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르미 Jul 25. 2021

딸을 위해 다시 쓰는 엄지공주 #1.

실은 공모전 도전. 그런데 딸이 재미없다고 하면 그만 쓰려고요.

  붓꽃이 피었다.


  아이리스라고도 불리는 이 꽃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여신 ‘이리스’에서 왔다. 바람둥이 제우스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여신 중 하나로, 무슨 수를 써도 넘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헤라는 이리스에게 무지개를 선물로 주었다.      


  헤라가 불어넣어준 축복의 숨결이 땅에 닿자 꽃이 되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헤라의 질투를 받은 것인지 그 수명은 짧다. 그래서 붓꽃의 모습을 눈에 담기는 쉽지 않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꽃이 지기 전에 그 소녀가 세상에 나왔다. 소녀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긴 머리는 보랏빛 붓꽃과 색이 같았다. 그녀의 피부색은 흰 붓꽃을 닮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온기가 느껴졌다. 깊고 검은 눈망울에는 지혜와 용기를 담고 있었다. 여느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냥 조금 작은 것뿐이었다.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꽃들은 소리를 높여 칭찬하기에 바빴다. 누구보다 아름다움에 민감한 그녀들은 은근한 부러움과 시샘을 담아 말했다.      


  “작은 소녀야. 너는 이 왕국의 어느 꽃보다도 예쁘구나.”     


  튤립 아가씨는 소녀에게 튤립의 빛깔을 닮은 형형색색의 드레스를 선물했다. 소녀는 옷을 입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사양했다.


  “이 옷은 언니처럼 예쁘지만 저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튤립은 아쉬워하며 드레스를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침낭으로 만들어 소녀에게 주었다. "정말 마음에 쏙 들어요."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


  장미 여왕은 붉은 구두를 소녀에게 선물했다. 소녀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뒤뚱뒤뚱 걸어보더니, 구두를 벗어 그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여왕님, 이 구두는 여왕님의 붉은 드레스와는 너무 잘 어울려요. 그렇지만 저는 빠르게 뛰고 높은 곳도 올라가고 싶어요.”     


  여왕은 줄기와 가시로 튼튼하고 편한 신발을 만들어 주었다.      


  소녀는 노란 붓꽃이 지기 전에 꽃잎을 따서 움직이기 편한 민소매 옷과 바지를 적당히 지어 입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슨 일을 만나도 날쌔게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옷이었다.     


  꽃들은 더 예쁘게 자기를 꾸미려 하지 않는 소녀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붓꽃을 닮은 이미 아름다운 소녀에게 ‘엄지 공주’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소녀는 그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것만 갖고 이름을 짓다니, 왜 예쁘면 공주고, 작으면 엄지일까?’     


  소녀는 꽃들에게 말했다.     


  “멋진 이름이네요. 그렇지만 저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조금 더 찾아보아도 될까요?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연꽃은 소녀에게 자기 잎으로 만든 배를 선물했다. 강아지풀은 소녀도 충분히 저을 수 있는 노를 만들어 주었다. 아카시아는 여행에서 먹을 달콤한 벌꿀을, 과일나무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과일을 선물했다. 과일은 대부분 소녀가 가져갈 수 없을 만큼 컸다.


  “맛있어 보이지만, 이 과일들은 너무 커서 제가 가지고 갈 수가 없어요. 꿀만 감사히 받을게요.”     


  작은 소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욕심내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행복했다. 그렇게 자기 이름을 찾기 위한 소녀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소녀는 밤마다 하늘의 별을 보며 포근한 침낭에 누웠다. 알맞게 따뜻하고 적당히 폭신한 튤립의 선물은 그녀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선사했다.     


  소녀는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여왕이 선물한 신발은 튼튼했고, 높은 곳도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소녀는 높은 산 위에 올라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날이 더울 때는 에메랄드 빛 호수에 들어가 헤엄을 치기도 했다.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서는 갈 수 없는 곳들을 여행했다. 배가 고플 때에는 아카시아와 꿀벌들의 선물이 있었다. 작으니 적게 먹어도 충분했다. 하늘과 땅은 소녀를 지혜롭게 할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고,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도 기분이 좋았기에 소녀는 늘 만족했다.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어느 날 밤, 소녀는 가장 안전해 보이는 돌 틈바구니에 침낭을 펼치고 잠을 청했다. 한참 전부터 그녀의 뒤를 몰래 따라온 어둡고 축축한 그림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계속>


* 시작은 했는데 다음 편이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따님의 뜻대로. 무려 공대 나온 아빠가 동화를. 오글오글. 아마 8월 15일까지 완성되지 않으면 발행 취소:) 너의 진짜 목적은 무엇이냐. 으흐흐.

매거진의 이전글 내 남편은 모래요정 바람돌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