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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May 26. 2021

내 남편은 모래요정 바람돌이

소원은 한 가지 한 번에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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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요 바람돌이 모래의 요정

이리 와서 들어봐요 우리의 요정

우주선을 태워줘요 공주도 되고 싶어요

어서 빨리 들어줘요 우리의 소원

얘들아! 잠깐! 소원은 하나씩

하루에 한 가지 바람돌이 선물

모래요정 바람돌이 어린이의 친구

카피카피룸룸 카피카피룸룸 이루어져라

모래요정 바람돌이 신기한 친구

가자 가자 미래로 재밌는 여행


- <모래요정 바람돌이> OST 中.


  어디선가 누군가가 말했어요. "남자의 마음에는 방이 하나. 그 방에 들어가는 여자도 하나. 그 방에 들어가는 문제도 하나.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일도 하나." 그래서 마음에 엄마가 들어가 있는 인간은 아내가 들어가기 힘들고, 마음에 문제가 들어 있는 화성에서 온 남자는 동굴로 들어간다고 해요.


  그리고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해요. 요새는 멀티태스킹이 기본인데, 저 남자는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넣으면 버퍼링이 걸리거나 믹서기를 돌려서 곤죽을 만들어요. 잘 생긴 남자가 버벅거리면 귀엽기라도 하지, 저 남자는 내가 고르기는 했지만 참.


  멋져요. '모래요정 바람돌이'는 '개구쟁이 스머프' 다음에 방영된 애니메이션이었어요. 1986년 아시안 게임이 열릴 때였죠 아마. 브런치에는 40대가 많다니 이름은 기억하실 거예요. 모래요정 바람돌이. 노란 모래 괴물. 결혼한 지 십 년쯤 되니 동글동글해져서 생긴 것도 바람돌이랑 비슷해졌어요.


  소원은 하나씩, 하루에 한 가지 바람돌이의 선물. 바람돌이는 나름 전능하지만 하루에 한 가지만 들어줘요. 그런데 그 집에 애들이 다섯이었답니다. 그래서 한 아이가 소원을 이루면 나머지 네 명은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했을까요? 아닙니다.


  바람돌이는 제법 전능했지만 말귀를 잘 못 알아들었어요. 1 억년쯤 살았다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엉뚱한 사고를 많이 쳐요. 좋아하는 음식은 주로 모래와 타이어(!)였어요. 왜 그런 걸 먹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맛있다고 하니 어쩌겠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바람돌이는 하루에 한 가지, 한 번에 하나씩 소원을 들어주는데 보통 엉뚱하게 이뤄주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있는 고생 없는 고생을 다 하면서 사고 수습(?)에 전념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개고생을 잊어버리고 또 소원을 빌어요.


  그때 럭키 금성에서 나온 뚱뚱한 브라운관 TV로 바람돌이를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나중에 보니, 바람돌이는 그대로인데 소원을 비는 애들은 조금씩 자라서 어른이 돼요. 묘하죠. 이게 진정한 의미에서 바람돌이의 선물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 집 바람돌이랑 살면서 나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갑니다. 말귀는 잘 못 알아듣지만 늘 엉뚱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가끔 의지되기도 하고, 가끔은 코 골고 자는 뒷모습이 측은하게 보이기도 해요.


  그래도 바람둥이 아닌 게 어디예요. 나도 한 번에 하나씩만 부탁하려고 애를 써 볼게요.


  바람돌이,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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