광고가 벽에 도배되어 있을까. 부부 관계가 전부 손익 관계로 바뀌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 물론 우리처럼 혹시 이혼해도 나눌 재산도 없는 처량한 부부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우리는 나누면 아예 생존할 수가 없어서 이혼하는 게 더 손해다. 좋은 건가?
"우리 이혼해."의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자주 할수록 약발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진짜 이혼을 원하고, 그럴 능력과 의지가 충만한 사람은 사람은 저런 말하지 않는다. 그냥 말없이 가출해서 필요한 서류를 내용증명으로 보내든지, 변호사를 통해 연락을 준다. 그래서 다툴 때마다 어디 만화나 드라마에서 하는 것처럼 이 말을 애용한다면, 그러고도 그냥 계속 같이 산다면, 내가 하는 다른 모든 말의 권위도 함께 폭락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도 이 말이 꼭 하고 싶으면, 배우자에게 하지 말고 잠깐 나가서 가까운 교회나 절에 가서 소리를 지르자. "내가 언젠가는 꼭 이혼하고 만다!! 꼭!! 꼭!! 진짜다!! 진짜라구!! 아시겠어요!!"
그리고 애들 얼굴 보러 집에 돌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